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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May 21. 2020

여자면 뭐가 달라지나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톰보이TOMBOY>(2011)

짧은 머리에 편한 옷을 입고 다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종종 남자아이라고 착각한다. 이렇게 생긴 성인 여성은 그들의 틀에서 벗어난 까닭이다. 왜 사람들은 면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려 하는 걸까? 무엇이 달라지기에? 


사실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시선과 생각, 이를 바탕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까지. 여자와 남자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다르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들의 사고방식에 충격을 줄 생각은 없지만 나는 그저 '나'이기에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과는 다르다. 어떤 것이 여성적이고 어떤 것이 남성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이 나다운 것인지가 중요하다.


영화 <톰보이>역시 정체성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톰보이 TOMBOY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짧은 머리의 아이. 아이는 동네 남자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 보지만 아이들은 어딘가로 가버린 뒤였다.


그때 자신을 리사(진 디슨)라고 소개한 여자아이가 이름을 묻는다. 아이는 '미카엘'(조 허란)이라고 답한다. 미카엘은 파란색을 좋아하고, 달리기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며 싸움도 잘한다. 리사는 미카엘이 다른 아이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호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미카엘은 '로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다. 리사의 물음에 '미카엘'이라 답한 로레는 남자아이 행세를 하고 함께 어울렸던 것이다. 얼마 안 있어 동생을 괴롭히던 남자아이와의 싸움으로 미카엘의 정체가 로레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한정된 자유로움 


영화는 로레와 그의 아버지가 역할을 나누어 운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로레는 아빠의 무릎에 앉아 핸들을 움직이고, 아빠는 로레에게 방향 지시와 액셀과 브레이크를 담당한다. 로레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세계와 더 가까운 아이다. 파란색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로레는 자연스레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리사는 자신이 여자이기에 아이들이 축구에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사는 남자애들이 축구 하는 모습을 바라만 본다. 로레는 남자애들처럼 윗옷을 벗고 침을 뱉으며 멋진 축구실력을 뽐내지만 축구장 옆에 서서 소변을 보는 일만은 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다른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카엘이 아닌 로레로서 친구가 되었다면 그토록 자유롭게 놀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임신한 어머니와 동생 잔((말론 레바나)과 함께 있을 때의 로레는 자연스럽지만, 정적인 모습에 머문다. 잔과 놀아주며 초상화의 대상으로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씬이 대표적이다.


고무 찰흙과 파란 드레스 



로레는 수영하러 가자는 말을 듣고 찰흙 놀이를 핑계 삼아 남근을 대체할 찰흙 덩이를 만든다. 원피스 수영복의 윗부분은 거침없이 잘려나간다. 상의를 벗고 축구 하듯 스스럼없이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찰흙으로 만든 작은 덩어리를 넣어야 남자아이인 미카엘이 될 수 있다. 수영복과 찰흙은 미카엘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도와준다. 역할을 다한 찰흙은 로레의 보석함으로 고이 들어가 다시 쓰일 날을 기다리게 된다. 


동생을 괴롭힌 남자애와 싸우고 난 뒤 사과를 요구하러 온 남자아이와 부모로 인해 로레의 어머니는 진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로레의 거짓말을 사과하기 위해 파란 드레스를 입혀 끌고 간다. 로레에게 입혀진 파란 드레스는 모욕적이고 폭력적이다. 


고무찰흙도 파란 드레스도 로레에게는 폭력과 강요의 상징이다.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우스운지 보여준다.   



자기답게 살기 


결국 로레가 자기답게 살 수 없었던 이유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여성과 남성의 틀에 가두려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윗옷을 벗고 남자와 축구를 할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면 입 맞출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떠나 로레를 로레 자신으로 봐주는 사람이 없기에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리사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로레의 이름을 묻는다. 나의 이름을 물어봐 주고,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그렇기에 이 마지막 장면은 모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난 순수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난다. 


로레와 같은 사람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불편해해야 할 진실은 겉모습을 보고 타인을 낙인 찍으려는 자신의 마음이다. 파란색을 좋아하기에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닌,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ArtInsight #아트인사이트 #문화는소통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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