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학교에서 만난, 격차사회의 단편

검은 피부의 정원사, 흰 피부의 교사들

by 공존

0. 들어가며

눈 앞의 현실을 의심하는 것은 일견 지당하나 일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실재를 접한 경험이 곧 인지와 지식을 구성하는 탓이다. 존재하는 사실을 왜곡 없이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 그것이 또한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그렇다면 의심은 언제 발생하는가. 거짓말을 반복하는 친구의 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을 다루는 뉴스가 아닌, 하늘의 구름과 같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과 같은 지당한 문제에 대한 의심. 왜 인간의 손가락은 각각 다섯 총 열 개가 되어 있는 것일까? 왜 계절에 따라 별의 높낮이는 달라지는 것일까? 왜 사람의 눈 팔 다리 귀는 두 개씩인가?


인간은 언제 의구심을 품게 되는가. 또한 그 의심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가. 짧은 생애든 긴 생애였든, 평생 동안 알고 있어온 명백한 사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가. 이 또한 교육을 논의함에 있어서 사실에 대한 왜곡 없는 인지 만큼이나 주요하게 성찰되어야 할 소재임이 명확하다. 미신과 신화, 그리고 종교까지도, 우리의 인식을 둘러싼 껍질을 깨고 우리 인간의 지평을 숲 밖으로, 대양으로, 그리고 우주로 이끈 것이 바로 그러한 인간의 의심과 의구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의심으로 인하여 문명을 발전시키고 또한 지금까지 종을 존속시켜왔는지도 모른다.

1. 교육강국 싱가폴
2017년에 참여한 해외 선진지 연수의 주제는 미래교육이었다. 싱가폴은 1997년 미래교육을 위한 자그마치 17년간의 대규모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1기에서는 교사와 학교의 자율성 증대, 교육과정 중심 교육, 수업과 평가방식의 변화와 ICT 교육의 도입을 도모하였으며 2기에 해당되는 2005년 “Teach less, learn more"라는 구호 아래 프로젝트 중심 교육과정을 전폭적으로 각급 학교에 도입하고 5%의 학교를 퓨처스쿨로 선정, 전 교육과정에서 ICT 교육을 실시토록 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미래교육의 3기까지 모두 완료된 지금, 싱가폴의 교육은 초등학교 1,2학년부터 학생들이 인터넷을 활용하여 학생 중심의 배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국가주도 하에 교육전문포털사이트를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단계에서는 창작영어동화를 만들고 PPT를 통해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대사를 합성하는 수준의 프로젝트 학습이 구현되고 있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학생들에게 체화된 학생 역량 중심의 교육은 고등학교 단계에 이르러, PISA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도와, 해외 각종 학력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핵심인재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국가를 위한 헌신과 사회에 대한 봉사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싱가폴의 교육은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우리 교육이 의도하고 있는 학생 중심, 역량 중심, 교육과정 다양화 등의 각 목표에 대한 유용한 비전을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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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괄목할 싱가포르의 교육 성공의 요인은 다음과 같다.
- 안정된 국가 리더십 아래 장기적인 교육비전이 기획되고 정착됨
- 교사에게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학생 학부모 교육기관 모두가 교사의 수업권을 존중함
- 우수한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국가와 사회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높음


그러나,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을 배제하고 싱가포르의 교육환경만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 나라에 도입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제한점이 따른다.
- 도시국가 싱가포르와 달리 도농의 교육인프라 격차가 뚜렷한 한국의 수도권과 도심 외 지역에는 균등한 ICT 교육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함
- 인터넷 컨텐츠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ICT 교육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다양함. 이를 통제할 수단도 제한적임
- 교육의 각 주체간 자율성에 대한 가치기준이 심각하게 상이함

