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이라는 유령

그 속에서 부정되는 양면의 실상들

by 공존
maxresdefault.jpg 출처는 당연히 JTBC

<SKY캐슬>의 차민혁은 기념비적인 캐릭터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부정적이지만 차민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그를 통해서 한국 교육을 명확하게 하나의 인격체로 형상화한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건 우정,의리가 아니야. 니들 위치야. 피라미드 어디에 있느냐라고.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 있으면 누리는 거야."


“현실을 직시해. 대한민국에서 교육이 뭔 줄 알아? 시험 잘 치르는 게 하는 거야. 일단 한번 성적 잘 나오면 더 열심히 하게 돼 있어. 성공의 기억, 그게 바로 동기부여가 되니까. 그걸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롤이라고”


“여보 제발 마음 독하게 먹어. 부모가 강해야 애들 인생 성공시키는 거야”


"공부하기 싫어도, 책을 찢어도 새 책을 다시 펴줘야 되는 게 부모고, 연필을 부러뜨려도 새 연필을 다시 쥐어줘야 되는 게 부모야. 1등급 저기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잖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정도가 우선 찾아지는군요. 이 말에 곧이 곧대로 동의하시는 학부모님들은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런 발언을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부모가 실제로 있을 거라고 굳게 믿으시겠지만, 차마 내 아이에게 저런 생각을 심어주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일 테지요.


그런데...저 대사들을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 교육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어보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부정되어 온 차가운, 혹은 뜨거운 현실


저는 차민혁이 한국 교육을 그대로 의인화한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육은 엄격한 피라미드 구조지요. 그리고 인성지도는 배제된 지식교육만을 계속해 왔습니다. 윤리, 사회 과목조차도 암기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하는 활자들의 묶음일 따름이죠. 그 엄격한 피라미드 속에서 승자들을 추려내고, 그들이 모든 기득권을 독차지하도록 오랜 시간 역할해 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만 그런 획일화된 교육관을 주입해오진 않았죠. 어느새 학부모들까지 이 미친 교육경쟁에 끌어들입니다. 자녀의 교육이란 이른바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 조부모들의 경제력이란 말로 명쾌하게 요약됩니다.


누구나가 경험했고, 저항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한국 교육의 이러한 실상을 이렇게 솔직히 표현하는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이 점이 차민혁이라는 캐릭터의 중요한 특징이죠. 이를 테면 드라마나 소설 속의 학교와 학교 교육의 부정적인 실상들은 주인공을 억압하는 저항의 대상으로서만 표현되곤 합니다. 어느 정도 뻔한 전형성을 보여주죠. 분노하는 청소년들, 소수의 양심적인 교사들, 그들 모두를 억압하는 학교라는 거대한 벽.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블랙독>이나 <이태원 클라쓰>에서도 한국의 교육은 이와 같은 저항의 대상으로 포지셔닝되고 있습니다. 명확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못하죠.


그런 것에 비해서 차민혁은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한국 교육의 이데올로기를 열변하며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하고 있지요. 피라미드를 부숨으로서 한국 교육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저항하는 드라마의 후반부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드라마로서는 상당히 뻔한, 유머러스하게 흐른 스토리였지만 차민혁이라는 캐릭터와 피라미드라는 도구를 통한 한국 교육 비판은 오래 회자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하지요. 코로나로 인하여 개학이 미뤄지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학업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구 경북지역과 수업일수를 맞추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는 전국의 교육청들의 상황은 얼마나 황당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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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그리고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를 보시면서 우리가 어떤 교육 환경에 처해있는지를, 한번 고민해볼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의 미래도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차민혁처럼 아이들을 양육할 부모님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만, 차민혁의 행동, 태도, 사상이 바로 한국 교육의 실상이라는 점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차민혁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선택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어느 쪽에, 손을 내미시겠습니까?


그런 한편,


다른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학교는 감옥이다."


"교육은 학생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육은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익에 맞추어 짜여져 있고, 그런 구조를 바꾸어 교육이 민주적 사회질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동의하시나요? 질문을 바꿔야겠군요.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전달하는 교사가 학교에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아이들이 일단 공부를 소홀히 할 확률이 높고, 피라미드형 성적 체계가 부당하다며 저항할 확률이 아주 조금 올라갈 겁니다. 이런 선생들은 그냥 둘 수 없겠죠?


일단 이런 소리를 하는 교사가 있든 없든 간에, 이런 주장들에 동의하십니까?


학교는 감옥이다 : 미쉘 푸코

1.jpg 출처 : 디베이팅 데이( https://debatingday.com)

유명한 철학자 미쉘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은 권력이 대중을 통제하고 사회화시키는 방식이 단순하고 과격한 수단에서 점차적으로 폭력이 배제되면서 정교하고 일상화된 방식으로 변화되었다고 진단합니다. 행정적 권력이 부족했던 전근대에는 과격한 형벌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걸리면 죽는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했죠. 국가의 중앙집권체제가 고도화된 근대 이후로는 이러한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에, "기술"과 "지식"을 통해 많은 국민들을 통치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일상화된 통제를 가했죠.


푸코의 진단에 따르면, 교육은 곧 권력의 지배장치입니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기인식을 하고 있지만 이를 테면 좌측통행, 오른손으로 밥먹기, 젓가락질, 존댓말과 생활규범까지 우리를 통제하는 사회질서는 대~~~단히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죠. 그 중에는 권력의 성격을 띈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질서"라는 이름으로 온존해왔고, 지금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습니다.


