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ZE

미국 뉴저지 주 교육개혁의 장대한 헛발질과 현장교사들의 노력

by 공존

난생 처음 LA에 갔을 때 우리 부부가 LA의 구도심에 위치한 버스 터미널에 당도한 것은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숙소는 터미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였는데, 나는 지도를 한참 검색한 뒤 결국 무서워 덜덜 떨면서 그 길을 걷는 길을 택했다.


거대한 공장식 건물들 사이로 가로등이 점점이 늘어선 인적 없는 길을 걸으며 나는 20분 가까이, 단 한순간도 총 든 강도를 생각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커다란 캐리어를 든 동양인 둘이 LA의 다운타운을 밤 늦게 걷는다니. 다시 하라면 못할 짓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연하게도, 나는 여기서 살아가고 있을 청소년들을 떠올렸다. 평생을 총기사고의 두려움에 떤 학습자들이 성인이 되어 어떤 의사결정들을 내리게 되는 거지?


고민은 여행 내내 이어졌다.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 중 하나인 LA의 공공정책은 너무나 허술했다. 렌트한 자동차를 주차하기 위해 매일밤 2만원을 지출했다. 자동차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도시인데 공공주차장은 찾아보기 힘든듯 했다. 3분마다 거대한 유료주차장이었다. 도시도 너무 거대하고 땅도 너무 거대하다. LA에서 라스베가스로 이동하는 7시간 여의 버스여행길에는, 얼토당토 않는 저밀도의 주택지들이 띄엄띄엄 흩어져있었다. 터무니 없는 행정력의 낭비가 이방인의 눈에 뻔히 비쳤다. 나중에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을 때, 아름다운 해변도시의 한 가운데 자리한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모습을 보고, 그 동네의 땅값에는 또 얼마나 소스라쳤던가.

나는 자본주의는 다른 여러 제도와 마찬가지로 맹아를 틔우는 초창기-고도성장기-만성적인 병폐가 누적되는 쇠퇴기가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비트코인이며 월가의 온갖 금융상품들이며 트럼프가 말하는 무역장벽과 물리적 장벽 등등...실은 모두가 이 자본주의의 썩은 세포와 장기들에 달라붙어 있는 일부는 암덩어리며 일부는 생명유지장치이고 일부는 각질처럼 굳어가는 살점들이다. 마치 성경처럼, 자본주의를 둘러싼 모든 사회시스템들이 그 영속성을 가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그 모든 영광과 병폐가 뒤섞여 강제로 압축된 거대한 통조림 같은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사로서 미국의 정체와 본질을 그 사회제도와 교육제도에 비추어 고민하는 것은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유혹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한 교육시설이 개인의 기부로 지어져 무료로 운영되는데, 흥미롭게도 미국은 부자들이 재산의 20%를 세금으로 내느니 50%를 기부하는 것을 선호하는 나라다. 저 거대한 박물관이 공공성을 충분히 고려한 정부의 투자로 지어졌더라면 얼마나 효율적이었까. 구도심의 학교는? 산업이 변화하여 공장지대는 녹슬고 집값은 올라간다. 시와 주 정부의 투자는 도심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시 외곽의 부촌에 선행된다.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어두컴컴한 LA의 밤 풍경, 거대한 그래피티를 창밖으로 보며 여러번 생각했다.

<PRIZE>는 미국 여행 가기 전에 산 책인데, 이태원 삼성 블루스퀘어 홀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다가 서점에 들러 표지와 그 외 몇가지 요소를 보고 골랐다. 나는 경기도에서 한국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혁신교육사업의 학교담당자이자 시 교육청 협력사업 참가자로서 지역사회 연계 교육혁신 사업에 깊이 인연을 맺고 있던 참이고, 마침 싱가포르 연수에서 겪었던 사회현상과 교육의 긴밀성에 침잠해 있던 차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 미국 여행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받은 충격과 혼란스러움과 함께 이 책을 얼마전에 끝마쳤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미국의 자본주의적 병폐, 공공성의 추락 속에서 미국이 시도한 상당히 새로운 지역사회 교육혁신 모델을 상당히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초창기의 크나큰 기대와 열망이 상당히 폭력적인 실패로 귀결되는 것을 추적하면서 책의 구성에도 꽤나 공을 들였는데, 현장교사들의 다양한 교육학적 시도와 그를 통한 학생들의 변화와 성장 이야기를 날줄로 하여, 뉴저지 주의 뉴어크 시의 교육혁신 정책의 5년간의 씨줄에 엮었다. 교육혁신 사업의 실패를 보여주는 중반기까지는 이 구성이 조금 지루하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는데(동어반복적이고 한국에서 근무하는 혁신교사로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사실은 이런 구성 자체가 저자가 결말부에서 암시하는 진정한 교육혁신의 비전을 말하고 있음을 깨달은 후부터는,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뉴어크시 교육혁신의 5년을 조명하며, 이 책은 왜 그 사업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속에서 미국의 행정가들이 취하는 교육에 대한 시각과 교육철학을 꽤 날카롭게 비판하는데, 그중 백미는 다름 아닌 이 사업의 핵심 주체인 뉴어크 시장 코리부커, 그리고 뉴저지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응?)의 교육철학적 아노미 상태이다.

