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훈은 어떤 지점에서 실패했는가.
1. 성기훈의 목적, 그리고 비인간성
시즌2와 3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성기훈은 왜 게임에 뛰어들었는가 하는 당초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기훈의 선택이 없었더라면 시즌 2와 3은 성립하지 않는다.
성기훈은 목숨을 건 게임에서 가까운 이들을 잃으며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함에도, 끝까지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인간을 구조적으로 비인간화하는 기재인 "오징어게임"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음을 알고, 이 게임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추적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 선택이 딸과의 만남을 포기한다는 반대급부를 수반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선택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인간"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시즌1의 결말에서 하나뿐인 가족인 어머니를 잃은 그는 딸, 즉 가족을 또 다시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선언을 했다. 죽은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살아있는 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이들과의 시간을 소중히해야한다. 성기훈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오징어게임 이전의 한심한 삶과는 결별했지만, 다시 심신을 회복한 그는 인간일 수는 없는 존재가 되었다. 딸과의 만남을 포기하고 게임을 막겠다며 비행기승강구에서 되돌아나오는 그의 모습은,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그가 이미 "비인간"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시즌2,3에서 성기훈의 목적은 오징어게임을 막는 영웅적인 것이며,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인간적인 것과는 분리된다. 성기훈에게 이미 "인간"의 가치는 다른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될 수 있는 것으로 변화되어 있다. 시즌2 후반부에서의 호불호가 갈리는 전개는, 그가 시즌1에서의 사람 좋은 허당 "깐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대의가 좋아도 무수한 사람을 희생하는 작전 시나리오를 이행하고, 실패가 뻔한 도전을 무리해가며 펼쳐가는 것은 시즌1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고, 일반인의 상식과도 다른데, 이것은 시즌1의 결말에서의 선택으로 이미 결정되어있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내가 볼 때에 시즌1에서 성기훈이 딸과의 만남을 포기하고 오징어게임을 멈추겠다고 한 선택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서도 게임에 참가하겠느냐 하는 질문에 "그렇다"를 택한 것과 같다. 이러한 심리 상태에서 시즌2,3의 성기훈의 선택과 행동들이 이어진다. 시즌3에서 준희의 아이를 보호한다는 선택 역시 인간적인 것와 영웅적인 것 사이에 걸쳐있기에 우리에게 혼란을 주지만, 결말에서 그의 선택은 "비인간"이자 "영웅"으로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어렵다. 455명이 죽은 살인 게임이었고, 성기훈은 소중한 동생들을 잃었고, 그로 인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사람에게 "너는 뭐 말도 안되는 영웅이 되겠다고 하고 있어?"와 같은 평가는 어렵다. 그는 오징어게임에 참가함으로써 이미 비인간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즌1에서 이미 결정되고 완성된 그의 캐릭터는 시즌2와 3에서 잘 유지되고, 결말에서 통합된다고 볼 수 있다.
2. 오징어게임을 막을 수 있는가?
그러면 관객으로서 우리는 "오징어게임을 막는다"라는 성기훈의 비인간적, 영웅적 목적의식에 공감된 상태에서 시즌2와 3을 보게 되는데, 여기에서 한가지, 이 시리즈 자체에 크나큰 전제가 생겨버린다. 시리즈가 글로벌히트하면서, 미국판 <오징어게임>의 제작이 결정된 것이다. 제작진은 한가지 선택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1)성기훈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을 보인다 = 오징어게임을 파괴한다
(2) 성기훈의 목적이 실패한다 = 오징어게임을 지속한다
(1)을 택하면 미국판 <오징어게임>의 설정을 다듬어야 한다. 성기훈에 의해 파괴된 오징어게임이 운영될 수 있는 다른 장치들을 만들어야 하며, 세계관이 더 크게 확장되는 부담도 생긴다. (2)를 택하면 미국판 <오징어게임>의 설정을, 원작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특히 프런트맨을 다수 유지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이 선택지에 대한 해답이 시즌2의 결말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성기훈이 얼토당토 않은, 심지어 연출 자체도 지루하고 의미없는 총격적으로 꾸며진 쿠데타를 진행하고, 실패함으로써 마무리된 것은 오징어게임을 멈춘다는 "영웅적 목적"이 실패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으로 생각된다.
그로 인해 관객은 두 가지, 감정적인 충격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첫번째는 이처럼 비인간화된 성기훈이 "반대" 팀의 목숨을 소모품처럼 처리한 것이고, 두번째는 허무하게 쿠데타가 실패한 점에 대해서다.
극 외부적으로, 시리즈 전체적으로 고려했을 땐 자연스러운 귀결이겠지만 극에 몰입을 유지해가며 소중한 시간을 시청에 투여한 사람들로써는 마땅히 실망스러운 결정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그저 사후적인 것이고 극을 보던 당시에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었다.
