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외출타기, 그리고 웃음 <왕과 사는 남자>

400만 넘었네

by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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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인물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한명회라는 완벽한 거악은 바늘 하나 샐 틈 없는 악의 장막을 펼쳐, 시종일관 희망을 주지 않는다. 단종의 협력자로서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가 지나치게 다양한 역할이 배정되어, 그가 단독으로 극을 이끄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그 밖의 인물들은, 통속적인 영화들이 그렇듯 딱딱 도구적이다. 일부의 인물들은 각본가가 고민조차 하지 않은 흔적이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전미도가 연기한 궁녀 매화나 흥도의 아들 태산이 그렇다. 극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고 극에서 쓸모를 다 한 뒤에는 잘 대접받지 못한다. 한명회와 단종, 흥도 이 셋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극을 이끌어가기 위한 소품으로서만 기능하거나 웃음의 소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독의 선택은, 제목처럼 <왕과 사는 남자>에 집중하기 위해, 의도적이지는 않더라도 필요에 따라 들어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단종의 비극을 2시간 동안 은막에서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를 통해 흥도가 직면할 딜레마를 관객에게 잘 몰입시키기 위해선 이것이 최선이었을 터. 압도적인, 그러나 평면적인 한명회가 역시 도구적으로 쓰이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광천골의 사람들은 단종의 비극을 부각하는 소품으로,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운동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소품으로, 이렇게 구도를 단순하게 만들고 감독은, 분명 통속적일 것이 뻔한 최루탄을 들고 크레딧 앞에 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렇게 간명한 인물 구도를 가지고 <왕과 사는 남자>는 거대한 암흑 속에서 파리하게 흔들리는 두개의 등불의 위태로움을 조명한다. 한명회라는 장막에 의해 두개의 등불이 명확한 대비를 지니며 빛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단순한 인물들과 다르게 단종과 흥도는 각각 굉장한 입체감을 보이며 극의 결말까지 격렬한 감정을 관객에게 유발한다. 그것은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활시위의 팽팽함과 같다. 단종과 흥도는 줄 위에 서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 밑에 아가리를 벌린 한명회의 존재를, 그들은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약속된 비극을 향해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부풀려진 헛된 희망은 신파극의 감정을 고조하고, 대중이 알지 못했던 단종의 죽음의 내막과 그에 곁들여진 상상력이 흥도라는 인물에 결합되면서 사뭇 깊은 감정을 전달한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끊어지듯.


영화가 가진 매력은 엄흥도라는 인물의 재창조인데, 다른 인물들을 소거한 뒤 빚어낸 이 인물이 유해진의 연기력으로 미친 활약을 한다. 다만, 그 정도가 과한 점은 영화의 평을 깎아먹는 요소이고 이 점은 다른 도구적인 인물들을 보다 다채롭게 활용했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지환이 연기한 영월 군수 역시 지나치게 코미디에 치중된 인물이라 좀 더 다양한 코드를 심어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들. 명작의 조건이 꼭 무게감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취할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을 버린 다음, 웃음 한스푼만 덜어내고 무게감 한스푼만 더 했어도 훌륭한 영화라는 평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차피 인물에 집중된 영화이니, 몇몇 캐릭터들만이라도 조금 더 입체감을 주었더라면.


오랜만에 극장에서 다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영화다보니 중장년 관객들의 비율이 높아 흥미로왔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그 아는 맛에서, 정말 새로운 무언가를 놀랍게 생생히 이끌어낸 영화. 어차피 신파극인 것을 다 알고 가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이채로운 광경에 이 영화가 퍽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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