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지 못한 인간에 대하여
나의 인생에서 최고의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인간 실격을 고를 것이다. 함부로 추천을 하기에는 어려운 소설이다. 우울하고 자조적이며 한 인간의 파멸 과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모두에게 권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책이 된다.
이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유작이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나는 이 책의 결말이 그의 자살로 진정한 종결을 내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잔인한 말일 수도 있지만, 원래 인간의 생애라는 것이 각자의 잔인함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가 죽고자 하지 않았으면 이 작품은 절대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죽도록 했을 것이고 살도록 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이 이야기가 살린 인생들을 생각하자면 그의 죽음에 ‘숭고한 희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주인공인 요조라는 인물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특유의 성격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요조를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요조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무엇일까가 계속해서 궁금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원했던 것일까 자신의 마음을 채워 줄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점점 초췌하고 인간으로서 가지는 생명력을 잃어가는 그를 보면서 모든 구명줄을 무시하고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마리의 돌고래를 보는 것 같았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채울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찾지 못한다는 것. 결핍에 시달린다는 사실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요조를 더욱 피폐해지게 한다. 완전한 죽음을 추구했던 그의 삶에 동반 자살에 실패했다는 꼬리표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를 옭아매는 목줄이 되었다. 그 어떤 누구도 요조를 겁박하고 흉악스럽게 몰아세우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에는 억압되어 질질 끌려왔던 흔적들만이 난자하게 흩어져있다.
이 책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와 각자의 약점, 우울 등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의 반복이다. 요조는 그 누구를 만나든 자기 효능감을 잃어버리고 좌절한다. 또한 그 주위를 쳇바퀴처럼 도는 인간군상은 현대 사회의 저열한 바닥을 선보인다. 반복되는 인간의 몰락은 서사로서 가히 매력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서사 갈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인간 실격’은 서정 갈래이다. 그가 느끼는 감정들을 무거운 호흡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진짜’는 그가 가진 바닥 그 자체이다. 우리는 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바닥은 어떤 모습인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살다 보면 인간에게 ‘왜’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의미가 없을 때가 많다. 우리는 고등 생물이지만 결국은 동물이고 의미 없는 행위의 나열이 우리를 구성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바닥이라면 혹은 누군가가 바닥이라면 ‘왜’라는 질문을 하며 구원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바닥에 함께 앉아 그 바닥이 어떤 모양인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