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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9. 2023

50년 경력 중식 달인의 어느 작은 짬뽕집

한림 그시절 그짬뽕

"잘먹었습니다. 계산은-..."

"오빠가 해."

"어? 나 이거 만질 줄 모르는데."


 점심시간, 하루 단 네시간 열리는 바쁜 짬뽕집에서는 손님들이 손수 카드결재까지 하고 가는 모습을, 밖에 서서 대기하면서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은 손수 그릇을 정리해 반납까지 하고, 카드결재까지 알아서 하고 갔다. 우리도, 사장님 내외께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내내 주방과 홀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카드결재까지 시도해보려 했으나 기계를 만질 줄 모르니 실패. 이내 오너쉐프인 사장님께서 웃으며 오셔서 묻는다.


"안돼요?"

"네 할 줄 몰라서."

"가만보자 얼마죠?"

"고추짬뽕이랑 간짬뽕에 공깃밥, 21000원이요."

"네에-."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사장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70대는 훌쩍 넘겼을 주름 가득한 피부. 50년 경력이 이해가 되는 연배에 눈이 유난히도 크고 투명한 인상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70대 노인의 크고 투명한 눈이라니. 그러나, 그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공깃밥은 받지 마요."


 이미 21000원을 카드기에 찍고 있는데 뒤에서 여사장님의 말씀. 하릴없이 그대로 전표엔, 21000원이 찍혀나온다만 천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잘 먹었다. 잘 먹었고...


"사장님 너무 궁금해서요."

"네에?"


 바쁘신 양반을 붙들고, 나는 카드와 영수증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새우가 칵테일이 아니던데요? 어떤 거 쓰시는 거예요?"

"한림 딱새우."

"아아!"


 역시, 그럼 그렇지.



 그 시절 그 짬뽕이라는 식당은, 우리가 제주도에 와서 일주일이 안되었을 때, 저녁거리를 먹으로 갔다가 허탕을 치고 나서 내가 숙소 주변의 식당들을 모조리 훑어본 끝에 발견한 곳이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고 한림항 중앙상가에 작게 박힌 집이라 아직 여행객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지도 앱에서 식당 아이콘이 뜨는 것마다 하나하나 눌러보며 식당들을 스캔했는데, 글쎄 이곳이 눈에 확 들어왔다. 별점은 5점 만점, 블로그 리뷰는 27개. 그런데 리뷰를 살펴보니 심상치가 않은 것이, 건강 관리 차 은퇴한 달인 급 쉐프가 하루에 네시간만 운영하는 곳이다. 게다가 리뷰들도 광고 느낌이란 전혀 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건, 그 리뷰들에 사장님께서 일일이 답변까지 달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리뷰에 답글을 달아주는 사장님이라니?


 마침 메뉴도 아내가 좋아하는 간짬뽕이었기에 나는 여행 초반부터 이곳을 점찍어두고 언제고 방문하자고 몇차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기 이틀 전 토요일, 아침을 차려먹고 산책까지 마친 뒤에, 드디어 방문. 한림항은 오가는 배와 차량들로 언제나처럼 분주했고, 보슬비는 완연한 봄이다. 한산하기만한 한림항 상가를 밖에서 훑어보면서, 공실이 많은 통로를 지나니 마치 등대처럼 노오란 간판이 톡 하고 튀어나와 있다.


 저곳이구나, 하고 가니 20명 규모의 홀이 꽉 차 있다. 에헤라 이런. 우리는 10분 가량 밖에 서서 가게 안을 구경해야 했다. 손님들 중에는 아이를 낀 일행이 많았다. 아내와 나는 저 집은 로컬이다, 여행객이다 라며 옥신각신 싸웠다. 

 메뉴는 딱 여섯개다. 탕수육 따위는 없고 사장님께서 오랫동안 다룬 메뉴들이라고 한다. 메뉴판 맨 오른편에는 사장님의 이력과 가게 영업방침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옮기면 이렇다.


"주문 즉시 고추기름을 내어 요리를 시작합니다. 간혹 고추가 탔을 수 있으니 빼 드시면 됩니다. 미리 끓여두지 않으며 제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빠, 제품이 뭐야?"

"아. 육수나 해물이나 다 식자재마트에서 묶음으로 파는 것들."

"그게 왜?"

"요즘 중국집들 다 제품 사다가 끓이기만 하는데 많잖아."

"아아."


 우리는 함께 내용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삼선짬뽕은 고추와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맵지 않습니다."


"애기 먹일 거면 삼선짬뽕 시켜도 되겠는데? 백짬뽕이니까."

"아냐 제대로 된 거 먹어. 난 간짬뽕 먹을래."

"애기는?"

"애기는 계란국 달라고 하자."

"음...그럼 난 고추짬뽕 먹어야겠다. 얼큰한 거 먹어야지."


