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자발성의 일반화 규칙을 찾아보기(1)
지식은 유전일까요?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보았을 질문입니다.
정답은, "사실이 아니다."입니다. 지식이 유전인가에 대하여 확정할 수 있는 교육학적, 생물학적, 인지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없습니다. 부모의 학력이 자녀에게 유전되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동의 지적 능력과 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하나 하나 따져가며 분류를 한 뒤에, 그 모든 요소를 다르게 하여 아이들을 길러보면 됩니다. 가능한 연구일까요?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부모의 지식은 자녀에게 유전된다."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강연을 보다보면 80% 혹은 90%까지 유전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종종 보게되는데 빠르게 채널을 돌리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학력이 부모의 강력한 영향권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모두 참입니다. 검증하기도 쉽고, 아주 많은 통계데이터들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 자녀의 학력은 부모의 학력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학력은 부모의 재력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학력은 부모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학력은 부모와 자녀의 애착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학력은 부모의 양육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개별 요소를 늘어놓고 보면 조금 문제점이 보이죠. 자녀의 학력이 부모의 학력이나 재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부모의 학력이나 재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교육을 행하라"라는 요구가 일어나거든요. "지식은 유전된다."같은 거짓말이 통용되는 이유입니다.
자.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기에 학력 대신 자발성을 넣어보기로 하겠습니다.
- 자녀의 자발성은 부모의 학력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자발성은 부모의 재력에 영향을 받는다.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래 문장들에 대해선 조금 더 공감하기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 자녀의 자발성은 부모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자발성은 부모와 자녀의 애착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 자녀의 자발성은 부모의 양육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이쪽은 거의 맞는 말로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자발성을 기대한다고 할 때, 그것은 성장 발달 과정에서 축적된 아이의 경험과 효능감의 결과이며 선천적인 기질보다는 부모가 발전시켜나가고 조작해나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집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환갑선물로 자신에게 타투를 선물하셨어요. 양 손목에 각각 하나, 그리고 발목에도 하나. 각각 5백원 동전 정도의 작은 것들이지만 놀랍죠. 월화수목금토일 일을 나가서 자기 용돈을 벌어서 쓰시면서, 철마다 열무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백김치를 하시고, 김장은 당연히 하시고, 집간장에 된장을 만드시는 분께서 타투라니?
마르쿠제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해방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1960년대 진보적 사회운동의 발흥을 관찰하며, "인간의 완전한 해방"을 탐구한 철학자인데요, 2차 세계대전의 참극과 전체주의, 냉전, 신보수주의와 권위주의의 흐름을 지켜본 그가 인간의 해방에 대해서 내린 진단이 의미심장합니다. 권력과 사회구조의 억압이 대단히 다층적으로 복잡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해방에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수도권 광역전철이 100층 정도 겹쳐있다고 할까요. 종교로 인한 구속, 인종으로 인한 구속, 자본, 계층, 문화, 정체성 등등...인간의 진정한 자유에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마르쿠제의 진단은 "해방적 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인간의 내재적이고 질적인 심대한 변화 없이는 개인의 해방은 언제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어머니의 타투를 보면서 조금 우스울지 모르지만, 해방적 본성을 갖춘 자유인이었기에 제가 영향을 받아 자발성을 충분히 키울 수 있었다는 생각을 조금 합니다. 어머니가 김치를 1년에 여서일곱번씩 하는 것도 어머니의 자율적 본성이고, 타투를 하고 주 7일 일을 하며 버는 돈으로 자유분방 사시는 것도 당신의 본성인 것이죠. 그런 분이니 저에 대한 교육도 비범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싫어하면 절대로 사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엔 학급 반장 회장을 도맡아했는데...구구단을 외우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황당한 일이죠. 아무 곳이나 학원을 원하면 보내주셨고, 싫어하면 미련없이 그만두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저를 막 길러도 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당연히 아니죠. 엄청 혼나긴 많이 혼났습니다. 자율성을 부여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훈육을 하신 거죠.
다시 말하지만, 어머니의 경우에 본질적으로 다른 학부모들과는 다른 뚜렷한 관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좀 반대 경우였습니다. 사촌형제들에게 제가 어릴 때 변고가 좀 생긴 이후 극도로 자식걱정이 많아서 매우 소심하게 자율권을 부여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 술만 먹으면 전화를 수십통 걸어올 정도였죠. 사고 날까봐 빨리 집에 들어가라는 당부였습니다. 정말 너무나 싫은 구속이었고 저의 자율성과 매우 충돌하는 일이었지만, 저는 효자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맞추어드렸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살게 될 때쯤부턴 간섭이 덜해졌지만. 지금도 30대 후반인 아들에게 매일 전화를 거십니다. 아버지에게는 저의 사촌형제들이 겪은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이지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런 판이한 앙육방식 속에서 제가 택한 판단은, 아버지의 낮은 권위를 타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인 이후에 저의 자율성에 불을 질러버린 것입니다.
그 한 사례가 헌혈입니다. 부모님은 헌혈은 격렬하게 반대하셨는데, 그냥 두분이 다 옛날 사람이라 잘못된 미신을 갖고 계신 탓이었습니다. 제가 헌혈만 하고 들어오면 두시간은 소리를 치며 화를 내셨죠.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헌혈 30번을 채우고 군대를 갔습니다. 헌혈 굳이 안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저의 자발성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헌혈에는 한가지 비밀이 더 있습니다. 지금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자녀의 자발성을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책입니다. 독서교육 중요한 거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많이 읽으면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죠. 어떤 책을 얼마나 읽고, 읽은 다음엔 뭘 해야 할까요?
