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생산성과 국내총생산, 그리고 육아 비용의 관계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통하여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을 "개인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라 설명했다. 예측 불가능성의 근원은 기술의 고도화다. 인간을 둘러싼 관계망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엮이며 고도화된 결과, 우리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노출된 삶을 살게 되었다. CCTV와 몰카는 동일한 기술 고도화의 결과물이며 주식에서 돈을 버는 것도 잃는 것도 같은 자본의 거대한 상호작용의 결과다.
위험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 방식은 말 그대로 리스크 관리다. 선진국마다 밀어닥친 거대한 저출산의 물결은 경제와 산업이 고도화된 국가에서 위험이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하고, 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높아짐을 상징한다. 후발 산업화 국가인 우리는 IMF와 같은 대규모의 경제적 위험에 따른 가정의 파괴와 대규모 실업을 경험하고서야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급격히.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그 뒤에 이어진 사회 집단 간의 위협, 그라고 위험의 인식은 한국인에게 결혼과 출산이 크나큰 리스크로 인식될 충분한 양분이 되었다. 외재적 요인이든 내재적 요인이든 간에, 저출산은 결국 위험에 대한 비상한 인식의 결과다. 그리고 이것은, 위험 인식 수준이 충분히 낮아지기 전까지는 해소되지 않는다. 애를 낳고서도 나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확고히 자리하기 전까지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물건을 팔아야 하니, 부동산 폭탄을 떠넘겨야 하니 자본권력은 청년에게 아이를 낳으라 한다. 그리고 언제든 너 따위는 갈아치울 수 있다며, 다 큰 노동자를 아무렇지 않게 죽여댄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율은 OECD에서 가장 높다. 산업재해로 인정된 건에 한하여 1년에 500명에서 800명 가량이 숨진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수를 따지면 당연히 더욱 많다. 2024년에 24만명이 약간 안되게 태어났으니, 산업 재해 사망자의 중간값을 600명 정도로 대강 산정하고 신생아를 24만명으로 대강 추려 계산하면, 400 분의 1 수준으로 산업재해 한가지 요인에서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저출산 국가에서 400명의 신생아 중 한명이 반드시 사망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친 자본적인 한국의 언론, 그리고 보수 정권은 출산의 가치만 과대평가하면서 노동자의 목숨은 헐값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신생아를 낳고 노동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까지의 19년 간 어마어마한 자본이 순수히 소모된다. 반면에 20대, 30내 청년 노동자는 이미 경제가치 창출까지의 비용 투자가 끝나고 이제 평생 돈을 벌어 쓸 수 있는,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는 소중한 경제변수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시기인 20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오늘, 노동자들이 열심히 돈이나 벌고 쓰라고 권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유용하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리 선망하던 국내총생산이나 노동생산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면, 나라의 존속을 바란다면 청년들 보고 아이를 낳으라고 등을 떠밀 것이 아니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안심하고 일하고 돈을 벌어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나 벡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고도화된 위험사회의 기술적 연결망은 우리를 위협하는 모체를 은폐하며 위험을 사람들에게 흩뿌리고 있다고. 자본 권력에 결탁한 행정 사법 권력은 바로 오늘, 지금 즉시 국가를 이롭게 할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기술적으로 회피하며, 논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본 권력의 사악한 이기심을 은폐한다. 이는 극도의 모순이며 비효율이다. 그러나 이것이 위험사회의 전형적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어 마중물을 마련했고, 이재명 정부에서는 산업재해가 다발한 산업현장을 순차방문하고 있다. "쪼이고 쪼이고" 하는 저출산 정책 따위보다, 국가경제적으로 훨씬 진일보한 정책행보다. 진짜로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과 노동자 출신의 노동부 장관이 직위를 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 개인은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안전교육을 중심으로 한국의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작 2년만 더 자본을 투자하면 사회로 진출해 돈을 벌고 쓸 소중한 목숨이 300명이나 사라진 사건이기도 하다. 국가변란을 거쳐 이제 다시 회복된 나라에서 "생명"의 가치가 재인식되길 바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출산 통계보다는 지금 살아 땀흘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이, 그들의 경제적 가치만큼이나 좀 제대로 인식되고 평가되어, 국가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