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와 책<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2021년 10월 15일에 발행한 뉴스레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셋둘하나, 영>입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예행연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안내서 같은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소개합니다.
2020년, 커스틴 존슨 감독, 러닝타임 1시간 29분
죽음과 천국을 동시에 선물하는 유쾌한 죽음 리허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80대 딕 존슨의 '죽음 미리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딕 존슨은 딸인 다큐멘터리 감독인 커스틴 존슨의 영화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죽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연출된 상황이죠. 산 채로 관에 누워 미리 치르는 장례식과 허무하고 우스운 몇 번의 죽음을 코미디처럼 연출하여 촬영합니다.
하지만 커스틴은 아버지의 사고사만 담지 않습니다. 딕과 커스틴의 희망이 투영된 천국의 모습도 나오죠. 그곳은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콤플렉스였던 못생긴 발가락도 멀쩡해지는 곳입니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딕 존슨이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자 커스틴은 현재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이별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합니다.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머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 캐서린을 담은 영상은 의식이 흐려진 시기의 짧은 기록이 전부인 것을 후회했기 때문입니다.
친구 레이의 말처럼 이건 영화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입니다. 카메라에 찍힌 그의 죽음과 천국의 모습은 가짜지만, 딕 존슨은 (언젠가)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어가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욱 애틋해지고, 소중해집니다. 본인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을 담아내는 데 이토록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전에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뭐든 빌 수 있다면 그게 소원이라고."
"내가 그랬나?"
"네, 좀 놀랐어요. 전 아빠가 세계 평화를 빌 줄 알았거든요."
(웃음)
"네 엄마가 안 죽길 빌겠지."
"그게 소원이에요? 네, 이해해요. 제 소원도 그거예요."
커스틴은 '소원이 있다면 멀쩡한 발이 되는 것'이라는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한 소원을 천국의 장면으로 재현하고자 합니다. 커스틴은 편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촬영할 장면을 딕에게 설명하고, 딕은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며 설명을 열심히 듣습니다. 커스틴은 아버지의 입가와 셔츠에 묻은 가루들을 정리해 줍니다.
그저 지나가는 특별할 것 없는 이 장면은 어떤 연출도 연기도 없이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무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딸의 요구를 순순히 따라주고 심지어 열심히 임해주는 아버지의 모습과 이제는 약해진 아버지를 "남동생"처럼 보살피는 딸의 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애정이 듬뿍 느껴집니다.
저는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죽음이라는 소재가 가볍기는 어렵습니다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현실적이고 묵직한 울림을 주면서도 유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찝찝함을 남기지 않으면서 울림을 남기죠.
현실의 인물만을 따라가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지점을 연출된 극영화 형식을 교차하여 작품의 유쾌함을 한층 더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부담감을 느끼는 분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의 구심점이 되는 것은 딕 존슨이라는 인물 그 자체입니다. 그가 있었기에 이 작품이 이토록 따뜻한 울림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실제 인물을 보며 이렇게 과몰입이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답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
이별에 대비하고 싶은 사람
넷플릭스를 결제중이다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죽음을 가지고 농담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영화적 재미가 중요하다
#넷플릭스
https://www.netflix.com/watch/80234465?source=35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출판사 비잉, 340p
죽음을 대비한 탄탄한 기획서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자는 완화의료 간호사로 10년 넘게 일했습니다. 환자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겪은 경험을 토대로 떠나는 사람과 남게 될 사람을 위한 실질적 조언을 제시합니다.
"이 안내서를 읽고 지도를 따라가면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엿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라. 좋든 싫든 간에 나중에 당신에게 벌어질 일을 미리 살펴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죽음으로 가는 길의 가이드, 안내서와 같은 책입니다.
마지막 몇 달에서부터 마지막 순간을 지나 시신과 남은 이들의 애도에 이르기까지 죽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쪼개서 손에 잡힐 듯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뛰어난 점 중 하나입니다.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된 계획서들의 항목까지 체크하고 나면 마치 '죽음 워크숍'을 마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통제할 수 없거나 스스로 돌보지 못하거나 결정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평소 태도와 사고방식(habits of mind)이 우리를 이끈다.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 당신은 어떤가? 헌신과 사랑과 모험심 속에서 죽음을 만나고 싶은가, 아니면 꺼져가는 불빛에 대고 분노를 표하고 싶은가? 지금부터 그러한 자질을 기르고 익히도록 하라. 그러한 자질이 몸에 배면 정신이 나가더라도 그대로 행동할 수 있다. 습관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 [3. 좋은 죽음] 중에서
저자의 조언은 죽음을 맞이할 당사자에게도 필요하지만 동반자, 조력자와 같은 주변인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4장. 의사소통〉에 나오는 해서는 안 될 말들 ("이 상황은 너보다 내가 견디기 힘들어" "왜 좀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거야?" "단것을 그만 먹어야 해. 명상을 시도해본 적 있니?" 등등)과 취해야 할 태도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생각 없이 저런 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를 존중하고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몸이 약해진 이들이 제대로 판단을 못 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니까요.
죽는 과정을 실질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
정확한 행동지침을 알려주면 더욱 좋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고 싶은 사람
내 죽음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엉 ㅣㅆ다
불교적 내용에 반감이 있다
딱딱하고 가독성 나쁜 책은 어렵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07787
언젠가는 부모님도 소중한 기억들도 모두 잃고 죽음을 맞게 되겠죠?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두려움, 절망, 허무함 등 여러 감정이 들 것입니다. 부모님의 죽음은 슬프지만, 이 상황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에게도 모두 마음을 단련시킬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첫 번째 부록인 <죽음 계획서 준비하기>를 간단하게라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죽으면 좋을지 정하고, 유언장을 적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나의 재산과 반려동물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죽음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생각해보고 적어 놓는 것이죠. 죽음에 대해 말한다고 당장 죽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 두려워 말고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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