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가능성과 변화가능성

미래사회에서 아이들의 삶은

by 공존

-브런치 초창기에 썼는데 고민의 깊이가 얕던 시절이라 저 아래 파묻어놓았던 글입니다. 그런데 브런치 내부 검색을 하셔서인지 종종 조회수가 올라가네요. 조금 손을 보아 올립니다.


"의사, 변호사, 교사, 교수가 현재 인기 있는 직업인가요? 현재 지방대학 교수들은 파리 목숨 아닌가요? 많은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나요? 저는 후배가 지방대학의 교수로 간다고 한다면 뜯어말릴 겁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한테 가서 학생들 좀 보내달라고 빌어야 하잖아요. 로스쿨을 나온 친구들도 직장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연봉 2천만 주면, 자존심 다 버리고 취직하겠다는 로스쿨 나온 친구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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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야생동물이 나오면 서는데, 변호사가 앞에 있느면 치고 간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변호사회에서 들으면 문제가 될만한 것이죠. 그만큼 미국에 변호사가 흔하다는 겁니다. 변호사가 앰뷸런스를 따라다닌다고까지 합니다. 의료 분쟁을 대리해 줄 수 있다고요. 혹시 이혼할 거면 나한테 연락해 달라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장 가서 명함을 돌린다고 합니다. 변호사가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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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도산하는 병원들이 많습니다. 소위 멘붕 사태를 맞고 있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개원을 했는데, 장사가 안 되고, 빚도 못 갚아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거죠. 요즘은 대학 병원의 의사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옛날에는 모두 개원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돼서, 오히려 대학 병원 의사들이 불쌍하다고 여겼죠. 그런데 요즘은 대학 병원 의사로 남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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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기업이예요. 아주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공기업의 기반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누가 알겠어요. 공기업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퇴직하고 나서 가장 사기를 많이 당한 사람들이 은행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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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 공대의 원자력공학과 교수님과 이야기했는데, 자기네들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두바이인가, 아랍 에미리트인가. 거기에 원전을 수주했다고 했을 때는 쾌재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후쿠시마에 원전이 터지면서 원자력 공학과 출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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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에 건축학과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이 굉장히 낮습니다. 보기에는 굉장히 멋있을 것 같죠. 실장님이라고 불리면서 건축 설계하는데, 일단 원두커피 마셔야 하고, 담배를 피워야 하고, 또 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퇴근 안하냐고 질문을 하면 멋있게 좀 더 하다 간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시다를 몇년이나 해야 해요. 굉장히 열악하고 취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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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사회복지 영역입니다. 사회복지학과가 우리 나라에 너무 많이 생겼습니다. 너무 많은 인력들이 배출되고 있어요. 그들이 모두 제대로 된 자리들을 얻을 수 있을까요? 굉장히 불안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과는 사회복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의 복지를 위해서 존재 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교사, 입시를 넘다> 최형우, "교사, 미래 사회의 변화를 내다보다"에서 발췌


과거

교통카드가 처음 나온 때를 기억하실까요?.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두툼한 카드에 5천원을 충전하여 주셨었어요. 한번 버스 타는 비용이 불과 백 몇 십 원 정도 하던 때였던지라 5천원이면 넉넉하게 통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손에서 굴리고 말리던 분홍색 버스 티켓은 그날 이후로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버스 토큰들은 여전히 책상 서랍에서 옹기종기 각양각색의 모양을 띈 채 남아있었죠.


교통카드가 생기기 전, 그리고 교통카드가 신용카드와 연동되어 자동충전이 되기 전, 노상가판대는 큰길가의 버스 정거장마다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회수권이라 불리던 버스티켓을 팔고 신문을 팔았지요. 버스가 주된 교통수단이었던 시절, 그리고 지하철이 없던 지역에서는 노상가판대가 굉장히 요긴했습니다. 물론 현금으로도 버스를 탈 순 있지만, 거스름돈을 챙기는 것은 버스기사도 타는 사람도 즐겁진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중학생 때는 주로 지하철이 아닌 가판대에서 충전을 했습니다. 버스통학이었으니까요. 만화와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잡지에서 나눠준 버스카드용 스티커를 붙여 다녔는데, 안그래도 두툼했던 버스카드는 충전기의 카드 꽂이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엉뚱한 그림이나 버스카드에 붙이고 다니며 기계 고장내려고 한다!"라는 꾸짖음을 심하게 하시던 노상가판대의 나이든 아저씨의 얼굴도 기억이 납니다. 그나마 좋던 시절이죠. 익숙한 과거의 풍경. 지금 그 노상가판대들은 더 이상 교통카드도 취급하지 않고 버스 회수권도 취급하지 않습니다.

2016012811228060494_1.jpg 출처 : 서울메트로

세상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지하철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서울의 큰 지하철역, 러시아워에는 5~6개의 매표소마다 줄이 가득했습니다. 교통카드가 없던 시절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지하철표를 샀습니다.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은 정액권을 샀지요. 일반 지하철보다 조금더 빳빳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을만큼 저에게도 오랜 기억입니다. 다만 그 녹색의 색상은 뚜렷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광화문의 교보문고를 오가며 보는 종로통 지하철의 풍경은 장관이었습니다. 크나 큰 지하철 역사를 가득메운 정장 입은 남녀의 행렬. 매표소의 공무원은 역 이름만 말하면 순식간에 거스름돈까지 계산해 티켓과 함께 건내주었습니다. 기계보다 훨씬 빠르고, 늘 정확했던.


