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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Jun 13. 2024

걷기와 방출의 상관관계

2024_이야챌린지_037_진예진

임시 표지

"으흐흐."


괴이한 웃음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언니의 흉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몇 분 전,


"어디 가?"


토요일 낮 1시.

이른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낸 예원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부터 도서관 간다고 얘기 안 했나?"

"그게 이번주부터였구나? 7월에 본격적으로 더워지면 갈 줄 알았네."

"지금도 힘들지~"


동생이 손풍기를 들자 예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이익.


"그래도 작년보단 괜찮은 것 같은데?"

"밤에는 그렇긴 한데, 낮은 지옥이야."


찌푸린 눈살을 보니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갈까. 혼자 집에 있긴 싫은데~"


외진 곳에 사는 예원은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도서관까지 걸어서 갈 생각이었다.


"주말이니까 배차가 그렇구나. 산책도 할 겸 걷지, 뭐."

"부채도 챙겨야겠네."


예원은 알았다.

20분이 곧 두 배로 늘어날 것을.

걸음의 속도가 현저히 느린 언니.

전보다 큰 각오가 필요했다.


"손풍기가 한 대라 아쉽네."

"평소엔 내가 쓰는데 말이야~"


예진의 손풍기.

그러나 외출 예정이 없던 오늘은 예원의 몫이었다.

그런 줄 알았으나.


'이걸로 버텨야지.'


악으로, 깡으로!

부대끼는 바람에도 여전했다.


'나온 지 5분 됐는데, 벌써 후회되네?'


슝 달리는 차량이 부러웠다.

그래도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라 견디고 싶었다.

옆에서 스산한 웃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미칠 법도 하지, 암.'


자신이야 낮동안 이동하니까 알고 있었지만.

주로 내부에 머무는 언니는 미처 몰랐을 수도 있다.

예원의 부채가 언니 쪽으로 흔들렸다.

한편, 예진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생각의 잔향을 맡는 중이었다.

예외 없이 돌아가는 상상기는, 드론이 아니었다.

위이잉.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센서가 켜지자 곧바로 가동되는 그것.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그녀를 기쁘게 했으나, 사정을 모르는 동생의 눈에는 음산할 뿐이다.

이 방출기를 알면 공감하겠지만.


'이제 걷는 게 두렵지 않지!'


추운 날에는 온기를 방출하고, 더운 날에는 냉기를 쏟아내며 맞이하는 이 기계는 구간마다 존재했다.

한 대가 닿을 수 있는 최대 거리를 고안해 설비되었기에 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아니었다.

그 구역을 지나자 다음 센서가 반응하여 작동하니 끊이지 않고 유지되는 바람.

예진은 광고에서나 보았던 장면을 재현하며 날아가려는 하얀 모자를 고정했다.

치마폭이 흔들리고, 싱그러운 내음이 퍼지자 자동차 소리도 경쾌한 음악이 되었다.


"크으. 살만하네."


위이잉.

실상은 손풍기 소리여도 말이다.

그게 구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쁘지 않은 미래 뒤, 자동으로 꺼지는 방출기.


"자동차랑 사람을 헷갈리지 않게 센서는 안쪽에 있고, 방출기는 여기 도로 사이-"

"아. 그거구나."


예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느닷없는 시작.

두서없는 맥락.

하지만 자신에겐 귀중한 기회였다.


'오늘 상상기는 반영할 수 있기를.'


한참 귀를 기울이던 동생.

언니가 들뜬 눈으로 물었다.


"가능하겠어?"

"안 되지.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자본을 투자할 정돈 아니잖아."

"으악!"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은 비명을 불러왔다.

반면 벌레가 나타났나 싶어 경계했던 예원은,


"1년이 지났는데! 기술력 뭐야!"


급발진이었다.


"과학이 대체 해주는 게 뭐야!"

"많지. 언니 회사에서, 버스에서 시원하잖아."


안도한 동생의 반박.


"그래도-"

"과학한테 많이 고맙지."

"어-"

"지금 도서관도 엄청 시원할걸? 오히려 추울지도?"

"저녁까지 있는다고 했지?"

"응. 추우면 입으면 돼."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한 예진이 속도를 올렸다.

드디어 빨라진 보폭을 확인한 예원은 때를 놓치지 않고 서둘렀다.


'아직도 적응되려면 멀었지만, 저 버튼이 좋을 때도 있지.'


아까는 다소 놀랐지만, 지금은 반가웠다.


"그래도 만들어주면 안 되는 거냐."

"대신 내가 써주잖아."

"상상기로 만족하긴 해도 가끔은 현실에도 있으면 좋겠어."

"언젠가는 또 몰라. 내 소설 보고 실제로 비슷한 걸 짜낼 수도 있잖아."


예진은 그게 당장 생기길 바랐지만.


"에어컨이 있어서 다행이지.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언니의 욕망이겠지."

"어쨌든 다 같이 좋자는 거잖아!"

"지구는 나빠질걸. 아. 도서관 가서 관련된 책을 읽어봐. 상상만 하지 말고 찐으로 발명하는 거야!"


되겠냐.

짜게 식은 눈을 마주하고도 예원은 개의치 않았다.


"난 손재주가 영 아니라고."

"언제는 장영실의 환생이라며."

"그때 너무 열심히 만들어서 이번엔 좀 편히 살려고 잠그고 왔대도?"


여전한 상상기의 흔적을 흥미롭게 듣는 동생이지만, 알았다.


'진예원이 뭘 알겠어!'


그런 내용으로는 글도 써주지 않았다.

