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황금손

8살에 스스로 바지를 꿰메어 입고 소풍을 간 소년이 아빠가 되어서

by 공존

"앞에서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얘가 여길 흰실로 꿰메놓은 거야 참내-."


8살의 봄 소풍날, 그보다 몇일 전. 신나게 놀다가 바지 옆이 튿어졌다. 나는 집에 와 실과 바늘을 찾아, 꿰메어두었다. 엄마가 이불을 다듬는 두꺼운 이불실. 그리고 대바늘. 여덟살 아이의 남색 바지엔 북두칠성처럼 비뚤빼뚤한, 하얀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바지를 입고, 봄소풍에 가, 모두의 앞에 나가, 노래자랑을 했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바지 옆 바느질 상태를 본 엄마는, 그대로 뒷목을 잡으셨다지.


이것이 주체성이 흘러넘치던, 그래서 바쁘신 부모님의 공백을 스스로 메우던 나의 황금손이 만들어낸 굵직한 에피소드의 하나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내가 성인이 된 뒤에 가족 모임에서 몇 차례 꺼내셨다. 그다지 미친 주도성을 가진 이 황금손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가정 시간에 바느질로 지갑만들기를 하게 되자, 환상적인 시침질과 박음질로 담임선생님의 입을 벌어지게 하고도, 친구들의 지갑까지 만들어준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그리고 딸이 여섯살을 맞았다.



"아빠가 이거 만들어주는 거야."

"응? 으음..."


딸 아이는 유치원에서 여러가지를 배워온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배운 것을 우리에게 조잘대길 잘 한다. 그날도, 유치원에서 종종 하곤하는 종이인형 같은 것을 집에서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더니 나에게 인형을 만들어달란다.


"이걸로 만들어줘?"

"응! 아빠가 다시 그려봐."


따님은 새침하게 말하며 다시 자기 그림에 집중한다. 뭐든 그려서 오리고 노는 걸 좋아하는 시기다. 나는 종이 두장을 붙여, 스케치를 한 뒤 아이의 그림을 버전업해서 그리고 오려내 모양을 잡고,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그리고 그림을 오려내고 남은 종이를 구겨서 부피감을 만들고 안감을 채웠다.


"자."

"우와. 근데 아빠."

"응?"

"푹신푹신하지않아."


아이가 인형을 잡더니, 눈썹을 찡그린다.


"솜...을 해야하나. 집에 솜이 있나?"

"내가 보고 올게!"


일반적으로, 요즘같은 시절에 집에 솜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따님께서는 안방으로 드다닥 뛰어가시더니, 우당탕쿵쾅 하면서 내게 뭔가를 들고온다.


"이거 봐! 솜 있어 아빠!"

"헐."


아이는 엄마의 화장솜을 가지고 와서는 자리에 앉았다. 이런...창의성. 나는 인형의 배를 도로 따, 종이로 채웠던 속을 빼낸 뒤 아이와 다시 속을 채웠다. 아이는 화장솜을 하나하나 찢어서 부피감을 만든 뒤 양쪽 귀와 두 다리까지 도톰하게 솜을 채워 인형을 완성했다.

"얘 이름은 키크...아니 이키크야."

"이키크?"

"응. 히힛. 좋아."


그렇게, 완성된 종이인형을 아이는 끌어안으며 좋아한다. 인형을 새로 사주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의 작명 센스엔 일관성이 없다. 우산이귀요미, 고요래, 이키크, 장화우 등등. 상상의 나래가 넓은 그 나잇대의 자유로움.


그러나, 잠자리에서까지 인형을 끌어안고 들어온 아이에게, 당연히 문제가 생겼다.


"으앙!"

"왜?"

"아빠 다시 붙여줘-."


아이가 인형을 끌어안고 누우면 당연히 이리 저리 뒹굴며 얇은 종이는 버티지 못하게 마련. 다시금 다리와 귀가 차례로 찢어졌고, 그렇게 한밤 두밤 지나고 나니 종이인형은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스카치테이프에 감싸였다.