2. 교실의 밖과 안
싱가포르의 학교를 방문하며 여러번 목격한 이채로운 풍경은, 뚜렷한 격차사회라는 점이다. 정문을 지나 교정을 통과하며 만나는 경비원과 정원사, 그리고 급식실을 청소하는 이들은 인도계와 말레이시아계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반면 시원한 에어컨이 맞이하는 교무실과 회의실에선 어딜가나 새하얀 얼굴의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말끔한 복장과 영어실력을 뽐내며 자신들의 교육을 이야기한다. 물론 싱가포르의 역사와 사회문화를 조금이라도 조사한 사람이라면 이런 풍경이 그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다는 것을 안다. 인구의 60%를 점하고 있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바로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장본인들이며, 대부분의 육체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말레이-인도계는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의 수혜 속에서 모국사람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또한 싱가포르는 이러한 다민족사회의 화합을 위하여 다민족화합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으며, 특히 학교에서는 필수적으로 민족화합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관련된 행사도 실시한다. 때문에, 싱가포르의 초등학교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균등한 교육을 받으며, 교사는 어떤 정책적인 가이드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싱가포르의 화합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 다문화교육을 학급 내에서 잘 구현하고 있다. 실제로, 상기한 창작영어동화 애니메이션 만들기를 진행하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은 모든 모둠이 2인 1조의 다문화 그룹으로 짝지어져 있었다. 의심은 바로 이곳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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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국가 싱가포르는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거의 유일한 생산수단인 서비스산업을 극도로 효율화했다. 국제무역의 핵심 요충지라는 입지 위에, 기업을 위한 금융과 규제완화, 세금혜택 등에서 탁월한 이점을 보장하는 이 나라는 동시에 세계시장의 노동자로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반면,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군의 노동자에게 싱가포르는 그들이 추구하는 효율성 이상의 교육을 효과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졸업시험인 PSLE(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을 통해 상위의 6개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선택권 없이 교육청이 통학거리를 감안하여 지정한 학교에 배정되며, 이때 발생한 학력의 격차가 대학까지 계속 유지된다. 때문에 싱가포르의 학생들은 학력경쟁에서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2012년 전까지는 전국 학생들의 석차를 신문지면에 공개했기 때문에(싱가포르의 모든 언론은 사실상 정부가 위탁 운영하는 형식이다.)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빈번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학력의 격차는 당연히 자본소득의 영향을 크게 받아, 부유한 중국계의 학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 그리고 인도-말레이시아계의 육체노동의 대물림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는 모든 민족의 학생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고 있지만 교실 바깥에서는 소위 말하는 “유모가 업어서 시험장에 모시고 가는” 수준의 천지차이의 교육 격차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피부색의 초등학생들은 PSLE가 치러지는 순간, 눈 앞에 보이는 하얀 얼굴의 중국인의 세계와 짙은 갈색피부의 말레이-인도인의 세계로 나뉘어진다. 그들은 초등학교를 등교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근대 학교는 보편성을 지향해왔다. 비록 그것이 당시의 많은 나라들에서, 국가주도 경제체제의 빠른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 해도 그 열매는 장기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공유했다. 그러나 이런 문명사적 발전과 상이한 양상을 보이는 싱가포르의 교육은 교육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든다. 교육의 수월성은 보편성에 우선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싱가포르의 초등학생들은, 지금 함께 노트북을 펴고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 이제 곧 정원사와 은행원으로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부당하다는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3. 교실의 안에서 밖으로 : 한국사회의 경우
한국의 교육은 바로 얼마 전까지 싱가포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구한말 양반 귀족 층의 국가 전횡은 전 국민의 8,9할을 문맹상태로 빠트렸으며,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하여 일본어와 한자가 강제되면서 국민교육의 문제는 한층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일제는 민립 고등교육기관들을 폐쇄하며 조선인을 하급노동자로 격하시키기 위하여 초등학교의 연한을 6년에서 4년으로 단축시키는 등의 우민화 교육을 폈다. 식민지 교육의 본질은 육체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위한 인간의 기계화에 있었으며, 식민지 말기인 1940년대에 이르러서도 문해율이 15% 언저리였다는 점은 얼마나 일제시대의 교육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이분화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교육 자체가 식민사회 지배층의 특권이었으며 이는 해방 후에도 사실상 식민 지배체제가 미군정에 의해 유지됨으로써 한동안 사회의 계층질서를 존속하는 기능을 했다.


문제는, 한국사회에 식민지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민족주의가 상당히 긴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뿌리내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민족지도자들은 교육운동을 지속적으로 활발히 전개했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독립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교육의 필요성이 큰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였으며, 당시의 언론과 종교인들은 사설과 성명서를 통해 국민교육을 여러차례 강조한 것은 일제강점기 한국 교육철학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한국인들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성공 그리고 그 이전에 생존을 위하여 교육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너도 나도 학력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정부는 1949년 교육법을 제정 공포하고 1950년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등, 여러 시책을 동원하여 국민교육에 나섰다.


