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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Jun 02. 2023

호랑이는 교실에 어울리지 않아

나의 청소년기는 가슴에 늘 불이 붙어있는 상태였고, 불길을 잠재우려 늘 물을 끼얹어야 하는 전쟁통이었다.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 않은 때에도, 내 몸은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공교육이 독약처럼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기억이 나지 않는 아기 시절에도 아침에 여유롭게 벌렁 누워서 엄마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엄마, 유치원은 도대체 왜 가야해?”


어른들이 아직도 가끔은 꺼내곤 하는 귀여운 썰이 되어버렸지만, 그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마음을 납작하게 내뱉어 본 것일 테다. 내 삶에서 학교는 너무 고통스러운 곳이었으니까.


내가 견딜 수 없던 것은 선생님 한 명의 단편적인 해석을 달달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도 수업의 주체로써 공부하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싶었고, 내 방식으로 해석해서 정보의 의미를 연결하고 싶었다. 슬프게도 그런 욕구를 오독하지 않는 어른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나는 그저 수업이 끝나기 직전까지 질문을 해 대서 반 아이들의 눈총을 사는 별스러운 학생이었다.


간신히 버티는 나. 답답해서 앞머리를 쥐어 뜯어대다 이마 라인에 작은 땜빵을 만들었고, 속으로 천불을 내며 화를 냈다. 갈 곳 없는 감정들은 내 마음속에서 삭아가며 좌절과 슬픔이 되었고 이내는 무기력으로 조용히, 아주 무겁게 가라앉았다. 학교에 가는 매일매일 그런 마음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감정들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나는 어떻게 된 애가 그렇게도 힘들었으면서 탈선하지 않았다. 모르겠다. 내 안의 선함과 두려움, 인정욕과 야망이 맛있는 칵테일처럼 적당히 잘 섞여서 그랬을까? 내가 할 수 있던 거라곤 쉬는 시간에 늘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그나마 들을 만한 수업이라고 생각한 선생님 수업을 열심히 듣고 아닌 수업에 잠을 자는 정도였다. 제일 큰 일탈은 점심시간에 무려 학교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온 것 정도였으니.


우리 학교는 물리적인 담은 없어서 나가고 싶으면 그냥 나가면 되었다.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자마자 참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동네를 거닐었다. 유감스럽게도 5분도 되지 않아 선생님과 마주쳐서 산책은 끝이 났다. 나는 불량 학생인 양 훈계를 듣고 깜지를 썼다. 


너무 많은 권리를 참 쉽게도 훔쳐 가버린 학교를 학생이라는 을의 신분에서 계속 이해하고 인내하려고 노력했던 지난날들. 나는 그렇게 거대한 것에 화를 내도 되는지 잘 몰랐다. 그래도 화를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내 자신이 교실에 우두커니 자리한 호랑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나는 그 공간에 비해 무척 크고, 아주 위압적인 안광을 띄고 있다. 콧바람과 함께 내 낮은 숨소리가 그르릉 거리면서 공간을 압도한다. 이내 나는 텅 빈 교실의 집기를 하나둘 커다란 발로 부숴버린다. 의자를 날려 창문이 깨지고 책상이 구겨진다. 교탁도 발길질 몇 번에 납작해진다. 호랑이인 나는 사과를 하지도,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애초에 공간과 화해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내가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에서 상상으로 간신히 숨통을 틔웠다면, 이제는 힘을 내서 내 분노를 내놓는 어른의 내가 있다. 듣는 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드럽게 다져 줄 때도 있고, 울컥 쏟아질 때도 있고, 전하지 못하는 편지를 쓰면서 신나게 칼춤을 추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늘 내보내려고 애쓴다. 특히나 나를 화나게 한 대상이 나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일 때,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무섭지만 그만큼 더 화내고 싶다.


이전 회사에서 일할 때 무척 화난 적이 있다. 계약직이었지만 정규직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공석이었던 정규직 자리에 신입이 왔다. 그러자 상사는 내게 당장 내일부터 일을 다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생전 그런 적 없었는데, 30분 넘게 자리를 비우고 근처 카페에서 시킨 커피를 노려보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이번만은 정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달래주시는 선임이 상사에게 예쁘게 돌려서 말해주는 것도 원치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당장 싸우고 퇴사해도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하고픈 말을 털어놓았는데, 되려 사과와 칭찬 일색이었다. 내가 일을 잘하니 빈자리가 클까 봐 잘 넘겨주라는 걸 그렇게 표현했다며. 황당하지만 나로서도 다행스럽게 조용히 넘어갔다. 흥! 내 기백에 조금 놀란 건 아닌지, 당신. 알게 모르게 상상 속 호랑이의 기운을 받고 있나 보다.


앞으로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노가 움츠리지 않고 당당히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애쓸 것 같다. 내가 유달리 정의로워진 게 아니고, 그냥 털어내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더는 견디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냥 그 책임도 자유도 감내하고 싶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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