자신의 상상기가 모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예진이 앞서가는 동생을 바짝 쫓아갔다.


"이번 꺼는 써줄 거지?"

"음. 언니가 준 단서를 어떻게 연결할지 아직 모르겠어."

"산책 좋아하는 친구를 만들어봐. 자주 걷고 싶은데, 날씨 때문에 집에만 있고 실행을 못하던 친구가 미래로 가서 혁신을 마주하고는 돌아와서 설치하는 거지!"

"오. 자신의 발명품을 미래에서 보고 와서 제작한다?"


명성훈.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린 예원이 언니의 의견들을 적극 수용했다.


"그리고 드론 때랑 엮는다라. 근데 내가 쓸 수 있을까?"


과학적인 소재는 분명 흥미롭지만, 자신에게는 까다로운 영역이기도 했다.


"도서관 가서 찾아보면 되지."

"맞아. 그것도 공부해야겠네. 이제 보인다!"


건물의 윤곽이 잡힐 무렵.

고뇌하는 미간을 구경하던 예진이 뿌듯한 얼굴로 버튼을 눌렀다.


"흐아. 살겠다."

"2층이니까 계단으로 가자."

"그래. 물 좀 마시고~"


콜록.

예원이 마스크를 올렸다.


"목이 메어서 그런 거거든."

"본능이야."

"콜록, 아유. 먼저 들어가. 좀 괜찮아지면 갈게."


연신 기침을 토해낸 예진은 어느 정도 괜찮아지자 계단을 올랐다.

그동안 미뤘던 독서를 아주 끝장낼 생각이었다.


"지갑에 잘 있네."


대출 카드를 찾은 예진은 집에 갈 때는 양손 무겁게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스으윽.

안으로 들어서자 더욱 시원한 공기가 그녀를 반겼다.


'와우. 천국이야!'


즐비한 책들이 무섭지 않았다.

가까운 곳부터 책장을 둘러본 예진은 앉아있는 동생을 지나고 나서 손이 가는 책 한 권을 꺼냈다.

종교는 배움의 갈래, 과학은 인생의 실천.


'하긴. 과학자들 중에선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신적인 존재를 믿는 건 아니라고 했던가.

어디서 봤던 영상의 내용이지만 정확하진 않았다.


'과학에는 사회과학이랑 자연과학이 있고, 음.'


결국 맞물리는 영역 사이 균형이 잡히고, 유지하게끔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또 그것을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제안에 대한 성숙한 고민이-


'뭐라는 거야.'


띄엄띄엄 읽던 예진은 금방 흥미를 잃었다.

쓱쓱.

시선을 돌리자 노트에 뭔가를 그리는 동생이 보였다.


'이미지 구상 중인가 보네.'


동생의 펜 끝을 지켜보던 예진은 이내 너머로 펼쳐진 논을 감상했다.


'반듯하다.'


평화로운 기분 속.

창가로 다가서자 밑에는 태양 전지판이 빼곡히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도 이게 다 있구나?'


새로 짓는 건물에는 유독 잘 보이는 거긴 하지만, 이쪽까지는 그간 살펴보지 못해서 몰랐던 사실.


'좀비 사태가 터지면 확보할 공간이 또 있구나.'


그어어-

자신을 물려는 동생을 물리치고, 홀로 생존해야 하는 예진은 떠올렸다.


'도서관! 거기로 가야 해!'


언니가 자신을 좀비로 여긴 것도 모르고, 한참 작업하던 예원은 굳은 목을 풀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은 언니의 아련한 눈길을 살폈다.


'이번엔 뭘까?'


도서관이 6시에 닫을 때까지.

작업과 독서, 상상을 병행하던 자매는 각자 겉옷과 담요로 몸을 감쌌다.

포근함 속에서, 살짝 잠이 몰려왔지만.


'반드시 살아남겠어!'


나름대로 막아둔 문이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오로지 생존을 목표로 굳게 다짐한 예진의 눈에 활자가 담겼다.


'역시 문명의 힘이란.'


축적된 지혜는 이끌었다.

하루, 한 달, 1년.

캠프의 대표로서 자리를 지켜온 그녀가 눈을 빛냈다.


'발명가가 오다니. 운이 좋구나!'


명성훈.

그를 환영한 예진이,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오늘 저녁이 순대국밥으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당면이라니. 진 대표는 실망했다."

"잘 먹어놓고?"

"식사할 땐 좋게 넘어가야지. 당면은 순대가 아니야. 그리고 너무 느끼했어."

"깍두기로 잡지 않았어?"


언니를 달랜 예원이 버스표를 확인했다.


"벌레가 많아서 걸어가기 싫었는데, 있네~"

"그게 얼마나 좋은 영양분인데."

"으. 난 못 먹어."


바로 이해한 예원이 카드를 꺼냈다.


"그래서 널 일찍 좀비로 보냈지~"

"그어어-"

"더워! 붙지 마!"


끼익.

버스 안.


"두 명이요!"


띠딕.


"그래. 넌 거기 앉아. 널널하니까~"

"짐 때문에도 따로 가야 해."


한가득 들고 온 책들.

짐꾼으로 전직한 예원이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오늘 알찼다!"


잠시 후.

밝아진 거실이 그들을 맞이했다.


"쓰기만 하면 그렇겠어~"

"혼종을 만드는 거야! 미래 기술자의 좀비 아포칼립스~"


수요가 있겠냐만은.

쏴아아.

언니가 씻는 동안.

기획한 것들을 뽑아내는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 너머의 성훈처럼,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부아앙.

딱 방출하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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