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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그림자는 어떻게 사라지는가

<언멧: 어느 뇌외과의의 일기>

by 코두 codu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빼앗아 간다. 뇌외과의사인 카와우치 미야비는 2년 전 사고로 기억상실증을 겪게 된다. 사고 이후로 미야비의 기억은 축적되지 않는다. 미야비의 하루는 책상 위에 놓인 일기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야비는 자신이 2년 전 사고로 인해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새롭게 마주한다. 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그간의 주요한 정보를 숙지하고 병원으로 나선다.


의학 드라마답게 매회 다양한 환자들이 등장한다. 뇌에 손상을 입고 찾아온 환자들은 수술 이후 미야비와 비슷한 고통을 겪게 되기도 한다. 바로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이다. 유망한 축구선수는 몸 왼쪽의 감각을 잃고, 배우는 실어증에 걸리며, 요리사는 후각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어쩌면 한순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을 수 있는 수술이 바로 뇌수술인 것이다. 그러나 수술로 후유증을 얻어도, 어딘가 불편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고 해도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삶이 이어진다는 것, 그것이 고통이자 희망이다. <언멧>은 의학 드라마이지만 회상장면을 제외하고는 누군가 죽지 않는다. 환자들은 모두 병과 아픔을 겪으며 퇴원하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다. 미야비의 기억은 내일로 이어지지 않지만, 미야비의 삶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놀랍게도 기억은 뇌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뇌에 기억이 저장되지 않아도 반복하여 몸을 움직이면 손이 기억하고, 몸이 기억한다. 미야비는 2년 전까지 성실하게 지식과 실력을 쌓아왔다.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도 그는 여전히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능력 있는 의사다. 거기에 더하여 미야비의 곁에는 그를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동료들이 있다. 미야비가 기억해내지 못해도 대신 기억해 주고 바로잡아주는 세심한 의료인들이다. 미야비는 점차 자신을 믿고, 동료들을 믿고 수술을 하나 둘 맡아간다.


<언멧>에는 유독 병동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저작 운동을 반복하면 세로토닌이 나와 행복해진다’라는 말은 과학적 사실이며 보편적으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복의 이미지다. (다만 술을 저렇게 자주 먹으면 미야비 뇌에 안 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다소 들었다.) 먹고, 잠들고, 또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미야비는 스스로 빛이 되어 주변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기억을 잃고 빛을 잃어가는 미야비에게 당신은 빛이라고 일깨워주는 이가 산페이다. 그러므로 미야비에게 산페이는 또 다른 빛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 준다면, 스스로가 빛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세상에 그림자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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