미국에서 가장 실패하고 있는 교육자치구의 대표자인 코리와 크리스티는 2억불, 대략 2천8백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부금을 끌어모으고서는 현장의 교사들을 "걸리적거리는 노동조합" 이상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저자의 견해이든, 시장과 주지사의 견해이든 책의 아주 초반부터 교원노조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끊임없이 계속되는데 정작 인건비 이외 교육연구에 대한 투자는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관과 교원노조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고, 시와 주 정부는 교육정책을 뉴저지의 교사들이 아니라 워싱턴과 뉴욕에서 불러온 컨설턴트와 의뢰해 상의한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이 컨설턴트들은 모두가 백인 상류층인데, 그들은 그저 "교사의 경쟁을 강화하고" "교장의 책무를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학교 이식 이외로는 보기 힘든 인식들만을 보이고, 그것을 그대로 밀어부친다. 대체 어떻게?

뉴어크의 처참한 교육력은 그 비참한 교육환경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임에도 당연히 미국은 그런 환경 또한 개인의 책무이기 때문에, 교육혁신 정책에 학교 안전 조치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재학생 혹은 졸업생들이 연간 수십명씩 총기사고와 각종 폭력을 당해 세상을 떠남에도, 뉴어크 교육감의 관심사는 어떻게 능력없는 교사를 학교에서 걸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학생수가 감소하는 일반 공립학교 대신 교육당국의 정책의 간섭을 덜 받는 자율형 공립학교인 "차터스쿨"을 늘릴지에만 골몰한다. 도대체 어떻게?

교육행정의 관점에서, 이 사업은 사실 "2500억원을 어떻게 쓸까?"에 맞추어져 있어서는 안됐다. 26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는 뉴어크시 교육혁신 사업비 총액의 10%를 넘는다. 어떻게!???)을 백인 고위층 컨설턴트들에게 쏟아부어서도, 차터스쿨을 늘리는 반대급부로 해고될 위기에 놓은 공립교사들을 위해 550억원을 탕진해버려서도(인건비는 고정지출이다. 개인의 기부금과 같은 일회성 예산에 투자하면 사업의 연속성이 절대로 담보될 수 없다.), 교사 노동시장 유연화에 수백억원을 투자해서도 안된다.

그보다는, 일회성 예산인 "2500억원을 어떻게 우리의 영속적인 교육자산으로 삼을까?"가 논의의 핵심에 자리하며, 이 금액이 모두 소진되었을 때 최대한의 교육적 자원이 유형과 무형의 것으로 지역에 남아있을 수 있게 했어야 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하는 교육정책연구시설에 예산이 투자되었어야 하고, 청소년 범죄율을 낮추기 위하여 직접적인 사회안전망 투자가 사업의 실패 이전에, 조기에 시행되었어야 한다. 일회성인 컨설턴트비용과 정리해고 비용으로 써 버릴 돈은, 결코 아니었다.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민주주의는, 실패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경기도 혁신교육이나 의정부 마을교육공동체도, 결국엔 신자유주의로의 교육 전환의 물결을 경험하고 난 뒤의 성찰의 결과물이다. 뉴어크시의 실패와 교훈도 이제 어쩌면 첫걸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행히 뉴어크시 교육감의 후임자는 이전의 실패를 딛고 보다 나은 교육정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조짐은 보인다. (이를테면 전임자는 찬성파와만 협의를 했는데, 후임자는 반대파와 직접 대화를 한다.) 2억달러의 교육혁신 기금을 조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크 주커버그 역시, 이 실패를 기회로 삼아 미래교육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고 밝혔다고.

미국여행에서 보고 느꼈던 많은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좋은 책인데...왜 숙제는 더 늘어났는지, 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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