"학교는 감옥이다."라는 말을 떠드는 교사가 있다면 대경실색하며 교육청과 학교에 민원을 넣어 마땅한 일입니다만, 저러한 주장을 이론으로 체계화해서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자들에게 있어서 학교는, 감옥이죠. 아이들은 해방되어야 할 식민지의 민중과 다를바가 없다고, 이 교육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계승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며, 산업사회의 노동력을 생산해 경제를 부강하게 할 우리 교육이, 실상은 권력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입니다.


교육은 학생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 파울로 프레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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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진보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들 중 하나로 파울로 프레이리가 있습니다. 책이 빨간데, 내용도 빨갛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교육학"이라는 책 속에는 그가 바라보는 교육의 억압적 실체와 그 억압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소리를 하는 교사들이 있다면, 환장할 노릇이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교육학의 한 갈래로 체계적인 이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소리이지만 나름의 근거와 논리구조를 갖춘, 진실로서 받아들여질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는 말이지요. 차민혁의 피라미드를 깨부수고 집을 뛰쳐나온 노승혜와 자녀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프레이리의 사상의 실천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 속에선 누구라도 그들을 응원하고, 차민혁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비웃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것이 자기 자녀의 저항으로 내 눈 앞에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러한 주장을 하는 교육자들과 교사들이, 교육 자체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학생 중심의 교육, 학생의 핵심역량을 기르는 학생 주도의 교육을 위해 투쟁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러한 교육의 노력이 인정받아서, 다양한 입시전형으로 대학을 가는 길들이 열려있습니다. 바로 그 제도를, <SKY캐슬>에선 부정하다시피 한 것이 그 드라마의 결정적 단점이었긴 합니다만.


교육은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익에 맞추어 짜여져 있고, 그런 구조를 바꾸어 교육이 민주적 사회질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존 듀이, 마이클 애플


존 듀이는 이러한 비판적, 진보주의적 관점을 1920년대에 주도적으로 제기해서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학자이고 마이클 애플은 현 시점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이 비판적 교육학의 입장을 전파하고 있는 학자들 중 한사람입니다. 이들의 주장 역시,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치가 차고 넘치죠.


2010년대 후반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풀뿌리에서부터, 그리고 교육청에서도 합의를 하여 민주교육이 강조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진전과 4차산업혁명!!!!!, 그리고 시대적 발전상과 이런 추세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학벌은 상당히 붕괴되었고, 학력 없이도 고소득을 얻어내는 다양한 직업들이 개발되고 있죠.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 일방향적인 지식의 주입, 암기와 문제풀이는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합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바로 이 민주교육이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습의 주도권을 갖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라는 것이 교육계 내부에서 합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대한민국의 학력경쟁이라는 현실에서는 상당히 허약한 입장이긴 합니다만.


확고한 교육관


오늘 차민혁과 그 반대편의 핵심 주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학부모의 확고한 교육관이 자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정반대의 두 주장은 모두, 우리가 그동안 부정하거나 외면해왔던 명확한 진실들이죠. 차민혁이 부르짖는 교육관도, 한국 교육의 현실이고 실상입니다. 그리고 반대편의 이 "저항의 목소리"들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교육의 실상이고 현실입니다.


오히려 이 두 목소리가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못하고 의식을 분열시키고 있단 점이 아이러니한 현실이 되겠네요.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이들을 유령으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아이들의 머릿속은 이 양쪽의 주장이 소용돌이 치는 전쟁터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휘어잡아도, 아무리 순종적인 아이여도,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올라갈수록 승자는 줄어들죠.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중에 과학고나 기타 특목고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은 한정됩니다. 과학고와 특목고에 입학한 아이들 중에서 서울대에 입학할 아이들은 다시 한정되죠. 그리고 서울대에서도, 저마다가 희망하는 그 꿈의 직장에 합격하는 아이들은 다시 한정됩니다. 아이들이 피라미드를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은 "언제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반드시 벌어질 일이라는 것이고, 그 충동을 감추고 살지 아닐지의 문제가 남습니다.


아마도 학부모님들 역시 이 양쪽의 주장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며 전쟁중일 터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가 보살피고, 길러내야할 존재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었던가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아이를 자주적으로, 주도적으로 키운다는 것은 이 어느 한쪽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양쪽의 입장을 그때 그때의 사리에 맞추어 취사선택하고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 차근차근 문제는 풀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그 속에 쌓여갈 것입니다.


답은 없어요. 저도 그냥 그때 그때 학생들에게 다른 답을 이야기해주곤 합니다. 이상과 현실은 같을 수 없으니까요. 다만 아이들이 겪고 있는 교육문제의 혼란에 대해 공감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이 부당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 이 질서에서 최대한 노력해보자라는 말 밖에는 해줄 것이 없습니다. 그 이상 아이들에게 어떤 결론을 내려주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긴 합니다만.


만약 이마저 제 때 해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확고한 교육관을 세우지 못하면, 아이들의 겪게되는 혼란은 커지겠죠. 교육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조절해주지 못하는 학부모에게 아이들의 신뢰는 저하될 것입니다. 아이를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기르길 원하신다면, 우선은 이 현실을 다시 돌아보시면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아이들과 나누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 다음엔 아이는 고통스럽더라도, 펜을 쥐고 노트를 펴겠죠.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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