해방 후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숙원이 분단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달성되었고 국가통합의 기반 위에 진행된 우리 역사의 흐름은, 말레이시아 본토인들이 중국인들에 비해 갖는 열등한 사회지위로 인하여 사실상 말레이시아 국가연방으로부터 축출된 싱가포르의 상황과 강하게 대비된다. 말레이시아는 경제권을 쥔 중국계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 계속 속할 경우, 사회 전체의 권력이 중국계에 의해 잠식될 것을 우려하여 말레이시아를 퇴출시켰다. 싱가포르라는 국가 성립의 발단 자체가 중국계와 말레이시아계의 계층 분리였던 것이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를 승계한 독재정권에 대한 4.19혁명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하여 대단히 빠르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달성되면서 시민의식이 한층 성장한다. 해방 후 한국의 각계각층은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며, 독재정권 시기조차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시민의 권리가 다양한 경로로 성장했다. 교육을 받을 보편적 권리에 대한 민중들의 강한 열망이 일제시대에 싹텄다면, 경제의 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이 시민들의 권리를 계속 성장시켜 온 것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는 일제시대의 고통과 한국전쟁의 충격을 겪지 않은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 여건 속에서,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교육을 활용하며 교육을 통한 시민권의 획득을 잘 체득하였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교육의 보편성을 강하게 추구하는 사회로 진전했다. 물론, 과도한 학력경쟁과 잘못된 교육과정의 수립 등 숱한 단점과 난맥상을 노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온 방향은 대체적으로 학력경쟁을 완화하고 성인이 되는 대학생까지도 모든 학생들이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는 길을 걸어왔다. 또한, 모든 학생들이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교육철학은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기여했다. 초등학교에서 학력이 낮은 학생은 중학교서 다시 기회를 부여받고, 중학교에서 학력이 낮은 학생은 다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현 정부는, 지방대와 서울 유명대학과의 차별조차 부당하다는 관점 속에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교육의 흐름은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성과 미래 역량중심 사회에 대한 고찰을 토대로 하는 “단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는 경기도교육의 비전으로 정리될 수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능력과 계층에 관계 없이 같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철학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둥줄기다. 어쩌면 2016년에 이룩된 한국의 촛불혁명의 밑바탕에도,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교육이 앞장 서 실천해 온 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교실의 밖에서 안으로 : 싱가포르의 경우
그러나 싱가포르의 교육계층화 전략이 반드시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코끼리와 사자에게 똑같은 식사를 제공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것을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싱가포르의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처한 상황과 역사적 흐름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본래 말레이시아의 끝에 위치한 버려진 땅이었다. 부존자원이 없을뿐더러, 식수를 얻을 수 없어 가치가 낮았다. 동인도 회사의 주도 아래 이 지역이 영국령에 속하게 된 후에야, 세계 최고의 해양산업국가 영국의 수혜를 받아 도시가 성립하고, 다시 이 지역을 일본이 점령하는 등의 고난을 겪었다. 싱가포르가 국가로서 독립하게 된 시점은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크게 확산되던 시기로서, 국제정세가 불안정하고 주변의 많은 강대국 사이에 놓인 도시국가로서 존립이 의심되던 상황이었다.
싱가포르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가용한 자원은 오로지 노동력과 무역을 통한 이익 창출이었다. 여느 나라가 그렇듯 경제성장기에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할 청소년들을 노동력으로 이용했고, 물론 여느 나라가 그렇듯 어린 학생들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공부보다 노동을 택했다. 하위계층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동안 정부는, 우리가 그러했듯 교육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여 고급인력을 육성했다. 한국사회가 지난 세기 걸었던 길과 유사한 길을 싱가포르는 걸어왔으며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민주주의가 확산되어 온 한국사회와는 달리, 태초부터 분단된 구조가 지속되어 온 민중들의 계층분리, 그리고 일당 독재가 계속되어 온 싱가포르의 정치구조가 교육의 보편성을 확대할 동기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가에 비하여 월등한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이러한 성과를 사회구성원들이 대체로 잘 공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계나 인도계 싱가포르인들로서는, 싱가포르보다 소득도 낮고 사회시스템도 허술한 그들의 모국사회와 비교하며 싱가포르에서의 하위계층의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 싱가포르 역시도 느리게 민주주의가 진전되어 갈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보편성을 획득해 나갈 것이다. 유리새장 속의 나라라거나 사형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평가는 싱가포르 사회가 겪어왔던 질곡을 단면적으로 평가하는 외부인의 시선에 불과할 뿐, 스스로의 삶에 대해 충분히 선택권을 부여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 대하여 다른 나라와의 비교는 신중해야한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최선을 다하여 국가를 경영하고 있으며, 나름의 생존전략, 스티브 잡스도 없고 싸이도 없는 사회일지라도 글로벌시장의 충실한 일꾼들을 육성하는 교육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20년 단위의 국가교육대개혁을 막힘없이 추진할 수 있는 경제안정과 정치안정이 보장된 세계에 드문 나라다. 인구감소라는 고민을 떠안고 있는 극동의 강대국 한국과 일본이 싱가포르의 역량중심 교육정책 성과를 신중히 살피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5. 마치며
싱가포르에서 만난 또다른 이채로운 풍경은 거대한 인공수목원이었다. 거대한 해안지대를 매립하여 만든 부지위에 설립된 싱가포르의 최첨단 인공수목원은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양생태계의 파괴를 경계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철골구조물로 만들어낸 작은 산 위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한 물로 만든 폭포수가 쏟아져내린다. 수많은 해양생물을 사멸시키고 만들어낸 땅 위에 세워진, 수많은 미생물들을 사멸시키고 세운 인공수목원. 풍요로운 삶의 뒷면에 그들이 가진 보편성의 빈곤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싱가포르의 교육은, 의심의 눈을 학생들에게 키워주고 있을까? 나의 삶과 같은 타인의 삶, 풍요만큼이나 중요한 균형과 환경의 문제. 여전히 의심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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