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소임
교직에 있다보면 싫어도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못할만큼 끔찍한 사고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피해자가 되고 있는지, 또 그 피해가 얼마나 널리 퍼지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말이다. 그것은, 싫어도 알게 된다. 평온한 일상 속에 불쑥 송곳처럼.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의 일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왔다고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친구에게만 털어놓고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 친구조차도 더 이상은 비밀을 지켜주기 힘들어,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최근 이 피해 여학생이 성기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고, 산부인과에 같이 가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고 있다는 것을 여학생의 오빠가 알게 되었는데, 오빠는 자기도 성폭행을 하고자, 관계를 요구했고, 그것을 알게 된 아버지라는 인간은 아들을 두들겨 팼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상담을 들은 당사자인 교사가 하도 어이없어하며, 감히 입밖으로 내는 것조차 고통스럽다며 힘들게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세상은, 이토록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폭력적이다.
이 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이틀 전의 일은, 두 주쯤 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준석의 '젓가락' 발언을 환기시켰다. 한 평생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 이준석의 발언은 거대한 폭력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사회에는 아직도 여전히, 감히 입밖으로도 내지 못할 일상의 성폭력이 만연하고 있으며 때때로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당하는 성폭력 그 이상으로 끔찍하다. 개개의 경험은, 누구나가 겪을 수 있다는 공동의 공포가 되고, 보호해주지 못한 친구의 고통이 되어 날것으로 일반의 여성들에게 향한다. 생물학적 사회적 남성의 우위성은 여성에게 절대적 공포다. 그 공포를, 이준석은 세치 혀로 자극했다.
한국 뿐 아니라 다수의 사회에서 여성은 절대적 약자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는 양성평등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성별 간 갈등 문제의 해결도 어렵다. 현대 국가의 기본 책무는 이러한 성별 간 권력구조를 개선하고,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윤석열조차도 이 사실을 끝내 받아들였다. 여성가족부는 왜 폐지되지 않았을까? 이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윤석열은 비록 김건희의 꼭두각시라는 의혹은 있을지라도 계엄을 통해 국회에 군인을 보내 점거를 시도한 정신병자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하려는 미치광이다. 이런 자가 핵심 지지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여성가족부를 해체하지 않고 존치한 것이, 단지 여성 표를 등에 업은 민주당 때문일까? 정부조직법 개편 이외에도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예산을 확확 깎아버리거나, 업무 분산 및 조직 개편으로 무력화하는 수도 있다.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고, 결국 윤석열조차도 여성가족부를 존속하는 길을 택했다. 예산은 해마다 늘었고 친 윤석열 정부인사가 여성가족부의 요직을 차지했다. 결국 윤석열과 같은 극단주의자도 국가의 수반이 되고 나서는 약자인 여성을 보호한다는 정부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 자체가 나태하고 부조리가 많은 조직이란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성이 경험하는 피해는 생각보다 거대하게 은폐되어 있고 이런 피해를 경감하기 위한 노력은 명시적인 역차별의 형태로 남성에게 가해진다.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는 일을, 사후적 처벌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뭘까.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 성적 자극으로부터 정서적인 보호를 강화하는 수 밖에 없다고, 정책결정권자들은 인식한다. 그러니 성평등 교육이 강화되고, 대중문화를 '정화'하려는 조치가 수행된다. 기성세대가 저지른 비행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게 되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없고 오히려 여성으로부터 성선택 소외를 경험하는 다수의 남성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방식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한 정책은 다수의 남성들의 반발을 부른다.
그들의 적개심은 정책결정권자들을 향하지만, 윤석열 정부이든 민주당 정부이든, 혹은, 전혀 의미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이준석 정부가 들어섰다 한들 여성가족부와 같은 정부조직이 존재하고 여성을 보호해야한다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한다는 것은 그나마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는 성평등을, 인도와 같은 국가 자체가 여혐 수준인 사회공동체의 방향으로 나라를 흐르도록 한다. 어느 수준에서 그 흐름이 정지될지의 문제일뿐이다.
한 가정의 근친 성폭행 문제가 전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개인의 문제"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우리 전체의 보편적 문제"로 전환되는 여성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사회적 취약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젓가락 발언의 당사자와 그 지지자들께서는 이 사실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는듯하지만, 여중생의 사건을 직접 전해들은 입장에서 그 발언은 그토록 잔인하게 내게 되새겨졌다. 나도 누군가의 그 성기에서 태어났기에. 그 발언이 나 자신의 어머니를 향할지도 모르기에.
마땅히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남성 집단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가능한 일이다. 남성 집단 내에, 기성세대에 몰린 권력을 다른 세대에 분점하고, 연령과 계층에 따른 차이가 없어지고, 그렇게 되어서 충분히 많은 젊은 세대의 남성들이 자신의 자본을 여성들과 서로 나눌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이런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정책을 펼칠 뿐이다. 개인 수준의 실천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적 문제는 국가의 개입을 피할 수 없다. 이 또한, 현대 사회의 성원인 우리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명제다.
어떻게 성평등은 가능할까. 많은 의견들이, 어느 시기에나 있었지만 원인은 명확하다. 지향점도 명확하다. 실천을 위해 얼마나 토양을 마련할까의 문제다. 누가 보아도 기성세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나는 한 여중생의 고통이 너무나 생생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런 자발적 실천의 단초일지 모르겠다. 같은 남성들에 대한 미안함을 끌어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