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이토록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1. 서론이 깁니다.
아 참. 할 이야기,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 주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로 먼저 포문을 열어볼까요. 본조비의 <All about Loving You>가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제가 노트북을 연 시간은 토요일 밤 자정, 그리고 이어서 글을 쓰는 지금은 일요일 밤입니다. 오늘 글을 읽을 수 있으시다면 일요일밤의 여유가 될까요. 이왕이면 먼저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감상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재밌게 감상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곡이 발표된지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너무 아름답고 인상적인 내용이죠? 우리에겐 어느덧 익숙해진 뮤직비디오의 문법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 시작이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이런 드라마형식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생각해낸 천재는 대체 누구일까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단지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서 눈으로 즐기고, 가사를 넘어선 서사를 담아낼 생각을 한 것일까요?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이 양반이지 마이클 잭슨. 현대적인 뮤직비디오를 창시한 아티스트이자 "보는 음악"의 형식과 문법을 한 순간에 혁신한 천재. <Thriller> 앨범, 노래, 그리고 뮤직비디오로 그는 대중예술로서의 가요(POP)를 넘어서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지요. 그는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흑인음악의 지위를 바꾸었고, 팝 자체의 지위를 바꾸었습니다. 대중문화의 지위도 바꾸었지요.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는 타이틀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한 가수가, 하나의 노래와 앨범이, 그리고 TV에서 방영되는 뮤직비디오가 얼마나 큰 사회적 파급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주었죠.
...음-. 잠깐, 여기서 조금 더 과거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본조비에서 마이클 잭슨으로 왔으니 다시 20년 전쯤으로 가면,
이런 사건도 있었죠. 비틀즈가 미국에 입성하던 1960년대, 자유와 해방의 물결 속에서 영국에서 불어온 대중문화의 새로운 바람에 미국이 활짝 두 팔을 벌리며 반기던 때가 말입니다. "브리티시 인베이젼(영국의 침공)"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단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바로,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시는 표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신문방송)학에서는 반드시 다루는 내용인데요, 이게 꽤 재미있습니다. 한번 찬찬히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탄환이론(매우큼)"은 TV와 라디오가 처음 발명되고 확산되었을 때 대중이 그것에 매우 큰 신뢰를 갖고, 비판 없이 미디어가 말하는 것을 수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우선 TV나 라디오를 갖고 있는 사람보단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 많았죠. 그리고 TV나 라디오 방송을 제작할 여건이 되는 것도 정부나 거대 자본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대공황과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대중들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전파되는 정보에 대하여 매우 민감할 시기였죠.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처음 대중매체가 개발되고 확산되던 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매우 크게 그것에 휘둘렸습니다.
그런데 "제한효과(매우작음)" 시기에는 대중매체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커졌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매우 복잡한 속사정이 있지만 그 핵심에는 TV와 라디오 밖에 있는, 우리 집단 내부의 오피니언 리더의 중요성을 대중들이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정부가 전하는 중대한 뉴스보다도 우리 지역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라디오에서 떠드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보다, 우리 동네 이장님이 전하는 윗 마을 잔치 이야기, 아랫마을 어느 집에서 일꾼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지요. 미국에선, 연달아 전쟁을 경험한 상이군인들이 울적함을 달래는 공동체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TV와 라디오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었죠.
그런데 1960년대부터 TV와 라디오의 역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만 전하던 건조한 매체가 아니라 이제 드라마도 틀고, 음악방송도 틀고, 운동경기도 중계하고, 채널도 다양해지며 시청자, 청취자를 유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중들이 정보취득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닌, 여가의 수단으로 TV, 라디오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비틀즈가 불을 질렀죠. 엘비스 프레슬리의 개다리춤을 보고 퇴폐적이라던 미국인의 보수집단은, 영국에서 날아온 예쁘장한 소년들의 노래에 젊은 여성들이 환호하는 것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되었죠. 이제 미디어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칼라TV가 만들어지고, 방송예능이 발전하고, 영화와 음악,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이 혼합되는 장르의 혼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새로운 영향력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환경을 형성하는 역할"을 알게 되었죠. 80년대. 되돌아온 강력효과 이론의 시대에 마이클 잭슨이라는 초신성이 등장합니다. 원래 흑인 음악가들은, 백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노동자 정도의 지위였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가라도 그들을 무대에 세워주고, 관객을 채워주는 것은 백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이클 잭슨이 이것을 박살냈죠. 백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었던 락의 주법과 창법을 흑인이 그 어떤 백인보다 능란하게, 게다가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시각화해서 전달했으니 말입니다. 그 덕분에 흑인음악은 완전히 주류를 점령했습니다. 마치 흑인들이 농구장을 차츰 지배해 나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소울과 힙합이 가장 글로벌하고 대중적인 장르가 될 정도니 말 다했죠. 흑인음악이 없이는 현대 음악을 정의내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넘어서서 대중매체는 현실세계의 불균형을 폭로하고 그것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왕자에게 구원받던 디즈니 공주는 이제 여성의 독립과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죠. 다음 디즈니 공주는 흑인 인어공주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스파이더맨의 연인 메리제인의 피부색 역시 흰 색이 아니죠. 헐리웃 스타들 중 많은 이들이 속속 동성애를 밝히거나 지지하고 있고, 오랜 시간 여성을 착취한 연예계의 성추문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디어의 새로운 역할을 우리가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미디어. 대중을 즐겁게하는 여가의 창구로서의 미디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미디어를 넘어서서, 이제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를 형성하는, 우리의 하늘이고 우주가 되고 있네요. 자 그럼,
스마트폰과 데이터가 무제한인 2020년 현재 미디어의 효과는 어떨까요? 강력한가요? 제한되어있나요? 정답은 말할 것도 없이, 무한대!
