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헤에취.
깊어가는 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몇 안남은 좌석에 앉자마자 재채기가 터져나왔다. 후드집업 한벌 달랑 입고 나왔던, 내 몸은 밤공기에 충분히 적응했으나 내 코님은 적응치 못하신 게다. 에취. 헤에취. 세번, 네번, 다섯번째 이어진 재채기에 옆자리의 할아버지께서 바스락 거리기 시작하신다. 묵묵히, 마스크를 쓰신다. 내게 타박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아니, 그 그런게 아니오라 아버님. 비염인데. 비, 비염인데...요 저 바이러스 아닌데.
해마다 반복되는 WWE같은 V염의 침공. 15도를 오르내리는 가을의 문턱까진 괜찮은가 싶더니, 10도 근처로 기온이 하강하자 이번에도 득달같이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콧물이 내내 코 안쪽에 남아있는 불쾌함. 힝 하고 코를 풀어도 시원하게 콧물이 나오지 않는 이 찝찝함. 목과 코 안쪽이 간질간질하다가, 터저나오는 재채기.
V염이 언제 내 곁에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에 축농증이 유달리 심헀다는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소년 시절 감기가 걸렸다 하면 코감기로 옮아갔고, 체력단련이 안되어 면역력이 약하던 그 시절엔 일년 중 겨울 두 달은 코 밑이 헐어있었다. 왜 하늘은 나를 낳으시고 V염을 또 낳으셨나.
한창 건강과 활력이 넘치던 청년기에도 겨울만 왔다 하면 V염이다. 나 자신은 생활에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 늘 있는 WWE 아 아니 늘 있는 재채기에 콧물은 익숙한 동반자다. 운동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 나머그 너머로, 번지진 않는다. 주위 사람이 불편할 뿐. 이놈의 재채기 때문에 공공시설에서 눈총을 받을 때가 제법 있단 말이다. 두 주 쯤 전이던가, 좀 밀집된 시설에서 실내 모래놀이터가 있어 아이랑 앉아서 놀아주는데, 모래 속에 있던 미세 먼지들이 나의 취약한 비강을 간지럽히면서
헤에취.
에취.
흐에취.
오빠 좀 고개라도 돌리고 해 죄송하잖아.
아 네 죄송합흐헤에취.
아 잠깐만 애 좀 보고 있어 나 화장실 다녀올게.
응.
이런 일이 좀 생긴다. 재채기를 가리느라 푹신 젖어버리는 내 옷소매와 목덜미는 그저 약간의 엑스트라랄까. 건조한 겨울 바람에 코가 완전히 적응하기까지 한 2,3주는 걸린다. 이 기간을 비염 약을 먹으며 달래던 때도 있지만 그것도 몇 해 하고나선 좀 무뎌졌다. 그저 이때쯤, 아 시작이구나~ 하고 V염은 스쳐가도록 두고, 나는 감기나 안걸리도록 조심하는 게 내 할 몫이 되어버렸다.
딸이 벌써 네살, 곧 다섯살이 되는 나리아 아빠처럼 V염을 달고 살지나 않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콧물로 특별한 예후는 없다. 어릴 때 V염은 잡아줘야 한다는데, 피지오머...피지오머가 국내 판매가 중단되어버리는 바람에 그만...어찌될지 모르겠다. 조만간 약국 다시 한번 가봐야 하나. 따님께서 피지오머로 비강청소를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 통 안해줬더니, 얘도 환절기 들어 코딱지가 보인다. 빼주겠다고 아빠가 면봉을 가지고 가면 내 손을 밀어내는 녀석.
애니웨이, 어제를 기점으로 이제, 제~법 알찬 가을 바람이 분다. V염도 분다. 내 옆자리에 앉으신 으르신들의 마스크에도, 바람이 분다. 내 손으로 막았으나 옆으로 새어나가버린.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뭐 어찌하리오. 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