"동백아 아빠랑 다시 만들어야겠다."

"좋아! 근데 어떻게 만드는데 아빠?"

"보면 알아."

그래서 약 일주일 뒤, 주문한 원단이 도착해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이번엔 저번보다 더 알록달록, 두 팔까지 추가해서 그림을 완성했다. 나는 그림을 옆에 두고 원단에 스케치를 한 뒤, 시침질을 하고 천천히 오려냈다. 손바느질을 하는 것은 오랜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그리 좋진 않다. 허접한 싸구려 반짓고리 밖에 없어 실도 바늘도 가장 미니멀한 사이즈들이다. 그러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인형 하나 만들기엔 안될 것도 없는 조건. 아이를 보며, 유튜브 영상도 보며, 소화도 시키며 천천히 바느질을 한다. 앞뒤를 뒤집어가며 종종 상태를 확인하고, 튼튼하게 박음질을 반복한다.


솜을 넣을 옆구리만 남기고 말끔하게 바느질을 완료. 하룻밤에 다 끝내지 못해, 이틀 뒤에 바느질이 끝났다. 이제서야 시침질했던 실까지 뜯어내니 훨씬 보기 좋다.

"동백아. 이제 색칠해야해."

"응! 아빠, 얼굴은 내가 그릴 거야."

"당연하지."


아크릴물감이 있다거나 했다면 염색도 시켜봤을 것이고 만약에 그랬다면 팔과 다리를 따로 제작해서 마지막에 합쳤겠지만, 지금은 그럴 정도로 애를 쓸 일은 아니다. 원단이 크다. 앞으로 열댓개는 더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아이가 커가며 이뤄질 일이니, 이번엔 간단히. 보드마카로 알록달록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앞뒤로 칠해준 뒤, 딸아이가 직접 얼굴까지 그려넣도록 해준다.


이제, 솜을 넣을 차례.

"자 동백아. 이렇게 깊숙히-. 깊숙히."

"내가 해볼래!"


이 솜에 대해선 조금 딱한 일화가 있다. 다이소에 가서 솜을 사려고 했는데 팔지를 않더라. 아내는 "그러지 말고 그냥 집에 있는 인형 치울겸 하나 뜯어"라고 아이디어를 냈고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아이 몰래 인형을 하나 뜯어, 솜을 털어냈다. 마치 어린시절 엄마다 솜을 털어 이불을 갈았던 것처럼. 내가 어린 시절 엄마에 의해 계승되던 관습이 어린 딸을 앞에 둔 아빠에 의해 재현된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솜을 씨익씨익 집어넣는다. 인형의 목이 좁아서 젓가락으로 솜을 밀어내는 것이 어렵고 재밌다.


"자, 동백아 만져봐. 솜 좀 더 넣을까?"

"만져볼게. 응...좋아!"


아이가 신나한다. 나는 인형의 팔, 다리, 두 귓볼까지 빵빵하게 솜을 채우고, 몸통과의 솜의 비율을 조절하며 아이에게 인형의 촉감을 기미해보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는 귀신같이 인형의 원단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자기가 평소 만지고 노는 인형들은 털이 보송보송한데 이건 왜 이러냐며.


그렇게, 아이의 첫 수제인형이 완성되었다.

"마음에 들어?"

"응! 아이 예뻐라."


아이는 티니핑에 빠져있다가도, 아빠가 만들어준 인형에 얼굴을 부비며 좋아한다. 여섯살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이, 아이와 나 사이에 흐른다. 황금손으로 태어나 엄마의 뒷목을 잡게 했던 아이가, 아빠가 되어 딸에게 인형을 선물해 준 이야기. 아빠는 황금손.


이쯤은, 떳떳하게 자랑해도 되겠지. 엄마는 뒷목을 잡게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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