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가도 살 수 있나요?

- 가까운 미래와 오래된 과거

by 공존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을 타파의, 적어도 개선의, 대상으로 합의한다고 했을 때 빠짐없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실제로 학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최소한의 삶이 영위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인생의 훨씬 더 많은 좋은 것들을 포기해가며 좋은 대학에, 좋은 고등학교에 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명문대학을 나온 것과 나오지 않은 이들의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민중이 학습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독한 학벌카르텔 사회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친일파가 되어 일제시대와 이승만-박정희시대까지의 지배층을 구성했고, 경성제국대학과 그 후신 서울대를 나온 이들이 고위관료, 고위법관, 중앙정치인이 되어 한국을 주물렀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인(人)의 장막을 펴 대통령의 전횡과 비리를 감추었던 이명박 박근혜의 사례에서 보듯, 바로 최근까지 그랬다.

학벌카르텔 사회는 학력의 가치에 대한 심대한 오해를 한국인들의 뼛속에, 화상 자국보다도 깊숙히 남겼다. 국가경영시스템은 극소수의 결정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돌아갔고 정보는 엄밀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이 사회에서 정보취약계층은 기초적인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의 삶의 문제를 법보다는 그 법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들과의 연결선 속에서 해결했다. 한 집안에 법관이 나고 의사가 나면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이 달라졌다. 물론, 한국 권력집단의 폐쇄적 속성은 이 학벌카르텔의 문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권력집단 그 자체이기도 하고, 그들의 손발이기도 한 지식엘리트들이 위협을 당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정권이 바뀌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다(굳이 비유하자면 학벌카르텔의 붕괴는 정권교체보다는 권력구조 자체의 변경, 즉 개헌에 가까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인 이 병폐를 가리고 있으니, 잘못된 진단에서 옳은 처방이 나올릭 없다. 한국사회는 학벌카르텔이 고착화된 박정희-전두환 정권 이후로 근 40년 동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극심한 혼란에 몰아넣는 입시제도 융단 폭격을 반복한다.

왜 한국인은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무한경쟁에 빠져드는가? 그 해답은 이 학벌카르텔 사회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파요 오메가다. 일제시대 때부터 이승만의 초기독재, 그리고 군사독재와 이명박 박근혜의 권위주의 정권까지 이 학벌카르텔은 사실상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고졸 출신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경제-사법-언론 등 사방의 엘리트들에게 노리개가 되다 꽃처럼 꺾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말 그대로 갑과 을 만큼 차이가 나는데 이러한 대기업에 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소위 서울 유력 명문대 입학이다. 대대로 여성연예인들은 권력자들의 성폭력의 대상이 되었고, 똘똘 뭉친 명문대생들은 이를 눈감아주고 은폐했다. 대체 어떻게 "다른 삶"을 꿈꿀 수가 있었단 말인가? 민중의식의 변화는 그것이 실제로 집단적 체험으로 확산된 뒤에 이룩될 수 있다. 신념이나 인식은 체험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의 교육열 문제의 해결은, 학벌카르텔의 붕괴 없이는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누구나가 무리 없이 합의내릴 수 있는 가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는 최근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몇가지 가능성을 본다. 첫째. 고학력 없는 고연봉 시대. 비록 레드오션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나 직업으로서 지속기간이 심각하게 짧다는 문제가 있지만 글로벌 비디오 채널 포털인 유튜브와 트위치 속에는 오로지 자신의 재능만으로 수억의 연봉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외국의 명품 브랜드에 매각된 국내의 한 쇼핑몰 대표의 사례도 있다. 미디어 통합, 국가간 격차의 극복, 전문기술의 보편적 확산 등으로 인하여 과거와는 다른 신세대들의 직업적 롤모델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둘째. 북조선의 경제개발과 남북 경제협력. 북조선과 남한의 사회인프라는 대략 2~30년 차이가 날 텐데, 만일 북조선이 순조롭게 경제개방 및 개발을 하고 남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물리치고 우선적으로 개발협력과 투자를 할 시에는 거기에서 창출될 부의 가치가 무한하다. 건축과 광물만이 아니다. 기본적인 각종 서비스업도 그렇고, 의료나 교육도 그렇다. 30년간의 사회인프라의 차이를 동기화하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하여 앞으로 대단히 많은 경제적 기회는 생성될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경쟁 완화도 한몫한다.

그 밖에도 국가권력 시스템에 대한 공공적 감시, 대학의 평준화 등 몇가지 가설은 존재할 수 있지만 상기한 두가지 핵심 요인만큼 강할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미래시대의 가능성을 우리 교육은 포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공교육은 여전히 대학입시를 전제로 하고, 그것은 줄어드는 학교 일자리에 대한 압박, 학교 경쟁력 강화를 논리적 근거로 삼는다. 이것은 타당한가? 건국 이래 최초로 학벌카르텔 붕괴의 기회가 생겨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학교와 교사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명문대를 나옴으로써 생기는 메리트보다는,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위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 과거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것보다는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그 속에서의 생활방식과 부의 창출을 학교 교육과정에 조직화하는 것. 아이들에게 "대학 안가도 살 수 있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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