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 제 4의 길을 찾다

"한국 교육 근현대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by 공존

조국의 자녀 진학과정에 있었던 몇가지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사람들이 뜨거운 분노를 내뱉는 것을 보면 교육으로 인해 모두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막연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최고의 명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밟아온 교육의 과정과 그 경험을 행복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의 불행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한국의 교육은 국민 대다수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큰 문제는, 신뢰를 하지 않는 당사자들도, 신뢰받지 못하는 당사자들도 그 명확한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출제오류로 인해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교육청에 던지거나, 외고입시 부정으로 40여명의 학생들이 무더기 입학취소를 당하는 등의 흥미진진한 역사도, 1527명의 교사들이 참교육선언과 전교조 설립운동으로 파면 및 해임 당한 피눈물도 알지 못한다. 역사와 단절된 매 순간 순간의 단편들이 교육받는 아이들과 가르치는 교사, 지켜보는 학부모들에게 탈맥락의 경험만을 선사하는 일이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의 역사를 4가지 시기로 구분하여 밀도 있는 관측을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뒤틀렸는지를 생생한 육담과 함께 보여준다. 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순수한 희망이었던 사실도, 교육을 죽이고 살리는 방안 중에 하나로 우리의 교육에 관한 욕망을 버리는 점도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래는 6.25 동란의 와중에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쓴 '우리들은 전쟁 속에서 세기적인 교육법을 발견했다'라는 글이다.

우리들은 할 수 없이 그리운 서울을 버리고, 훌륭한 학교와도 이별하고, 사랑하여 주시던 선생님들과도 작별하여 어머니 아버지 손에 이끌리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란하여 내려왔습니다. (중략) 우리들은 배우고 싶었으나 배울 집이 없고, 교과서도 없고, 책상, 공책, 연필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들은 각처로 피란생활을 하시며 사과장사 부두노동을 하여서 살아나가셨습니다. (중략) 그러다 우리 선생님들이 맨주먹을 불끈 쥐시고 학교를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기뻐서 우리 부산진서울피란국민학교에 들어았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이렇게 생활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세우는 마음으로. 학교라고는 부르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학교였습니다. (중략) 오직 있다고 하면 존경하여 마지않는 선생님들의 성의와 사랑, 그리고 우리들이 세우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도리어 우리들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무에서 유를 얻으려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책이 안내하는 4가지 시기는 각각 (1) 해방 후 혼란기 속에서 공교육의 모델을 새로이 정립하는 과정 (2) 군사독재정권이 국가를 재설정하며 각종 법령과 규율로 교육민주주의를 압살한 시기 (3) 글로벌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교육이 신자유주의로 재편된 시기 (4) 혁신교육의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세계적 석학 앤디 하그리브스의 <학교교육 제 4의 길>에서 제시한 4가지 시기를 대체적으로 따르면서도,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 이론이 제시하는 정부정책과 교육주체의 관계, 각 시기별 교육모델의 성격 등에 따라 재구성한 것이다. 정치적 대격변과 급격한 경제성장을 걸어온 한국의 교육상황을 보편적 관점에서 살피며 두 책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한편으로 책의 기획과 구성에 따르는 제약이지만 담론 중심의 서술로서 다양한 교육주체의 입장을 다루지 못하는 점은 추가적인 연구와 독서를 요한다. 책은 대체로 교사집단이 다양한 외부 조건에 맞닥트려 어떻게 교육을 위하여 힘써왔는지를 "새교육"이라는, 70년 역사의 교육잡지를 통해 분석하고 제시하고 있기에, 한국의 교육열이 어떻게 형성되고 비약되어 왔는지, 소수의 역동적 교사들이 아니라 다수의 교사들이 어떻게 교육정책과 외부변수에 대응해 왔는지, 학생들의 교육열병은 어떻게 커져왔는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Education Fever>로 연결하여 커리큘럼을 짜도 좋을듯하다.

우리 교육의 미래를 제대로 알기 위하여서는 과거부터 알아야 한다는 관점은 분명 필요하지만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면 허탈하기 그지없다. 교사의 각고의 노력이 외부의 압력에 산산히 흩어지는 것을 역사를 통해 다시 배우며, 오늘날 교사들의 노력이 쉽사리 허물어지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탓이다. 한국전쟁의 참화를 딛고 세워진 민주교육이 이승만정권의 간섭과 이어진 박정희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교육열에 찢기고, 이제는 자본주의와 기술발전에 벽에 가로막히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도 수 많은 압력이 교사의 교육을 가로막고 아이와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저자 이길상 교수는 네번째 장에 유익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히고 있으나 국가의 정책과 제도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공교육이 과연 진정한 자신의 영토를 수복할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70279646_1166481293562812_3377868104720711680_o.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