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희망이 되겠지

서울대 대학원 입학, 2트를 시작

by 공존

- 규빈아...나 올해 다시 시험보는데

- 네 형 들었어요

-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_-;

- ㅋㅋㅋㅋㅋ


엄마는 한창 나의 장래가 불분명하던 중고등학생 시절 종종 이곳 저곳에서 점을 보고 오셨다. 점을 치는 사람들이야 어린 학생에 대해서는 나쁜 말보다는 칭찬을, 그리고 그중에 몇가지 주의할 점을 알려주기 마련인데, 그 시절 여러군데에서 빠지지 않는 코멘트는 "주변 사람 덕을 많이 본다"는 것이었다. 조상 대대로 터 잡고 살던 대전에서 훌쩍 떠나 서울에서 악전고투하며 우릴 기르시던 부모님에게는, 당신들이 줄 수 없는 것, 그리고 당신들께서 갖지 못한 것이 그리 좋으셨을까.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밤에 집에 오셔서, 그래도 따듯하게 그 말을 몇 번 해주었다. 사람 덕을 볼 것이라며.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나는 결정적인 구원자를 얻었다. 17년도, 즉 교수님과 내가 대학원 입학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던 시기에 나와 친한 후배가 시험을 떡하니 봐서 붙어놓은 것이다. 역시 또 17년도의 사건을 되짚어보면, 교수님께서 내 신혼여행을 가 있는 사이에 대학원을 서울대로 올 것이냐고 물으신 것도 어쩌면 후배 이규빈 선생님 덕분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17년도에 요행히 대학원에 초신속으로 붙었거나 했다면 후배와 같이 다닐 수 있었을 걸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어쨌든 나는 이규빈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다.


- 카페는 가입 하셨어요?

- 응? 그게 뭐야...?

- 다음 카페 있어여 서울대 대학원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 엉엉

- 저는 거의 거기서 다 정보 얻었어여


이규빈 선생님과의 만남은 2008년이다. 여섯살 아래의 새내기인데 나는 철부지로 복학생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보니 후배들과 이리저리 친했다. 악명 높은 모 사립고 출신의, 당시 스무살이었던 이규빈 선생님은 과묵함 속에 강렬한 명암을 갖춘 아이였다. 자기만의 주관이 있고, 여럿이서 몰려다니며 어울리는 것보단 자기 삶을 중시했다.


내가 졸업하고 한두해 뒤에 연락이 왔다. UN 관련 사업의 인턴을 지원하려고 하는데 다른데에 도움을 구할 데도 없고, 주변 사람 중에 그래도 이런 견문이 있는 내게 자기소개서 첨삭을 부탁한 것이다. 메일로 초안을 받아서 보니,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참이라 자기소개서에 그리 깊은 사려를 담아내지는 못했다. 나름 이리 저리 고쳐서 보내주었더니 퍽 고마워했다. 그 얼마 뒤에 입대를 하나 싶더니,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할 때쯤 어찌어찌 또 친구추가가 되어서 소식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리고 2017년 11월, 떡하니 페이스북에 대학원 합격 인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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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관찰하고 검토하고 증명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 고등학교 영어교사. 교육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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