상상은 하찮지 않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상을 멈추지 않았기에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by 채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네이버 스틸컷

주인공인 월터 미티는 Life 잡지 회사의 지하에서 필름 사진을 관리하는 원화 관리자이다. 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수많은 회사원 중 한 명일 뿐이며, 심지어 소심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지루한 일상 속 도피할 만한 특별한 추억조차 없다. 과거 유럽여행을 계획한 적 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계획은 여행 가방 속 메모장에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그에게는 특이한 습관이 있다. 바로 일상 속에서 ‘상상’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얼빠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자신이 만든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월터의 상상을 바라보는 관객도 가끔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헷갈린다. 관객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면 월터는 어김없이 현실로 돌아와 방금의 상황이 상상이었음을 인정한다. 월터의 상상 속 월터는 모험을 즐기고 용기 있으며 늘 거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세상 속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모습이다. 모험이란 없고 상사가 조롱해도 대항할 수 없으며 지하 속에서 늘 하던 일을 하는 그의 현실과는 정반대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스크린 속 그의 상상과 현실을 번갈아 체험하며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 자신의 상상 속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할 때 월터가 어떠한 감정을 지닐지, 절망을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월터의 상상을 지켜보며 우리는 그가 자신에 대해 어떤 모습을 바라고 염원하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그의 상상 속에는 그가 간절히 바라는 삶의 모습이 과감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네이버 스틸컷

이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과하리만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집, 집에서 회사로 가는 출근길, 회사 엘리베이터, 사무실, 컴퓨터, 그리고 그 속의 화면 모두 무채색처럼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관객에게 딱딱한 사각형을 끝없이 보여준다. 마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인간을 기계처럼 여기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Life 잡지사가 폐간되고 인터넷 잡지로 변경되면서 구조조정이 강행된다. 구조조정 책임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도 아무렇지 않게 시시덕거린다. 사원들은 자신의 삶을 대부분 바친 회사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기도 한다. 월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어둡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그가 상상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며 더 이상 그의 상상이 걱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용감해 보이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향해 보란 듯이 대항하는 숭고한 행위 같았다. 아무리 이 시스템이 자신을 무가치한 부품뿐이라고 다그칠지라도 자신만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거라고 목놓아 울부짖는 것 같다. 이러한 울음에 스스로 답하기라도 한 것일까. 후반부 영화에서 월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상상했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한다.


월터는 그간 잡지사에서 표지를 장식할 사진 작업을 해왔다. ‘숀 오코넬’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잡지의 표지에 올라갈 사진을 찍어 보내는 사진작가이다. 여느 때처럼 숀은 월터에게 표지에 올라갈 필름을 보내면서 자신의 ‘삶의 정수가 담긴 최고의 작품’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월터는 잡지의 마지막 호를 장식할 그 최고의 작품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실수를 회사에 고하고, 일을 포기하기보다는 직접 숀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그는 해고 대상이었기에 굳이 일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없었다. 월터가 끝까지 마지막 호의 표지를 완성시키고자 하기로 한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존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숀을 찾기 시작하며 꿈꾸던 모험을 시작한다. 상상 속 자신의 모습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월터는 숀이 그린란드에 있다는 단서를 얻자 잠시 망설이다 그린란드행 비행기를 끊는다. 처음에는 작은 용기였지만 그는 점점 발휘해야 할 용기가 커짐에도 멈추지 않았다. 만취한 헬기 조종사의 헬기를 타고 배로 뛰어들고, 상어와 싸우기도 했으며 화산 폭발을 두 눈에 담기도 한다. 그동안 상상 속에서만 펼쳤던 모험가 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마치 큰 대해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어쩌면 월터에게 회사는 너무 작은 어항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가 아이슬란드의 광활하고도 구불구불한 길을 보드를 이용하여 거침없이 내려가는 장면이다. 아마 원테이크로 촬영된 것 같은 이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맥박이 빨라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 전반부에서 보드를 잘 타는 그의 특기는 회사 앞 놀이터에서 꼬마 아이에게 시범을 보여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 보드를 타며 아이슬란드의 길을 만끽하고 누리는 듯한 그의 모습은 그가 지닌 보석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네이버 스틸컷

그가 모험가 정신을 발휘하며 평소 상상에서만 펼쳤던 모험을 직접 해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삶,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험한 세상으로부터 지켜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상상하고 바라며 꿈꿨던 것이다. 그가 일상 속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선택의 갈림길에서 용감하게 모험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상 속 모험가였던 자신의 모습을 현실 속에서 그려낸 것이다. 그는 직접 기회를 만들었고 동시에 쟁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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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어느 조직이든지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묵살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상상하고 꿈꾸는 어른이 되라는 것이다. 전반부 내용을 소개하며 영화가 화면의 색감과 구도를 가지고 월터의 직장에서의 삶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기계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현실 속에서 월터는 상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지켜왔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한탄스럽긴 하지만 먼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한 지 꽤 되었다. 이는 직장에서의 고달픔을 휴식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한 것을 소비함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린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자신의 가치를 시스템 속에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의 고군분투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월터는 현시대 우리에게 한발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바로 앞에 있는 행복도 중요하지만 진정 자신은 누구인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고민하고 상상하라고 우리의 귀와 눈에 외치고 호소하는 것 같다. 내가 중심이 되어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첫 번째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두 번째로 말하려던 상상하고 꿈꾸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넘어온 것 같다. 다음 문단에서 상상과 현실의 관계를 영화가 어떻게 재정립하고 있는지 자세히 다뤄보려 한다.​


평소 주위에서 들리는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현실을 상상 혹은 꿈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꿈꾸는 어른에게 “철없다”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덜 자란 어른”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현실은 상상보다 더 우위에 있는가? 상상하는 건 열등한 자만이 하는 미련한 행위인 것인가? 이 영화만큼은 어른들에게 상상은 하찮지 않다고 말해준다. 월터는 상상과 현실이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상상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현실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면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방향이 어떠한 색채를 띠고 있는지 모르기에 자신의 선택이 잘한 선택인지도 평가할 수 없다. 상상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소 상상한 자가 순간의 선택들에서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상은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상상의 연장선으로 현실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이 중요한 만큼 상상하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다. 이 둘은 결코 서로에 대해 우월한 관계에 있는 것도,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먼저 꿈꾸는 어른이 되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이여 마음껏 꿈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