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를 잘 쓰는 교사의 조건(상)

아동의 자발성의 일반화 규칙을 찾아보기(4) 숙의, 내면화, 보상체계

by 공존

6월, 고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 이야기가 다양하게 오갑니다. 우선 정정대장이라고 해서 1,2학년까지의 생기부 기록을 점검하여 이상 유뮤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바뀐 새로운 교육정책에 따른 생기부 기재 요령에 대한 교육이 학교 안팎으로 이어지고요, 선생님들은 코로나와 싸워가며 6월 한달을 수행평가로 바삐 보내며 생기부의 기초자료를 만들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개성을 탐구해나가게 됩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의 입장에서, 생기부를 잘 써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요. 수시 제도가 도입되고, 여러 과정을 겪으며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점점 생기부의 중요성은 커졌습니다. 그리고 정교해졌고요. 수시 초기에 생기부는 상당히 방만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아이의 스펙과 증빙서류로 무한하게 생기부는 길어졌고요. 그래서 대학에서는 학생 당 박스가 하나씩 도착한 사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실제 가능했던 것이 당시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10년 넘게 제도가 지속되면서 생기부 관리가 교육정책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복사와 붙여넣기, 당연히 안되고. 허위 작성, 당연히 안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학급의 모든 학생에게 작성을 해주는 것이 원칙이 되었습니다.


자, 그래서 생기부가 대학 입시의 큰 변수로 떠오른 오늘날, 교사들은 생활기록부를 어떻게 써주느냐?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몇가지 쟁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아이들을 써준다 VS 잘 하는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써준다


지난해 말에 발표된 교육부의 입시 공정성 강화 방안에서는 앞으로 모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도록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는 설명이 필요한데요, 정확하게는 출석과 성적 등 객관적 수치는 생활기록부에 이미 담겨있는 상태에서, 교사의 주관적인 기준을 포함한 서술문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라고 하여 기재해주는 것입니다.


교사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하지 않더라도, 성적은 수치화되어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선 그것을 우선하여 학생을 판단합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아무리 아름답고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학생이더라도 정작 성적이 낮다면, 대학에서 뽑는 것은 무리가 따르지요. 대략 일반고를 기준으로 9등급 중 4,5등급 정도 선이 이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입시에 도움이 되는 경우입니다. 그 아래의 성적인 아이들은 교사들 수십명이 3년 내내 아무리 생기부를 써준다 한들, 전혀 입시에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대학 입시만을 목적으로 한 논의일 뿐이죠. 모든 아이들은 공정하게 자신의 교육상황에 대한 평가를 받을 권리가 있고, 그것은 1등급이나 9등급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적 상으로 1등급 아이에게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있다면, 성적상으로 8,9등급 아이들에게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있을 테지요. 거기엔 아이의 단점이 담길 수도 있고, 교사의 훈계와 질책이 담겨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매 학기마다 텅 빈 여백을 남기는 것보단 나을 것입니다. 성적에 따른 차별로서 당연하다는듯이 성적우수자들에게만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꽉꽉 채워주고, 다른 아이들은 아예 텅 비우는 것이 교육적으로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는 명백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양쪽의 입장 차이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함에 대한 팽팽한 충돌로 이어집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아이들 한명한명을 개별화해서 써주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학급당 30명을 기준으로, 6학급 정도 들어간다고 하면, 180명이죠. 과목에 배당된 한글 500자는 A4용지에 10포인트의 글자로 절반이 조금 안되네요. 대략 180명의 생기부를 위해서 70~80페이지의 문서를 작성하겠네요. 그러면 단행본 한권 분량입니다. 한 학기마다 선생님들은 책을 한권씩 써내는 것이죠. 그 중에 60% 이상은 버려질 내용입니다. 필요한 일일까요? 그 노동력을 아이들과의 상담에, 교재 연구와 수업 연구에, 그리고 진로 지도에 투여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라는 주장도, 당연히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는 당연히 이쪽의 주장을 따릅니다. 대학, 보내야하잖아요.


2. 실제 사실을 담은 생기부 VS 거짓말을 섞어서라도 아름다운 생기부

4119869_250.jpg KBS

어느쪽을 택하든, 다음 질문에 부딪힙니다. 실제 사실을 담아 생기부를 써줄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좀 섞을까요?


대학도 요 10년 넘는 시간 동안 놀고 있진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생기부와 자기소개서를 놓고 빅데이터를 구축했죠. 오랜 시간 학교를 관찰하고 교육과정의 특성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기부를 나름 타당성을 갖추어서 평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생기부를 거짓으로 써준다 한들, 어지간하면 현실성 여부를 가늠해낼 수 있다는 것이죠.


교사들은 아이들 저마다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들에게 맞는 활동을 부여해준 다음에, 그것을 취합하여 최소한은 A4 40,50장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해야 합니다. 절반의 학생들만 써준다고 해도 논문 한 편 분량이군요. 여기에 모두 사실만을 담을 수 있을까요? 그게 또 어려운 일입니다. 수업을 해야 하니까요.


