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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그 힘의 동력은?

드라마 <작은 아씨들>(2022) 리뷰

by 코두 codu

이 어마어마한 힘의 동력은?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막내 인혜(박지후)의 수학여행비 250만원에서 시작한다. 엄마가 갖고 달아난 바로 그 돈. 세 자매의 엄마는 그 돈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첫째 딸 오인주(김고은)와 둘째 딸 오인경(남지현)이 뼈 빠지게 모은 돈. 루이자 메이 올컷의 원작 소설과 가장 다른 부분이자 근본적으로 다르게 나아가는 지점은 부모의 부재이다. 극 중 인물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부모를 가지지 못한 상황과 다름없다. 주인공 세 자매의 부모는 빚을 남기고 필리핀으로 도망갔고, 원상아(엄지원)의 아버지 원기선은 식물인간 상태이며, 원상아와 박재상(엄기준)은 효린이를 제대로 양육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은 더 폭발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뻗어나간다. 어찌 보면 기반이 없는 불안정한 상태다. 이와 대비되는 상징적인 요소가 ‘아버지 나무’라 불리는 푸른 난초 나무이다. 부모가 없는 이들, 기반이 없는 이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든든한 뒷배의 자리에 이 푸른 난초와 아버지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수저론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든든한 아버지다. 즉 태생적 권위다. 정란회는 이들에게 그런 꿈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유령 난초’라 불리는 이름처럼 이미 죽어있는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 부모의 부재와 부자 아버지로 표현되는 힘에 대한 욕망의 대비가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끌어가는 큰 힘이라면, 그보다 강하고 단편적인 폭발력을 가진 또 하나의 힘은 돈과 죽음이다.


화영(추자현)은 자살로 하나의 인생을 마감하며 인주에게 20억을 남긴다. 여기서부터 사람의 목숨과 돈이 교환되는 듯한 관계가 성립된다.


“어떤 사람이 사람의 죽음을 돈으로 살까? 얼마나 차가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작은 아씨들>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돈과 죽음의 상관관계가 얽혀있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 가고자 한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밟으며 나아갔는지, 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 1화에서 인주가 20억을 얻게 된 순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 20억에 인주와 같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친한 친구의 죽음과 20억을 저울질하는 자신의 감정과 그 모습에 대한 자괴감은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가. 돈은 삶의 기반과 직결된다.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준다. 돈과 죽음, 그 원초적인 상관관계가 반복될수록 본능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힘에 이끌리게 된다.


이 작품의 동력에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힘이 빠질 수 없다.


전형적인 트로피 캐릭터의 빌런화, 원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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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초반 원상아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트로피 와이프’의 이미지로 보인다. 그러나 원상아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인주에게 드러낸 후반부터는 원상아 역의 엄지원이 극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상아는 엄마의 죽음 이후 ‘닫힌 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살인을 계속한다. 겉으로는 언제나 박재상의 사치스럽고 멍청한 아내를 연기하며 살고 있다. 원상아는 정란회의 주축인 것처럼 보이지만, 상아는 원기선 장군이 만든 정란회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에 맞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태생부터 높은 곳에 있었다. 돈도 타인의 목숨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형 놀이를 즐기는 아이처럼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천진하게 빼앗고도 “엄마가 나쁜 거”라며 눈물을 흘리는 이토록 매력적인 중년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엄지원 배우와 정서경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죽음마저도 푸른 난초 그 자체였던 원상아는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다.


바보스러운 캔디형 주인공? 총도 들고 수류탄도 던지는 믿음의 아이콘, 오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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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얼굴로 극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 인주도 처음에는 순진하고 바보 같기만 하다. 아니 사실 끝까지 인주는 순진하고 바보 같다. 인주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믿음’이다. 누구나 쉽게 믿어버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 큰 약점이다. 그래서 인주는 결혼 상대에게 사기를 당했고, 이처럼 엄청난 일에 휘말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캐릭터에 김고은 배우가 현실감을 부여하며 책임감 강한 K-장녀가 만들어졌다. 인주는 사람을 믿되 사람에게 기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믿음은 인주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달려가는 사람, 수류탄조차도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쓰는 사람이다. 극을 끌어가는 인주가 바보같이 사람들을 믿어버려서, 돈과 목숨이 오가는 와중에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고집스러운 둘째?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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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가난해지는지 궁금했던 인경은 돈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이용해 진실을 밝히는 기자가 된다. 어떻게 보면 가장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이다. 박재상이라는 인물의 놀랍도록 차가운 인간성을 대번에 꿰뚫어 본 통찰력 또한 가지고 있다. 세 자매 중 가장 이성적인 인경은 모든 사건을 뉴스로 해결하려 한다. 총이 아니라 진실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인경에게 돈의 흐름이라는 진실은 거대한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다. 혹자는 인경이의 캐릭터를 답답하거나 고집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자기만의 선이 명확하고 쇠처럼 단단한 여성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렇기에 극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축이 되어주어서 속이 시원했다.


사랑과 예술을 아는 합리주의자, 오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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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혜는 굉장히 독립적인 인물이다. 언니들이 자신을 위해 무리해서 돈을 마련하는 것보다 자신의 그림을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편하다. 인혜는 야망과 권력욕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내다 파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갈 단단한 아이였다. 불안한 효린을 옆에서 다독여주고, 납치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인혜다. 인혜와 효린이의 관계는 특히나 새로운 관점이면서도 정서경 작가다운 선택이라 좋았다. 영화 <아가씨>가 연상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보다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미스터리한 존재감, 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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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진화영이다. 누구보다 돈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인물이다. 화영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사라진 비자금 700억은 정란회의 실체를 파악하는 시발점이 된다. 화영은 원상아가 바라던 대로 횡령으로 사치를 부리고 개복치처럼 죽어버리는 허영심 많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다. 화영 언니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돈에 지배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 화영은 가장 경리다운 방식으로 심판을 내린다. 전체적인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인주가 걷는 길 앞에는 언제나 화영이 있었다. 어찌 보면 극의 흐름을 이끈 진짜 주인공 중 하나다.


돈이 어디로 흐르는가, 어디로 흘러야 하는가.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마지막 700억에 대한 처분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각기 세 자매가 상징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 진실을 추구하는 단단한 이성 그리고 순수한 사랑과 예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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