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세는 어떻게 가능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자신의 조건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인생이 망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당신이 지금 숨 쉬고 살아 있다면 아직 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망해버렸다고 단정 짓고 평생을 산다면 그 삶은 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약 다음날 아침 바퀴벌레가 되어버린다고 해도 망한 것은 아니다. 바퀴벌레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중심을 굳건히 다지고 나아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아가는 사람은 분명 어딘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풍차를 무찌르겠다는 돈키호테는 분명 이상하지만 그 삶이 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가는 인물일 뿐이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둘톡 130화 인생은 기세다‘ 편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결함이 있고 안 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뚫고 나가는 어떤 것, 그것이 기세다.” 기세로 모든 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기세는 좋은 결과를 불러올 때가 많다. 행동하는 자에게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 기세란 당당하고 조금은 무모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피넛 버터 팔콘>은 다운증후군 환자 잭과 빈털터리 어부 타일러의 우정과 성장을 다룬 영화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잭은 영웅적인 레슬러가 되기를 원한다. 잭이 레슬링 선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수백 번 돌려본 레슬링 비디오의 주인공은 이제 노인이 되어 레슬링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 그는 보호가 필요한 환자다. 이렇게 보면 잭에게 모든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잭은 링에 오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의아한 시선과 모욕적인 언동에 수백 번 보아온 기술로 맞선다. 링에 오르기 전 잭은 두려워한다. 타일러는 잭이 그저 다운증후군 환자가 아닌 레슬러 ‘피넛 버터 팔콘’ 임을 일깨워준다.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만이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겠다는 마음과 어떤 결과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기세를 만든다. 유튜브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에 출연한 세스 고딘은 인터뷰 중 “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을 찾는다면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말한다.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동시에 지닌 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된다. 사회에서 말하는, 남들이 얘기하는 보장된 성공의 길은 각자의 인생 궤적에서 보면 무의미하거나 혹은 실패에 가깝다.
사실은 실패라는 두려움에 앞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조차 어렵다. 나처럼 자신을 검열하고 자신에 대해 언제나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나의 결정이 옳지 않을까 봐,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피해를 줄까 봐 걱정이 앞선다. 나의 어리석은 선택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면 아마 나는 그 기세를 꺾을 것이다. 나는 기세를 발휘해도 좋을 만큼 선한 인간인가? 올바른 목표를 향해 간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올바른 목표란 뭘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좋은 기세를 유지할 수 있나? 기세와 고민은 공존할 수 있나? 아무튼 생각이 많은 사람은 피곤하고, 기세를 가지기 어렵다.
나는 내가 폭력적이고 형편없는 인간일까 봐 두렵다. 게으르고 무엇도 해내지 못하고 폭력적인 모습이 나의 본모습일까 봐.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다. 나에게 있는 특성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나의 본질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주변을 믿고 나아가야지. 나를 언제나 직시하고 최대한 나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내 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이상의 것은 주변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나보다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피드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실패와 두려움을 딛고 도전하는 것은 나의 어리석음마저도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리석은 선택을 해도 괜찮아. 내가 감당할게. 내가 고쳐줄게. 내가 있어줄게.’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내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힘을 낼 수 있다. 스스로를 믿어주는 것은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복지다. 나는 나를 등에 업고 세상을 헤쳐나간다. 매일 되새겨야 한다. 괜찮다고 내가 있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