2. 스마트폰 시대,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유튜브요
온라인 개학 1개월을 맞는 지금쯤 학부모님들의 막막한 심경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대학 입시라는 지향점이 갖추어진 고등학교의 사정이 조금 나은 정도죠. 중학생과 초등학생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하고 있진 않을까.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님들의 속 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심심찮은 빈도로 사실로 나타나곤 합니다.
가뜩이나 아이들이 스마트폰 중독, 게임중독, 인터넷 중독에 걸릴까봐 걱정인데 온라인이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죠. 그런데 코로나가 진정될 조짐이 잘 안보입니다. 백신개발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름방학은 고작 2주입니다. 2학기 시작할 떄까지. 그리고 날이 상당히 추워지기 전까진 꼼짝없이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어야 할 처지입니다. 스마트폰과 거리를 띄우기 위해서 그토록 애쓰며 길러온, 아이들인데 말입니다.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크레파스를 잡아보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탭하는 법을 먼저 익힙니다. 굳이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니 굳이 입을 열 필요조차 없습니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처럼 채널을 갖고 다툴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도 많지 않죠. 그야말로 생애 전 과정을 스마트폰과 인터넷과 함께 해 온 세대죠.
그런 아이들에게 인터넷이란, 그리고 스마트폰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한글과 국어를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에겐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세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인터넷을 쓰기 위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했던, 그리고 스마트폰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저하다가 마침내 아이폰과 갤럭시 중에서 선택을 내려야 했던, 그리고 모바일 통신요금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던 우리와는 많이 다르죠. 마침 지금은 데이터 비용도 굉장히 낮아졌습니다. 부모님도 와이파이 없이 그냥 아이들에게 유튜브 몇시간이고 보여줄 수 있잖아요. 무제한이니까요.
그러니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는 지금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이 과하다 어떻다 말하는 것이 조금 난감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싶으면 TV 앞으로 가야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전화기를 찾았던 우리 세대와 달리 아이들은 모든 것을 폰 하나로 침대에 누워서든 책상에 앉아서든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기기 한대 한대의 값은 비싸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비용은 무척 저렴하죠. 말보다 손이 빠릅니다. 훨씬 밀도있고 풍성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옷을 입을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스마트폰을 통해서 해결하는 아이들에게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일까요? 만약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기능 중에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에 집중할까요. 그리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언가 가치있는 다른 일을 할까요? 어떤 가능성들이 존재할까요?
3. 우리 아이의 미디어와 나의 미디어 리터러시
어쩌면 관심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서두에 길게 한 것은, 이러한 미디어의 발전의 흐름을 먼저 이해해야 학부모님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미디어와 우리는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미디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지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면서 흥미를 돋우고자 했는데 성공했는지 모르겠네요.
오늘날 미디어 효과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높아진 상태입니다. 대표적인 현상이 "가짜뉴스"입니다. 시각자료를 조작하고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짜내는 것만으로 "뉴스"가 되어 전달됩니다. "좋아요"와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SNS의 작동방식 때문에 가짜뉴스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급속도로 전파됩니다. 그리고 데이터 무제한의 시대인 터라 뉴스도 무제한으로 쏟아집니다. 공짜거든요. 비슷비슷한 뉴스를 수십개 복사해서 뿌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 정도 많은 뉴스가 나왔으니 결국 비판적 이성을 통해 거르고 거르다가 생각하길 멈추고 속아넘어가게 되는 것이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먼저 아이들이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자세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미디어 사용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컴퓨터학원이 처음 생기던 시절에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여유가 있는 집들에서 교육용으로 컴퓨터를 하나씩 집에 사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님이 교육용으로 사준 컴퓨터를, 남자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서 <동급생>이라는 야한 게임을 하는데 썼습니다. 대전 엑스포 하던 시절에도 남자아이들이 미디어를 사용하는 방법이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아이들이 또 대학 갔을 때쯤엔 정말로 남들보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능력이 실제로 뛰어났습니다. 중학생 때 야한 게임이나 게임을 하던 것 치곤 꽤나 멀쩡한 결과물이죠. 이처럼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생각보다 다양하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한때 잘못된 길로 빠질 수는 있지만 스스로 정상 궤도로 돌아오곤 합니다.