수능을 꼭지점으로 한 우리 중등교육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교과지식들을 학생들에게 부여합니다. 대학에서 다룰 내용들을 고등학교에서 다루고 있죠. 아이들의 성장발달 단계보다 빠르게,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다보니 자연스레 양 자체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항상 진도에 쫓기죠. 교사가 하고 싶고,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어줄만한 수업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아이들도 진도 중심의 수업에 익숙합니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일수록 암기 중심의 교과수업에 익숙해하고, 그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느슨해 보이고 배우는 것이 없어보이는 수업은 학교 내에서 소외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 교육이든 간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교사의 수업은 평이한 것이 되고 말죠. 당연히 아이들의 개별화된 성장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교사들은 단편적인 근거들만을 가지고, 그리고 성적과 수업 참여도를 통해 드러나는 인상을 통해서, 아이들의 성장 기록을 쓰게 됩니다. 여기에 학부모와 아이들의 욕망이 가세합니다. 바로 "셀프 기재" 문제죠. 교사는 도저히 아이들의 개별화 성장기록을 파악할 수가 없으니 아이들에게 무어라도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럼 아이들이 자기 활동을 이리 저리 써오고, 다른 서줄 것이 없는 교사는 그것을 참고하여 작성합니다. 이게 교사의 생기부 기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아이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학교가 똘똘 뭉쳐있습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면서도 써줄 수 밖에요.


오로지 사실에 바탕하여 아름다운 생활기록부를 쓰는 방법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긴 합니다.


3. "수업 재구성"이라는 불구덩이 VS 교사 노동의 테두리


높은 수준의 교과지식을 효율적으로 수업 내에서 다루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개별화된 성장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담아낼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교사가 대단히 큰 결심을 한다면요.


"수업 재구성"이란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아주 초기단계, 그러니까, 수업의 목표, 수업 진행 과정, 평가 방식까지 뜯어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대체로 그것은 상당히 큰 변화를 수반하게 되는데요, 교사가 기존의 자신의 수업을 변형하고, 수행평가를 고치는 수준을 "수업 재구성"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교과의 본질적인 성격을 탐구하고, 그것에 맞는 수업목표를,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현재 입시정책, 그리고 사회변화까지 고려해서 재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할 한 학기에서 1년의 수업 내용을 재구성할 것이며, 암기 위주의 평가를 넘어서서 아이들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을 모색하는 과정이 바로 수업 재구성입니다.


수업 재구성을 굳이 하지 않아도 수업은 굴러가고, 아이들은 대학에 가며, 그리고 교사들은 충분히 바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수업 재구성을 시작하는 순간, 교사의 노동은 두배 세배로 증가합니다. 강의식 수업의 학습분량과 아이들의 개별화된 성장을 모두 잡아낸다는 것이니까요. 대표적으로 수행평가가 매우 까다로워집니다. 암기 지식이 아니라 아이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야 하고, 양도 폭증합니다. 수행평가의 본래 목적은 1회성으로 이루어지는 지필평가 형식을 지양하고 아이들의 장기적인 학습 경과를 지켜보고 평가하도록 하자는 것이거든요. 말 그대로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성장이 모두 결과물로 나옵니다. 그리고 양심적인 교사는 이것을 모두 검토하고 피드백을 해야겠죠. 교사가 작성할 생기부가 단행본 한권인데, 검토할 아이들의 활동 경과가 단행본 여러권 분량입니다. 한 학기마다요.


교사가 아무리 방학이 있고 공무원에 준하여 통근하는 직종이라 할지라도 학기중에는 고강도의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터라 이렇게 폭증하는 수업노동을 쉽사리 수용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걸 왜 해야하는지, 내가 이런 고행을 택해서 내게 얻어지는 혜택이 무엇인지 마땅치가 않습니다. 성과급? 당연히 이야깃거리도 안되고 그렇게 열심히 수업을 해도 누가 딱히 알아주지도 않거든요. 다양한 집단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학교이기 때문에 개별 교사의 수업은 공정한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가뜩이나 큰 결심, 그 결심보다 몇배나 큰 노동량을 몇학기, 몇년 유지해야 하는 교사들이 투여한 노동량에 비해서 턱 없이 부당한 댓가만 받아들게 된다면, 그 지속성은 담보할 수 없겠죠. 그러므로, 생활기록부를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할 수 있도록, 그만큼의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여 열매를 얻어내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교사의 자발성과 집단의 숙의과정, 그리고 우리 아이의 배움의 자발성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에도 글이 길어져서 1,2편을 나눠야 하겠네요. 위에서 간략히 둘러본 세가지, 생기부 작성의 쟁점은 결국 교사의 자발적인 노력 없이는 절대로 해소가 안되는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기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모든 아이들에 써준다."라는 것은 절대선인 간단한 명제로 보입니다. 그러나 학교와 교사 노동의 속사정, 입시교육의 특성을 살피면 전혀 간단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부터 시작해서, 한 학급 당 25명에서 30명 정도의 아이들조차 너무 많은 현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에 매여있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막대한 양의 지식을 주입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성장 환경을 구성해야 한다는 문제가 얽혀들죠.


"모든 학생들에게 생기부를 써줘라"라는 말을 하면서 교사의 자발성을 배제할 수 있을까요? 그럼 교사의 자발성을 촉진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제가 소개한, 그리고 학교에 내재한 다른 다양한 쟁점들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하나 하나, 각 충돌하는 쟁점의 균형점을 잡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수월성과 보편성의 교차지점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지. 아이들이 주도성을 발휘하되, 교사들이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활동 중심으로 학교를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지. 그리고 교사들 개개인이 창의력을 발휘하고 수업을 재구성해서 그 성과가 모두에게 나누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러니까, 교사들의 자발성이란 그냥 누군가가 이야기해서 뽑혀나올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집단 전체가 개인들만큼이나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숙의"라고 부르는 과정, 혹은 민주주의의 요체이거나 총체죠.


그럼 아이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이와 다를까요? 다음 글에서 아이들의 자발성을 가로막는 쟁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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