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은 영원한 행복!
루드베키아(Rudbeckia)
명사
국화과 루드베키아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며 한국에서도 여러 종이 재배되거나 귀화하여 자생. 대부분 여러해살이풀이며 몇몇은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종에 따라 짧게는 30cm에서 길게는 3m까지도 자람. 꽃의 크기는 역시 종에 따라 지름이 작은 것은 5cm 정도이며 큰 것은 20cm 이상인 것도 있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 원추천인국(Rudbeckia bicolor), 모식종인 원추천인국(Rudbeckia hirta), 삼잎국화(Rudbeckia laciniata) 등이 있음.
한 가득 짐을 우겨넣은 더플백을 맨 우리는 조심스럽게 60트럭에서 내렸다. 텅 빈 작은 연병장에 사람의 기척은 온데간데 없고, 심드렁한 부사관이 서류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나왔다.
"야 너네 운좋다. 지금 너네 부대가 훈련중이래. 다음주 월요일에 올라간다."
영문을 모르는 7명의 훈련병, 군모엔 계급장조차 붙이지 못한 우리는 긴장한 눈빛을 서로에게 주고 받고 다음 지시를 기다릴 뿐이었다. 부사관은 손짓을 하며 우릴 눈 앞에 보이는 다른 건물 안, 커다란 내무실로 데려갔다.
"들어가. 이따가 와서 인원점검 할거야."
그 말만 남기고 우릴 수송한 부사관은 휙 나가버렸다. 잠시 뒤에 60트럭이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굉음을 남기고 멀리 떠나가버렸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그리고 서로를 알게 된 지 한시간도 지나지 않은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그대로 통성명을 하며 눈치를 살폈다. 오십명은 족히 침상에 누울 수 있는 막사는 터무니없이 낡은 관물대로 채워져있었고 저 멀리 두명의 병사가, 한명은 누워서 잠을 청하고 다른 한명은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내내 방치되어있다가 저녁시간이 되자 "야 밥먹어."라며 내무실에 얼굴을 들이민 다른 부사관으로부터 대강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그야말로 대강.
"지금 2대대 전체가 대대급 훈련중이야. 월요일에 올라가니까 그때까지 저기 가서 밥 챙겨먹어."
"저, 그럼 저희 뭐하면 됩니까?"
"뭐? 뭘 해 아무것도 안하는 거지."
날렵한 체구의 안경잡이는 그 말을 툭 뱉고 다시 휙 사라졌다. 잠시 뒤에 각각의 계급장을 붙인 몇 무리의 병사들이 다시 내무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빛밥을 호되게 얻어먹고 다시 내무실로 돌아온 우리는 그때서야 정확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연대. 우리가 배치된 대대로 이동하기 전에 머무는 상급부대로, 지금 부대가 대대급 훈련중이라 못들어가는 거라면 여기서 대기하면서 놀면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의 입장에서야 "야 신병도 아닌 갓 퇴소한 훈련병들이 꿀빠네."라고 말할법하지만 당시, 훈련소를 퇴소하고 치솟던 자존감이 다시 지하실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우리 부대에 가서 신병 받아라도 하고, 선임들에게 갈굼도 당하고 할 것이라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연대에 툭 떨어져 아무것도 못하는 일주일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공간은 휘하 수천명의 병사를 관리하는 연대였고 우리만 쓰는 내무실도 아니었다. 저녁시간 약 20명의 병사들이 내무실을 채웠고, 우리를 "아저씨"라 부르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우리는 내내 찌그러져 있었다. 더욱이 공포스러운 것은 저녁식사 전 삐죽 얼굴을 내민 그 부사관이 악마였다는 것이다. 우린 당직사관이었던 그 부사관이 우릴 존재조차 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 병장들을 아주 쥐 잡듯이 잡아서 혼을 빼놓는 광경을 사시나무 떨듯 지켜봐야했고, 그렇게 남은 일주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날 쉽게 침상에 누워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공용숙소인 그 내무실의 침구는 최악이라고 할만했으며, 그나마 쓰임새가 있는 침낭은 다른 병사들이 모두 가져가버려 우린 땟국물이 잔뜩 낀 침낭들애 몸을 묻어야 했다.
그 일주일에 유일하게 오로지 루드베키아만이 내겐 구원이었다. 7월 첫째주의 장마는 지리하게 이어졌다. 공용숙소엔 책 한권 없고, TV는 화질이 극도로 좋지 않고 공중파만 겨우 나왔다. 2005년에도 군대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7명은 장기 밖에는 둘 것이 없었다. 그것은 그나마 다른 병사들이 손을 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병사들은 모두 하루만 그곳에서 자고 나갔기 떄문에 우리에게 간섭이라고 할 건 없지만, TV에 익숙한 그들과 TV에 낯선 우리의 공간은 그렇게 나뉘었다. 나는 장기 같은 잡기에 능하지 못해 거푸 몇판 지고 나면 다시 멍 때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한 친구는 파리를 손으로 잡는 것으로 그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 어느날 아침 식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눈에 들어온 샛노랗고 커다란 꽃. 성인 남자의 주먹크기 정도의 사이즈에 해바라기꽃과 국화꽃의 중간모양. 그리고 검은 꽃술과 노란 꽃잎의 대비가 생전 처음보는 강건한 모습이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들어간 다음에도 한참 꽃을 보다 들어갔다. 그때부터 내 일과의 유일한 즐거움이 그 꽃을 보는 것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 노란꽃은 정말이지 너무나 강인해서 매일같이 퍼붓는 장맛비에도 시들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여름인 나의 생일이 조금 지나 발견한 강인하고, 그래서 아리따웠던 꽃. 밤새 비가 퍼부었어도 다음날 아침 밥을 먹기 위해 연병장으로 나서면 어김없이 그 꽃들은 그 당당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습게도 연병장 곳곳에서 발견한 그 꽃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마치 제각각 돌연변이인 양. 그러나 나는 그래서 더 좋았다. 너 이녀석, 품종개량 같은 게 되지 않은 야생초구나. 실제로, 어떤 노란 꽃은 꽃잎이 10개남짓, 어떤 노란꽃은 20개가 넘는 꽃잎에 꽃술의 검은색이 꽃잎 뿌리까지 번져있었다. 그뿐인가. 어떤 꽃은 꽃대가 높이 치솟고 어떤 꽃은 옆으로 누워 모두 각기 뻔뻔히 피어 있다. 그런 꽃들이 화단 이곳저곳에 펼쳐져있었다.
나는 아침에 그 노란꽃을 보고 우울함을 떨쳐내고, 남은 2년의 시간을 긍정할 수 있었다. 100일 휴가가 나올 때까지, 혹은 그 한참 뒤에까지 그 꽃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결국 월요일이 되어 자대에 배치가 되었고, 나의 군생활은 그 악독한 이빨을 곧 드러내지만, 루드베키아, 그 꽃만은 그 힘든 시간을 내내 견디게 해주는 여름의 찬란한 빛과 같았다. 언젠가,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어 나중이 되어서야 꽃의 이름을 알았다. 그리고 여름이 될 때마다 나는 너를 보며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희망과 기쁨을 느낀다. 여름의, 가장 찬란하고 강인한 기쁨의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