이러한 관객의 불만족과, 극의 주체 성기훈의 핵심 목적의식의 붕괴 속에서 시즌3가 시작된다. 오징어게임은 막을 수 없다. 도리어, 오징어게임의 주체들은 "투표"를 통해서 참가자들을 분열시키고,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이것은 현실의 자본주의 게임에서 경제주체들에게 제한된 선택지를 부여하고 그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타당화하는 전략을 잘 묘사한 것이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다만 이처럼 강화된 통제장치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대안도 모색되지 못하는 점은 극의 결말이 일종의 허무주의로 비치는 면모를 강화한다. 본래부터 시즌1에서 이러한 통제권력의 비인간화 조작 속에서도 성기훈의 인간성과 "깐부 아이러니"는 극의 긴장을 유지하는 소중한 요소였으나, 시즌3에서 보다 강하고 악랄해진 통제권력의 조각기제를 극복할 수 있는 그 어떤 방안도 없다. 그나마 유일한 해결책은 성기훈의 승리였으나, 그는 승리하고도 실패함으로써, 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암담한 결론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3. 허무한 메타픽션?
성기훈의 "비인간화"를 알린 시즌1의 결말, 성기훈의 "영웅적 시도의 실패"를 알린 시즌2의 결말에서 시작한 시즌3는, 결국 인간도 되지 못하고 영웅도 되지 못한 성기훈이 예견된 실패의 레일을 달리는 허무한 메타픽션처럼 비친다. 잔혹한 통제권력에 맞설 인간의 불꽃이라 할 준희의 아기는 극의 긴장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라 느껴진다. 인간의 불꽃 측면에서는 현주의 서사 정도가 납득되는 이야기였으나 이야기 내에서의 배치가 좋지 않았다.
중심기둥인 오징어게임에서 갈등과 긴장감이랄 것이 작동하지 않으니, 서브플롯인 탈북자 노을의 이야기나 프론트맨의 동생 준호의 추적극 모두가 힘을 잃게 된다. 노을의 이야기 역시도 허무적 비극이었고 준호의 이야기는 결말이 허무하다. 두 조연의 이야기가 힘을 받으려면 클리셰적으로, 시즌3에서 기훈의 쿠데타가 오징어게임을 위협하는 수준까진 갔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런 전통적인 액션활극으로의 전개가 시리즈 고유의 색상은 아니라고 느껴지기는 한다. 오징어게임은 오징어게임으로 끝나야 한다. 이런 의식이 제작진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는, "오징어게임"도 <오징어게임>도 흔들 수 없다는 전제를 제작진이 인식하고 있음을 친절히 설명한다. 그러니까 관객 역시도 이를 천천히 인식한다. 세상은 바꿀 수 없다. 우리의 행동은 어떤 의미도 없다. 새 생명의 탄생으로도 이 구조는 바뀌지 않으며, 사람들의 이기적 본성도 바꿀 수 없다.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시즌1부터 이어지는 이런 일관성에 주목하는 평론가라면 우수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 허무주의적 세계관에 공감하는 사람도 충분히 많고, 클리셰적인 결말을 클리셰적이지 않게 잘 포장한 결말에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서 <오징어게임> 시즌3는 충분히...자기의 할 말은 하고 있다. 메타픽션적 이해 속에서, 에필로그 역시도 납득은 된다. 성기훈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방식이 타당하고, 준희의 아기가 맞게 된 결말도 그럴듯하다.
요점은, 시즌2,3에 접어들어 "오징어게임"은 "성기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이 아닌 통제권력이 주인공이 된, 그래서 결국 "구조"에 주목하게 되고, 인간이 아닌 "소재"와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것이 <오징어게임>의 현재다. 그래서 아마도, 인간도 영웅도 되지 못한 성기훈이 아니라 <오징어게임>의 진정한 주인공인 프런트맨이 이후에 더욱 큰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판 오징어게임이 나온 뒤에 프런트맨 프리퀄 시리즈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매년 반복되어 온 살인게임에 참가했던 한 사람의 우연한 승리자에 불과한 그가 이 세계를 바꿀 힘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징어게임"이 왜 시작되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그것을 풀어내는 데에 제작진의 목적의식도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더 확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그래서 풀어낼 것이 더 남아있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단 하는 것 좀 지켜보자"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평가는 다음 시즌, 아마도 미국편이 공개된 뒤로 미루는 것이 나을듯하다.
다만 성기훈에 대한 최종적인 어떤 평가는 합당하게 이루어지면 좋을 것인데, 첫 시즌을 견인한 캐릭터이므로, 그는 비록 인간도 영웅도 되지는 못했지만, 이 구조에 끝까지 저항했던 사람이었다. 즉, 이 이야기는 허무한 메타픽션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기에, 결과만을 이야기할 때 허무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살아서 무엇을, 왜 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성기훈이 인간의 길을 포기한 것도, 영웅이 되고자 했던 것도 이 부당한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가 인간으로서도 영웅으로서도 실패했다고 한들, 이 저항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저항한 자"로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결말을 오징어게임의 주체들과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그렇기에 그는 실패한 지점이 있었다 할지라도, 인간과 영웅을 벗어난 또 다른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적어도 작중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