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생각의 테두리

어떤 부모가 아이를 능동적인 학습자로 만들까?

by 공존

아이가 커다란 운동장에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장은 아이들이 인지를 발달하는 감각영역이라고 다시 가정해 보지요.

아이들은 텅 빈 운동장 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닙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마음껏 시행착오를 펼쳐나갑니다. 그리고 점점 그 운동장을 자기의 것으로 채워가죠. 아이들의 선호, 취향, 재능은 텅빈 운동장을 얼마나 마음껏 뛰어다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물론, 그 운동장을 꽉 채워주기 위해서 부모님들은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아이의 감각 재료를 보다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한문, 수학, 영어를 가르치거나, 종이를 접게도 하고, 꽃이든 칼이든 쥐어주겠지요. 때문에 아이들의 감각 운동장은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놀 수 있는 다양한 놀거리들로 꽉꽉 채워지게 됩니다.


아이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자, 어느날 아이가 "나는 어디서 나왔어?" 라고 묻습니다. 보통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지요. 아이의 운동장에 큰 철조망이 생깁니다. 물론 이렇게 큰 영역은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음을 이해해주시죠. 어차피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철조망은 그만큼 커집니다.

그런데 오...이런. 조금 더 나이를 먹었더니 또 다른 "금지영역"이 생깁니다. 아이가 알 필요가 없는, 부모가 답해주지 않는 영역이 또 생기네요. 그 뿐이 아니죠?

저런. 금지영역이 자꾸 늘어납니다. 아이의 감각-인지의 운동장이 획기적으로 좁아졌네요. 아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운동장은 넓어지긴 커녕 좁아만 집니다. 어릴 땐 무엇이든지 답해주고, 행여나 부족할까 자꾸 자꾸 아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주던 매개자들, 부모님들이 그만 묻고 배우라고만 하는군요.


이런 경험이 일반적인 한국의 교육 상황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들자면 90년대, 00년대 초반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세대의 중년들은 OMR 카드의 과목코드에 "도덕" 과목이 01번, "국어"과목이 02번이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짓입니다. 원래는 국어가 과목의 위계에서 가장 앞서 있었죠. 그런데 박정희 정권이 교육을 통한 "바른 국민 양성"을 노리고 도덕 과목을 1번에 배치했죠. 학문적 근거는 물론 없었습니다. 오로지, 바른 생활, 바른 국민을 위하여 도덕이 가장 앞선 과목이었던 것이죠. 저것을 고치는데 40년 넘는 세월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저지른 그런 폭거를 가정에서 안한다고 장담하실 수 있을까요? 아이가 자라면서 갖는 성에 대한 호기심, 종교에 대한 의문, 학교공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답변하고 계실까요? 만약에 저 그림과 같이 아이의 궁금증을 막아버리는 경우라면, 그것이 자녀의 인지발달 영역을 얼마나 협소하게 만드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반대로 이 철조망을 점선으로 바꿀 수 있는 양육자가 있을 것입니다. 상당한 문화적 자본을 갖춘 학부모일 수도 있고, 자녀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철저히 한 학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하브루타 같은 대화법 교육이나 자존감 교육 등 최신 자녀교육 트렌드들이 있으니까요.


이런 자질을 갖춘 양육자들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해소하며,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도록 합니다. 물론,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들이긴 합니다. 그리고 저것을 터주는 것이 어느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언제쯤 시작할지에 대해선 꽤나 섬세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죠. 다행한 점은 부모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아이들은 그리 쉽게 엇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번 실수하고,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장기적으론 아이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일들이 많다는 것이죠. 어릴 때 아이들은 당연히 손도 베이고 무릎도 까지고 하면서 자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부모님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감각-인지의 운동장은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대서양 넘어서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처럼, 우주로 진출해 지구는 푸른별이란 걸 발견한 우리 인간의 역사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삶에서 생겨나는 의문을 아이와 함께 나누는 부모님들이 있을 수 있죠. 그러한 질문들이 당장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여러가지 있을 수 있죠. 당장만 해도,


"샘 오취리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요즘 젊은 남성과 여성의 갈등 문제는 원인이 뭘까?"

"전광훈 목사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우리 정치 정당들의 문제는 무엇이고, 근현대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물론, 높은 문화적 자본을 가진 양육자들은 이게 특별히 목적을 지닌 행위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갖게 되는 생각의 벽을 허물고, 더 많은 감각, 더 치밀하게 조직화된 인지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죠.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이와 성인, 손 모두 양성이라고 받아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금기 혹은 금지영역을 지닌 양육자는 아동의 발달을 촉진하는데 딱 그만큼의 한계를 갖게 됩니다. 반대로 스스로의 인지의 한계를 적게 지닌 양육자일수록 적극적으로 아동의 인지의 벽을 허물 수 있죠. 소크라테스가 바로 이러한 대화법의 대표 격입니다. 산파술은 끝없는 반문으로 학습자가 갇혀있는 인식의 벽을 초월하고자 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 끝없는 반문으로 학습자를 벽으로 끌고 가는 것이죠. 이런 대화법 끝에, 문제의 답을 주는 경우도 있고 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 역시 양육자, 교육자의 그때 그때의 상황 판단과 주제에 대한 학습자의 이해 정도에 따라 달라지겠죠.


중요한 것은 단 한가지, 아이의 양육, 성장을 위해서는 적어도 인식의 운동장에 철조망을 늘리기보다는 허물고, 그 외벽까지 허물어 더 큰 감각 수용의 기회, 인지 성숙의 기회를 끝없이 부여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 그래서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인지의 벽을 느끼지 않는 학습자는, 스스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적극적으로 학습을 해 나아가겠죠. 물론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력경쟁"입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서 많은 학부모님들이, 아이고 학교공부는...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이것은 인지구조 형성, 쉽게 말해 지능발달에 국한된 논의이고 아동이 학교에서 학력경쟁을 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당장 승부욕, 암기에 대한 선호, 집중력 등이 작용하죠. 학업경쟁이 시작될 시기에 일반적인 "교과학습"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지 않은 학습자들은 학력경쟁에서 장점을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하, 철조망이 다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이미 답변은 위에 적어놓은 것 같아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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