한창 친구관계와 성적 스트레스로 민감할 시기에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부모님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속내는 관계라는 햇볕을 쪼이지 못하고 곪아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그 나이대에 느끼는 고립감과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감추려고 애를 쓰시겠지만 아이가 중학교에 갔을 무렵엔 부모님의 양육의 불안함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부모님과 아이의 불화의 원인은 성적인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스마트폰을 오래 잡고 있으면 그게 또 다시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어른들도 스트레스가 심할 땐 일이 손에 안잡히는데 훨씬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라고 다를까요.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는 더 큰 감정의 응어리를 만듭니다.
본질적으로 미디어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고, 커뮤니케이션의 매개가 바로 미디어입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하는 이유, 유튜브를 하는 이유, 인터넷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과 아이가 커뮤니케이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싶으시다면, 아이와 커뮤니케이션을 넓히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스마트폰 사용을 줄일 생각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 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자꾸 보여줘서 더 효과적으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부모님이 줄이고 어쩌고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영어공부하기 좋은 시절이 없습니다. 수학도 마찬가지, 아 그러고보니 국어도 과학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수입과 명예를 얻고자 유튜브에 강의영상을 올리는 교사와 강사들이 수천명은 됩니다.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한다는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이와 강의영상을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재미 없으시겠지만 재미있는 척이라도 하셔야죠. 옆에서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아이도 이게 재밌는 건가보다 하고 보게 될 것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시고 아이들의 미디어 사용요령을 흉내내세요. 아이들과 카톡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까를 생각하며 이모니콘 상점도 뒤져보고 10대들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도 가보세요.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욕구가 해소될 수 있는 창으로서 부모님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톡하는 것보다 부모님과 톡하는 것이 재밌게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40~50분 수업이 지루할까봐 아이들을 웃기기 위해 별별 짓을 다하니까요.
아이가 엇나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성욕이 왕성할 중학생 때는 야동을 볼 수도 있고, 여자아이들은 아이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호르몬에 의한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일 뿐, 나쁜것도 특이한 것도 아니예요. 그렇게 3,4년 마음껏 성적 욕구를 발산하기도 하면서 자기의 이성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앨범이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의 헐벗은 사진으로 가득찰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척 쉬워졌고 당장 눈 앞에 보이니까 더러워보이는 것이지 그것을 아이와 다툴 일은 아니죠. 차라리 아이들의 성적욕구를 건강하게 발달 시키도록 여러가지 활동을 하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시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해 나가세요. 가족의 모습을 온라인 공간에 남기면서 아이의 성장을 계속 관찰하고, 그것을 볼 기회를 주세요. 아이의 자아정체성 형성에 제법 기여할 것입니다. 뭐 아이의 일기장을 열어보네 마네 하던 아름다운 시절을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이 함께 기록할 수 있는, 카톡처럼 휘발성이 있는 매체 말고 한 곳에 가족들의 기억을 남기시길 바랍니다. 미디어의 본질은 또한 기록을 통한 저장이기도 하니까요. 자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인터넷 공간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온전히 인식하고 보다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보다 건강한 사용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4. 전자양의 꿈을 꾸는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아이들의 삶의 형태는 막상 그렇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도 보입니다. 노는 아이들은 놀지만 많은 아이들은 이 시국에도 온라인 수업도 열심히 듣고, 모처럼 등교수업을 하는데 열이 나서 귀가조치를 당하면 자기를 위해서 별도의 보완수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게임으로 5,6월을 보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정말로 온라인 수업 하루 하루에 집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공부하라고 보내주는 자료를 또 재미나게 보는 아이들도 있죠. 인터넷이 없던 시절만큼이나 성실한 아이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
이런 것은, 인간의 양육의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뱃속에서 10개월을 나고, 3년간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그로부터 5년간은 옷을 입혀줘야 하고, 그로부터 10년간은 밥을 차려줘야 하는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스마트폰에 앞서, 인터넷에 앞서 아이들의 삶을 규정하고 구성합니다. 그러니까, 여전히 부모님들의 영향력이 아주 막강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전자양의 꿈을 꾸는 아이들은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면 따듯한 우리집에서 부모님의 온전한 보호에 안심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