그 많던 거리의 가판대들이 교통카드로 인해 차츰 으스러지며 사라지는 풍경은 20대의 저에겐 가슴아픈 기억입니다. 학교 앞에서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노라면, 버스티켓을 팔지 않고 교통카드를 충전할 일 마저 사라진 노상 가판대의 늙은 주인은 두텁게 내려앉은 주름처럼 느릿느릿 움직였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그 자리에서 서서 그 노인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버스카드 하나 때문에, 생계를 잇던 노상 가판대의 수익이 팍삭 내려앉았으니 그의 삶은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지하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통카드가 보편화되면서, 그리고 신용카드가 교통카드와 연동되기 시작하면서 매표소는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사람이 가득하던 종로의 지하철 역사에는 지금은 매끄럽게 서로를 스쳐지나가 개찰구를 건너는 사람들뿐입니다. 머릿속에 모든 역의 이름을 외우고, 가격을 계산하여 표를 팔던 매표원들. 그들은 한참동안을 방황했습니다. 2000년대 말 철도공무원들의 일상화된 파업과 "질서를 지킵시다" 띠를 두르고 하릴없이 개찰구와 역내를 돌아다니던 나이든 역무원들의 모습은 변해가는 세상의 선연한 이정표였죠.


현재

교통카드 하나가 없앤 일자리가 몇개나 될까요? 못해도 수만개는 될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노상가판대의 주요 수입원을 없애버렸고, 모든 지하철의 매표원들을 구시대의 풍경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매표소를 지키던 그들은 지금은 역사의 통유리 공간 속에서 무언가 골똘히 열심히 하는 듯이 보입니다. 버스카드를 만든 기술자들은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서두에서 발췌해 제시한 글은 총체적으로 우리 삶의 근간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대단히 빠르고 예측 불가능한 양상을 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의미가 깊습니다. 되도록이면 해당 도서를 일독해보시길 권합니다. 교육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알기 쉽게 풀어 말하고 있는 강연집입니다. 인터넷에서 "미래 유망 직업"을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자료가 쏟아지는데, 조사 집단과 연구 데이터에 따라 내용은 제각각입니다. 역시 아이 교육을 위해서 아마 많은 학부모들이 관심 갖고 읽어보셨을 자료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예측들이 정작 2,30년 뒤엔 맞기나 할까요? 혹은, 이 직업들이 그때가 되어 우리 아이들의 평생 직장이 될만큼 안정성을 띨까요?


121083369852_20080516.jpg 출처 : 한겨레

미래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심에 놓고 학부모가 사고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변화 가능성(changeability)"입니다. 이 개념은 유연성과 탄력성, 예측불가능성 등을 내포합니다. 이왕이면 10년 뒤 유망직업이라는 것 자체를 때려치우는 게 좋다고 말해두고 싶습니다. 저들 직업을 머리에 입력하는 순간, 학부모와 아이의 인식에 경직성이 발생할 우려가 있지요. 아이를 특정 직업에 몰아넣고 그 코스에서 좋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한다한들 쉽사리 사회의 변혁과 경제구조 변화, 기술혁신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보다는 아이에게 changeability, change competence(변화역량)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 그리고 고대부터 현대, 그리고 미래에까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확인되어 온 문해력(보편적 수준의 문서, 시청각자료를 읽고, 듣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사고능력, 논리력, 추론능력 등을 기르기 위해 아이에게 보다 근본적인 배움의 경험을 부여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직업에 대한 대화는 아이의 재능과 흥미를 고려해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경제사정과 경쟁의 양상은 팍팍할 따름이고 아이의 발달양상은 통제하기 쉽지 않죠.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부모가, 아무리 뛰어난 적성을 가진 아이를 기른다 할지라도 20대까지 부모의 비호 아래 좋은 직장까지 순항한 아이들이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 40대쯤 어김없이 시대의 변화를 맞이하고 50대에는 여지없이 투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충분한 자율성 없이, 변화가능성에 대한 경험과 성찰을 스스로 가져본 경험 없이 그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물론 돈이 풍부하다면 상대적으로 안심할 수야 있지만 본인의 능력의 부족함을 재력으로 충당한다는 것 또한 아이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고정된 현실로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는 예측 불가능의 우주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짓고 사진과 동영상을 증거로 남겨오던 시절의 부모들이, 어느날 갑자기 낯빛을 바꾸어 "이제 그럼 안돼!"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당혹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안돼" 소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은 결국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학력경쟁에서 밀려남을 느끼며 탈선으로 흐릅니다. 그 상태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시간을 허비하게 되죠. 이미 아이의 창의력과 자율성을 억누른 부모님들이 뒤늦게 학원이든 과외든 붙여주지만 대개의 경우, 그야말로 낭비로 끝납니다.


부모님들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이도 우리도 결국엔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오른 작은 범선에 올라타 있을 뿐 부모의 능력,부모의 재력, 부모의 시간도 반드시 한계는 오지요. 아이의 삶을 이끌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부여하고 변화에 적응시키는 것이 미래 시대에 아이를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변화 자체를 필연으로 여기는 학습자는 늘 미래를 대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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