아니요. 그냥 많이 읽는게 우선입니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아동에게 있어서 인지구조를 형성하는 재료들을 수집하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레고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이죠. 아이와 함께 어벤져스 레고 시리즈를 만든다고 해볼까요? 아이들에게는 설계도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부모님들은 설계도에 딱 맞는 블럭들만 주는 경우가 있고, 어떤 부모님들은 그냥 한무더기 블럭을 주고 알아서 찾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겠죠. 어느쪽이 아이들의 자발성을 키울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말할 것도 없죠.
아이들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는 만큼의 많은 책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무제한의 독서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첫번째 단계입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일단 레고 조각을 최대한 많이 쌓아두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아이들의 자발성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는 7살 때 시튼동물기와 파브르곤충기 두 책을 하루이틀만에 다 읽은 일이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 배경지식도 없기 때문에 그냥 활자를 독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독서의 효과는 전혀 없었지만, 그것은 이후에 제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방송을 보면서 책을 사고, 퀴즈를 풀고, 동물의 생태를 공부하는 자발성을 키우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발달단계로만 따지면 7살 아이가 시튼동물기와 파르브곤충기를 읽는 건 전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자발성의 문제에선 대단히 중요한 행위입니다.
아이들이 활자의 빅데이터를 쌓아두면, 레고 블럭을 와장창 모아놓으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스스로 인지구조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두번째 단계입니다. 스스로 지식체계를 형성하고, 도덕규범을 학습해 나갑니다. 지식체계라는 것은 "다음 책"을 스스로 고르는 능력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흥미분야를 고르고 관련된 책을 자꾸 요구하는 행동을 보이곤 합니다. 부모님들이 기뻐하며 책을 사주겠죠.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도덕규범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부모님과 보육교사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서 말을 잘 듣는 아이들로만 눈에 보이면 안심하게 되니까요. 다시 저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 때 책에서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환경에 해로우니 비누로 머리를 감자."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제가 몇살 때까지 비누로 머리를 감았을까요? 26살 때까지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것을 혼자서 하고, 부모님을 포함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너 이상하다, 샴푸로 좀 머리를 감아라 난리브루스를 쳐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헌혈은 30번이나 하고 군대를 갔을까요? 책을 통해 학습한 저의 독립적인 도덕규범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이 스스로 도덕규범을 형성해나가는 것이 자발성의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전적으로 아동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고, 그 과정은 책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를 위해, 무제한적인 독서환경, 스스로 책을 고르고 자기 스스로 독서커리큘럼을 만들고, 그 속에서 도덕과 철학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말로 들리지요. 왜 도덕규범이 필요한지 조금 더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듣다가 몇살때쯤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네요. 야동을 보고, 친구들과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고, 담배를 피고, 물건을 훔치고, 술을 마시고, 공부를 싫어하고.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성장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독립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데 또래 문화가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모범생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이 단계에서도 부모와의 좋은 관계, 깊은 영향력을 통해 이런 유혹을 극복해 나갑니다. 그런데 아이 스스로 도덕규범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냥 그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외부의 유혹을 떨칠 수 있거든요. 부모가 무서워서, 부모말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날 위해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그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 패턴이 평생 갑니다. 20살이 되어 성인입니다. 그때도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현실적으로. 그런데 아이의 미래는 아직 불안합니다. 20살이 되어 새로운 유혹에 빠져드는 아이들도 생기죠. 여전히 아이들에게 세상은 유혹 투성이니까요. 이 단계에서도 스스로 도덕규범을 설정하는, 스스로 철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런 독특한 인간형이, 유년기의 독서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독서교육이 좋다고 하니, 사교육을 시키는 경우들이 있죠. 정신나간 짓입니다. 독서튜터링은 아동의 독서를 여러 외부 변인들로 어지럽힙니다. 볼까요.
- 튜터와의 만남이라는 즐거움
- 튜터가 주는 보상이라는 즐거음
- 부모님이 주는 독서튜터링 보상
- 부모님이 주는 독서튜터링 압력
이러한 요인들이, "책을 읽는 즐거움"에 섞여들어갑니다. 튜터링이 끝나면 아이가 책을 읽긴 하겠지만, 자발성이 키워질 수 있는 여건일까요? 몇살까지 독서습관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사교육보다는 아이의 독서량이 빅데이터 수준이 되도록 장서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발적으로 책을 고르고, 지식체계와 도덕규범을 형성하는 단계까지요. 그런 변화는 눈에 쉬이 보입니다. 당연히 부모님들의 독서습관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겠죠. 이 부분에서도 어려움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부모님들은 몇살까지 사실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100세시대가 농담이 아니라면 아직 50년도 더 사셔야 하는데 왜 책을 읽는 게 두려울까요? 지금의 부모님들에게는 미래를 위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나라는 OECD 중 성인 독서량이 가장 낮을까요?
아이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부모님도 당연히 독서를 하셔야 합니다. 얼마나 읽으셔야 할까요? 남은 50년 계획이 세워질 때까지 읽으셔야합니다. 스스로 미래사회에 대한 빅데이터를 머릿속에 구축하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을 발견할 때까지 읽으셔야지요. 미래사회에도 우리 아이들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문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하시나요? 현재의 인구구조에서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나 스스로의 미래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지요.
여기까지가 자발성에 대한 첫번째 꼭지입니다. 아이들의 자발성은 부모의 환경조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저의 경험을 토대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제시해보자면 아이가 평생 스스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무조건 많이 읽어야 자발성이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아이가 행동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면...뭘 해야 할지 다음 꼭지 때 나누어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이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누군가는 실제로 그렇게 지금도 하고 있거든요. 아이에게 산더미같은 책을 주고, 옆에서 내내 책을 읽는 일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