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 영어 쌍방향 온라인 수업
"자 여러분들 여기는 별표하세요. 중요합니다."
"네."
"네."
"네."
"네에."
"네."
머릿속에는 노랑털을 온몸에 뒤집어쓴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하는 모습이 스쳐간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빠르게 설명을 계속한다.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모니터 속 수업에 집중하느라 내 웃는 얼굴을 보진 못할 게다.
개학을 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고등학교에서는 어김없이 입학식을 치르자마자 첫 수업부터 진도를 나간다. 교사는 결국 수업으로 말을 하는 것이니. 그리고 특히나 온라인 수업에선 아이들을 잠시라도 놀려선 안된다. 평가계획과 대강의 수업목표를 알린 오리엔테이션 뒤에는 바로 본문부터 수업 시작이다.
그런데 1-5반 요 학급은 이상하다. 아이들이 대개 카메라를 켜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마이크를 켜고 계~속 "네" "네" "네" "네" "네" 대답을 한다. 귀엽잖아! 중학교 때 쌍방향 수업을 한 학교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 이상으로 이 학급에선 관계성이 잘 발달된 아이들이 학력이 좋은 모양이다. 이런 학급이 드물다. 그러니까 나도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이를 테면,
"It is easy to pick a pencil...어 이건 굉장히 쉽지. 펜 하나 집는 거 얼마나 쉬워요? 자...Like a piece of cake. Piece of cake라는 표현이 있어요. 껌이지! 라는 뜻이야. 케이크 한조각 뚝딱."
"아아~."
세상에나. 정말 귀엽잖아. 저렇게 사족처럼 표현 하나를 더 던지는 순간에도 마이크는 켜져있다.
아이들이 떠먹여준 관계성만큼이나 교사인 나 역시 아이들의 관계성을 발달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만든 단톡방에 1학년들을 불러들였다. 나는 올해 1학년 2개 학급, 2학년 2개학급의 영어 수업을 지도한다. 작년부터 영어공부 톡방에 들어와 있는 아이들까지 130여명이 이따금 나갔다 들어왔다 하며 같이 영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어톡방이 필요한 이유는 온라인 수업의 활동형 모델로는 절대로 메울 수 없는 교사-학생 커뮤니케이션의 공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의 수업 형태는 이렇다. 30분 수업(물론 대부분 시간을 넘김), 10분 활동지(시간을 더 주고 싶은데 짧다.), 10분 피드백(그래도 피드백 시간은 준수하기 위해 노력!). 수업을 진행한 직후 해당 지문의 활동지를 짧은 시간 안에 풀어서 그것을 보고 피드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영어 저학력 학생들을 온라인 환경에선 교사가 무슨 수를 써도 케어할 수가 없다. 그것을 톡방으로라도 벌충을 하니, 1학년과 2학년이 섞인 환경에서 의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2학년 한 아이가 이것저것 퀴즈를 올리고 있는데, 그걸 1학년 신입생이 열심히 맞추고, 둘이 존댓말로 소통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톡방에서 영작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지난해 1학년 수업에서는 지필평가(중간/기말고사)에 출제되는 서술형평가를 대비해주기 위하여 매일같이 영작을 시키고 피드백을 해주곤 했는데, 내 수업을 듣지 않는 학급에서 슬슬 공정성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내 못받았는데 저 선생님 들어가는 반은 매일 영작 연습시켜주네?" 라는 이야기들. 그래서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영작을 거의 시켜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톡방에는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이따금 이런 저런 질문이나 수다를 떨며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1학년이 새로 들어오니, 병아리같은 아이들이 영작에 도전하고, 그것을 보며 2학년들에게 훨씬 어려운 영작 과제를 부여해주며 양쪽의 발전을 지켜볼 수 있다. 즐겁잖아!
톡방이 다시 활성화되니 또 다른 아이들의 성장의 모습도 나타난다. 병아리들과 끊임없이 웃음을 터트리며 수업을 하는 1-5 학급과 달리 1-6 학급은 단 한명의 아이도 수업 중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업을 안듣느냐? 그건 아니고 그냥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학급이다. 그리고 굉장히 도드라지게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보인다. 어쩌다 보니 앞반엔 활발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거고, 뒷반엔 조용한 아이들이 모여서 전체 평균을 형성하고 있는 게다.
그런데 톡방에선 1-6 아이들이 좀 더 활발한듯 보인다. 수업 땐 말 한마디 없는 아이가 꾸준히 톡방에서 영작에 참여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성장발달 단계다. 아이들의 성장의 동력은 한정적이고, 관계성을 발달시킨 5반의 왕성한 병아리들이 있는가하면, 거기에 투자할 성장의 동력을 관찰력과 사고력에 조금 더 투자한 아이들이 6반에 조금 더 모여있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이런 성장발달의 양상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르게 분포된다. 그것을 상승의 방향으로 끌어내는 것이 교사의 몫이고, 나는 온라인 수업 2년차를 맞이하며 어떻게든,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영어자극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는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육은 그에 대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 가능한 것이니까.
이즈음에 1학년 영어 수업의 협의체계도 더 발전하고 있다. 나만 1학년에 그대로도 다른 두 선생님은 1학년수업이 굉장히 오랜만이다. 그러나 나는 2개 학급만 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선생님의 주도에 내가 보완을 하는 방식으로 협업되고 있다. 모든 차시의 진도와 활동지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같은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수업진도나 형태는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1학년을 오랜만에 지도하는 사람들이니 매 차시의 수업 논의가 훨씬 긴밀하다. 그래서 나는 벌써 수업 3회차 만에 한 페이지나 진도가 늦고 있다. 셋이서 맞추기로 한 진도를 혼자 늦고 있으니 그런 것도 빠르게 공유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2년차 들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은 숙제들이 관찰되지 않았다. 고작 3일. 그러나 초기의 아이들과의 활달한 관계성을 유지하며 깊이있는 영어지식을 쌓도록 하는 것이나, 차분하고 집중력 있는 태도를 유지하며 관계성을 끌어올리는 것 모두 앞으로의 나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이런 때에 아이들은 서로서로 원만한 관계맺음으로 나에게 동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숙제가 여럿 남아있다. 우선 아이들의 활동에 대한 보상이다. 작년에는 톡방에서 영작 활동에 따라 포인트를 부여하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했는데 내 게으름 때문에 제대로 포인트 계산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등교주에 2학년 애들에겐 그냥 아이스크림을 전체 쏘기로. 1학년에게도 보상을 주긴 해야 하는데 수업 참여가 낮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포인트를 쌓게 할지를 더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떤 보상이 영어 저학력군, 참여저조군에게 적절할까. 작년에 해결하지 못했고 올해에도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아이들에게서 싹튼 관계성이 전체의 수업 참여로, 그리고 학력 증진으로 나올 테다.
그리고 여전히 평가의 공정성 속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결국엔 수업. 결국엔 성적.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으로, 혹은 자기 성적에 꿀리지 않으며 세상에 나갈까. 그 길을 어떻게 닦아줄까는 지금 아마도 시작되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