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Nov 23. 2019

공차 엔딩

칼로리인가 소확행인가

"그거 칼로리 꽤 높지?"


- 때로, 인생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뒤집어지곤 한다. 미국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과의 짧은 대화에, 나는 뜻한 바 없이 공차를 단념했다.


 공차, 라기보단 버블티를 즐기게 된 것은 올해 2월부터다. 바깥양반과 다녀온 3박 4일의 상하이 여행. 여행책자에서는 상하이에서 즐길거리로 버블티 몇 가지 브랜드를 소개했고 원래부터 카페 다니는 것을 워낙 즐기는 바깥양반과 나는 상해거리를 다니며 눈에 들어오는대로 버블티를 사 마셨다. 향신료를 극도로 싫어하는 바깥양반의 취향 덕에 아침과 점심은 간단히 먹는 일정이었고, 대신에 테이크아웃 티 카페는 곳곳에 늘어서 있어서 우리는 바깥양반의 어설픈 영어와 나의 어설픈 중국어를 합쳐서 상해의 유명하다는 티를 두루 맛봤다.

 

"원 카라멜 티 앤 원 그린티 플리즈"

"삥더 완더?"

"삥더 삥더 샤오삥"


 우리나라와 가격 차이가 크지도 않은 것이 한 잔에 2500원이나 했을까. 그러나 버블티를 잘 먹지 않고 살던 터라 상하이에서 내내 컵을 들고 다닌 시간들이 너무나 즐거웠고, 여행 이후에도 이따금 바깥양반과 "아 상하이 또 가고 싶네-"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또 어느날, 대략 9월쯤.


"오빠, 경아 언니는 요즘 매일 공차 배달해서 먹는대. 우리도 한번 시켜보자."

"배달 시켜서 먹자고 버블티를?"


 바깥양반의 처음 이 말에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애초에 내가 차 덕후인 터라 집에 녹차, 홍차, 민트티에 원두까지 아무거나 집히는대로 차를 마시고 살고, 반면에 바깥양반은 저녁에 차 마시면 숙면에 방해된다며 집에서 딱히 차를 마시거나 하진 않기 때문이다. 바깥양반이 친구들과 모임으로 (언제나처럼) 주말에 외출을 하고 들어와, 내게 버블티를 마시자며 제안을 한 것이다. 상하이에서 신나게 버블티를 마시고 돌아왔지만 한동안은 나도 바깥양반도 잊고 살았다. 게다가 차라면 학교에서도 하루에 5샷 정도씩은 내려마시는 터라, 공차든 버블티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 게다가. 밥도 생전 배달 안시켜먹는 우리 집에 가암히 차를 배달한다고?


"아니 뭐 나도 좋긴 한데 배달비가 얼마?"

"공차 두개 시키고 배달비 2500원이라는데?"

"흐음...."


 나는 배달앱을 켜 공차를 검색했고, 안타깝게도 우리집은 공차 지점과 다소 떨어진 터라 추가 배달비가 나온다는 걸 확인했다.


"안되겠다. 내가 사올게."

"오우 멋진 남자."

"뭐 마실 거야?"

"난 타로밀크티."


 집에서 나와 차로 10분이나 떨어진 공차 지점에서 버블티를 테이크아웃 했다. 씹는 식감을 좋아해서 타피오카 펄을 추가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사이즈만 점보로 택하는 것으로 스스로 타협했다. 차가 서빙되는 시간과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 집에 올라가기까지 얼추 40분 정도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러나, 그럴 가치가 있을만치 맛이 있다. 호로록 호로록 바깥양반과 나란히 앉아 마시며 티비를 보는 이 시간은, 확실히 소확행이다.


 그 이후 바깥양반과 나는 수시로 공차를 마셨다. 바깥양반은 타로, 나는 블랙. 추석 때 새벽에 KTX역에서도 차를 타기 직전 공차. 퇴근길에 번갈아 공차. 바깥양반의 외출귀가길에도 공차. 나의 야근 후 퇴근에도 공차. 너무 달아 나는 당도를 30프로로 줄였고 바깥양반은 고구마맛이랑 비슷한 그 맛이 무엇이 좋은지 타로. 자주 가는 극장 건물 1층에 작은 버블티 가게가 생겼길래, 방금 저녁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라미수 밀크티라는 게 있길래 시켜본 일도 있다. 칼로리가 어마어마할 거란 생각은 했었지만.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번씩 같이 앉아 버블티 마시는 재미가 있었지만. 이 주 전, 미국에서 잠시 쉬러 온 동창과의 만남. 친구는 임신을 앞두고 건강관리를 하고 있던 참이다. 나도 다이어트로 한달 새 8키로 정도를 감량한 참이었고. 같이 찜질방을 가 식혜를 마시며 아무 생각없이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식혜 한잔 더 안해? 이건 내가 살게."

"아냐 괜찮아 이따가."

"요즘 나는 와이프랑 공차 맨날 마셔 집에서."

"허어? 그거 칼로리 꽤 높지?"


아무렇지 않게, 훅.


"그-렇지?"

"야 나도 살 안빠져서 고민이다."


 그 순간 나는 공차를 단념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버블티 칼로리를 검색했고, 즉시 바깥양반에게 카톡을 보냈다.


- 바깥양반. 슬픈 소식이야.

- 왜 뭐?

- 공차 안녕

- 응?

- 공차 한잔에 공기밥 두개래

- 헐

- 안녕하자

- 안돼!!!!


 그랬다.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해 온 사실. 타피오카는 순 탄수화물이고, 따듯한 음료보다도 찬 음료에는 설탕이 배는 들어간다. 우리가 수시로 사 마시던 공차는 내가 헬스장에 가서 신나게 두시간 동안 뺸 땀을 보충하고도 남는 칼로리덩어리였고,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점심마다 씹어먹은 (명절 때 아빠가 받아오셔서 내게 넘긴)사과의 곱절은 넘는 칼로리 덩어리였던 것.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외면해 왔고, 그 댓가 역시 애써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아주 짤막한 대화에, 사소한 단어 단 하나에. 그렇게 나의 소확행은 더 이상 행복으로 내게 인식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참아야 할 떄인 것은, 맞다. 바깥양반은 딱히 살쪄본 일이 없이 살았지만 이제 건강관리를 해야 할 나이인 데다가 심각한 운동부족이고, 나는 어릴 때 비만으로 고생했고 20키로 감량을 세번이나 해 본 경험에...지금도 결혼 후 잔뜩 부푼 몸을 하루하루 힘들여 줄여나가고 있다. 매일의 행복을 위한 땀 한방울을 달디 단 설탕의 유혹에, 탄수화물의 마력에 빼앗기는 것은 글쎄, 음...아직은 하고 싶지 않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안일함이다. 나는 단호히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 우리 잘 해내자 바깥양반 그동안 공차 즐거웠어.

- ㅜㅜㅜㅜㅜㅜㅜ 아니야 사실이 아닐 거야


 이틀 전,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가 종방을 맞이했고, 나는 모처럼 바깥양반이 홀딱 빠진 그 드라마의 피날레를 바깥양반과 함께 즐기기 위해 오랜만에 공차를 사왔다. 나란히 앉아 호로록 거리며 공차를 마시고, 드라마가 아직 한창일 때 빈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 드라마도 결말을 맞이했다. 해피엔딩이다.


공차, 안녕. 이것은 너와 우리의 해피엔딩일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