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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연구하다

아직 안 늦은 거겠지..?

by 융원

3월 17일에 저널에 페이퍼를 제출하고 추가적으로 제출한 페이퍼는 없다.


그리고 4월 한 달을 한국에서 결혼식 준비한다고 통으로 휴가를 가서 연구에 복귀한 지도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결혼식 준비를 원격으로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아직도 그 스트레스를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결혼식이 하나 더 있다는 꿈을 자주 꾸곤 한다. (나랑 와이프랑 번갈아가면서 꾸고 있다.)


아무튼 한동안 큰 행사는 없을 것 같아서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수업 조교 관련 제안을 받았는다, 연구에 완전히 집중하기 위해 다 안 한다고 했다.


이제 계약 만료까지 8개월 정도 남았다. 내년 2월에 만료니 2월에 디펜스를 하려면 3개월 전 정도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11월 중에 제출을 해야 한다. 제출까지 5개월 정도 남은 셈이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이 지나가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페이퍼는 그만 써도 되고 이제 학위논문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졸업할 수 있겠구나와 이대로 졸업하는 게 맞나 사이에서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준비가 안되었다는 이유는 어떤 페이퍼도 이제 유명한 학회나 저널에 올라온 게 아니라서 이렇게 졸업해도 되나 헷갈린다. 그런데 또 한국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은 학위를 받는 게 중요하다.", "연구를 계속해도 졸업 후의 연구가 더 중요하다."라고 커리어 선배로써의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나도 이 말이 맞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드는 이유는, 이게 어떤 일을 2년 넘게 했으면 뭔가 좀 감이 잡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느낌이 와야 하는데, 아직도 매 페이퍼 쓸 때마다 새롭다. 한 페이퍼 끝내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또 쓰려고 하면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숨이 차다.


이게 다들 그런가? 좀 주변에 물어보곤 했는데, 이 대학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개개인 다 다른 이유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뭔가 공감할만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모두가 본인의 어려움이 더 어려운 건지, 본인이 겪었던 어려움이 너무 달라서 이해가 안 가는지.. 나 또한 그들에게는 그렇겠지.


아니 브런치 글을 써도 몇 번 쓰다 보면 알고리즘에 걸려서 하루에 몇 천명씩 방문자가 오는데, 돈 받으면서 2년 넘게 한 연구는 왜 아직도 처음 할 때와 차이가 없는 것 같은지.. 펀딩 제공자에게 미안할 정도다.


교수님들한테 물어봐도 뭐 딱히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진짜 본인들도 몰라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는 한다


원래 박사를 시작할 때는 거의 분기에 하나씩 탑티어 학회에 붙어가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게 목표였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이러한 나의 심정을 알고 있는지, 역시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생조언 영상들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Jim Rohn이라는 사람이 1981년도에 약간 자기 계발 관련 세미나를 한 흑백 영상이었는데, 그냥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당연히 언제나 늘 어디에나 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고 엄청 새로운 내용은 없다. (아니면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나 동기부여 영상들이 이분 이야기를 기반으로 했을지도..)


그냥 집 정리를 하면서 영상의 오디오만 듣고 있었는데, 내 현재 상황에 딱 맞는 내용이 있었다.

"성공을 하고 싶다면 성공을 공부해라"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을 공부해라"

등등


헉,, 그렇다면!

"연구를 하고 싶다면, 연구를...?"




생각해 보면 박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연구"라는 것에 대해 연구를 해본 적은 거의 없던 것 같다. 그냥 어떤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끽해야 리서치 페이퍼 잘 쓰는 법 이런 기술적인 부분들만 봤었지, 실제 연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크게 공부를 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이게 그냥 단순 방법론 제안하고 "내 게 더 좋지?"라고 말하면서 실험 빡빡하게 채우면 끝나는 게 연구의 다가 아닌데, 당장 마음이 급하니 가장 검증되고 확률 높은 (accept이 되기가) 방식으로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던 것 같다.



분명 와이프가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좀 알아보라고 했었는데, 뭔가 그냥 상식선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고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어서 털을 말리지 마세요), 이게 비법이 있었다면 누구나 다 연구의 대가가 됐겠지라는 생각이 든달까?

마치 투자 잘하는 법, 창업 성공하는 법 같은 사짜 느낌 나는 내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들여봤던 것 같다.


(이건 나의 원래 안 좋은 성향 중 하나인데, 내가 원래 설명서 읽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그래서 보드게임을 싫어한다.)


그리고 박사를 할 때도 연구라는 행위에 대한 연구 없이 그냥 냅다 잘 나가는 유명한 페이퍼부터 다운받아서 어떻게 썼나, 무슨 트릭을 써서 이렇게 좋은데 붙었나 하는 쓸데없는 분석에 힘을 많이 쏟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주위에서 하나둘 좋은 학회에 합격을 하는 거 보면 나도 점점 마음이 급해져 가성비 연구를 하려고 하게 된다. 이게 약간 투자랑 비슷한 게 돈을 잃거나 남들만큼 못 벌면 더 리스크가 있는 상품을 찾아가듯, 하던 연구는 팽개치고 자꾸 이 주제 저 주제 기웃기웃 거리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다.


(아마 잘 찾아봤으면 이 내용도 누군가 연구할 때 주의할 점이라고 써놨겠지?)


이제 8개월 정도 남았는데, 다시 처음부터 해보려고 연구 자체부터 공부해 보기로 했다.

Screenshot 2025-06-04 at 20.57.09.png 박사 시잔 2년 6개월만에 어떻게 연구하는지 검색해봤다.




앞의 다짐의 연장선으로 오늘 진지하게 작업한 것 중 하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와 논문을 하나 써서 낸 게 있는데, 거기에 내가 교신저자로 들어가서 어쩌다 보니 리뷰어를 하게 됐다.


그래서 마침 이때다 싶어서 내가 받았던 리뷰처럼, 나를 리뷰해 줬던 리뷰어들처럼 재수 없게 쓸려고 하다가, 요즘 하도 chatgpt로 리뷰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문장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그냥 페이퍼를 밀어 넣고 리뷰해 달라고 한단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 급변하는 연구 생태계에서 앞으로는 정성 들여 써준 리뷰를 더욱 높게 쳐주지 않을까라는 나만의 행복회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세 페이퍼를 할당받았는데, 진짜 하나하나 열심히 읽어가면서 엄청 칭찬해 주는 톤으로 쓰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아쉽다"라는 톤으로 따뜻하게 리뷰를 써줬다. 물론 점수는 그만큼 따뜻하게 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리뷰를 읽고 얻어가는 것은 있게끔 충분히 많이 자세하게 써줬다.


좋은 학회에 1 저자로 많은 논문을 써내는 것도 좋겠지만!

연구라는 큰 생태계에서 다양한 부분에 크고 작은 기여를 해보려고 노력해 보자!

(모두가 호날두 메시일 수는 없잖아 누군가는 수비도 해야지!!)


Cover Photo by Louis Ree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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