 백짬뽕이 따로 있는 것도, 사장님의 경력을 말해주는듯. 원래 청요리집에서 먹던 우동이 지금 말하는 백짬뽕이렷다. 거기에 전분을 더하면 울면이 되고. 옛날엔 지금처럼 붉은 짬뽕이 아니라 맑은 백짬뽕, 다시 말해 우동이 대세였다는데, 볽고 매워진 한식의 트렌드에서 짬뽕의 변화가 대표적이라고 할만하다. 나도, 원래대로라면 굳이 백짬뽕 먹는 성깔이지만은, 익숙한 붉은 짬뽕에서 사장님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 고추짬뽕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저, 사장님 경력을 읽었다.


"1973년...와 50년 경력이시네. 그리고 만강홍이 리뷰에 있었어. 거기가 좀 큰 데인가봐."


 검색해보니 그 이름이 여럿 나온다. 1980년대에도 존재했던 중국집이라면, 이름을 딴 비슷한 중국집이 여럿 있을만도 하다. 그래서 어느식당인지는 정확하 알지 못하나, 사장님의 대표 음식이라는 간짬뽕 사진은 하나 찾을 수 있었다. 


 본래, 우리가 먹어 온 간짬뽕은 경기 북부권에 있는 신간짬뽕이라는 집이다. 누나가 좋아하는 곳이라서 가족식사 때 몇번 먹어보고 우리도 나름, 그 매운맛에 마니아가 됐다. 원래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내도 그곳 음식은 일부러 찾아서라도 먹는다. 신간짬뽕의 경우 고추기름에 아주 면이 범벅이 되어 나오는데, 짬뽕의 구색은 홍합과 오징어 정도라, 사실 그 맵단짠이 아니면 잘 만든 음식이라고 말하기엔 한계가 있다. 단지 불맛이 끝내준다. 맵단짠한 소스와 어울려 환상적인 중독성을 자랑한다. 


 그에 비하여 그 시절 그 짬뽕의 간짬뽕은 불맛 나게 볶아서 면을 고추기름으로 코팅을 한 것이 아닌, 면 따로 소스 따로 낸 간짜장 비슷한 스타일. 


 음식이 나왔다. 왼팔로 아이를 보는 중이므로, 우선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점 떠먹는다.

"음. 맛있어."


 국물의 밸런스가 놀랍다. 짜지 않고 바다향도 과하지 않으면서, 육수의 감칠맛이 딱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얼큰한 국물이 채소와 고기, 해물에서 우러나와 잘 어우러진다. 안그래도 일단 접시를 받아보고는, 애호박이며 목이버섯이며 표고버섯이 죽순이 올라간 것이 그 수준을 알만하다. 과하지 않고 부족함도 전혀 없는 황금비의 짬뽕맛.

"뭐야 면도 다르네."


 게다가 면을 먹어보니 마치 수분이 더 들어간듯, 푹 삶아진듯, 부드럽고 부들부들한 국수와 같은 면발이다. 이게 뭐지? 싶다가도 한입 더 먹어보니 딱, 기계로 뽑은 면이 아니라 수타면인 것을 알겠다. 


 아니 수타면이라니, 하루 네시간 장사하시면서 두분이서 정신없이 바쁘실 텐데 수타면 뽑을 시간이 난다고? 기계에 맡기면 수월할 텐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 면의 굵기는 균일한 것이 꼭 수타로 낸 것은 아닌듯도 하고, 그런데 정말로 이 면은 다른 데에서 맛보기 힘든 국수와 같은 식감이다. 야 만원에 설마 진짜로 수타면을 내신건지 아닌지는, 설마 기계를 안썼다고는 믿기 어렵지만, 이런 면을 또 먹어보네.


 짬뽕을 먹는 내내 놀라움이 교차해간다. 짬뽕처럼 흔한 음식, 자주 먹는 음식도 드물다. 직장 근처에도 괜찮은 짬뽕집들이 여럿 있어서, 땡기는 날마다 어느 식당을 갈지 골라먹을 지경이다. 그런데 어느새 짜고 진한 닭육수가 표준이 되고 해산물의 퀄리티도 상향평준화되어 있어서 맛 자체에서 새로움, 놀라움을 주는 곳은 드물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고작 만원에 애호박, 목이, 죽순, 배추, 표고에...해산물만 해도,


 아 뭐야 이거. 새우 뭐야 이거.


 가장 놀라운 건 새우가 칵테일 새우가 아니다. 벗겨먹기 어렵게 통으로 넣은 흰다리 새우도 아니다. 일일이 까서 넣은 흔적이 생생한 작은 새우다. 


"뭐야 새우 왜 이래. 오징어도 왜 이래."

"응?"

"아니, 칵테일 새우가 아니잖아. 오징어도. 왕오징어 아냐 이거 다 여기꺼 쓰시나봐."


 대체, 이런 정성으로 어떻게 노년을 보내고 계신지.


 일반적인 가게에서라면 만원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성이다. 한마디로, 은퇴한 달인이 소일거리 삼아, 손님맞이가 좋아서 연 가게처럼 보인다. 이윤 따위 생각하지 않고 맛으로만 사람을 맞는다. 나중에 사장님께 여쭤보고 확인한, 딱새우가 그릇마다 열마리 가량은 들어가 있다. 


 아니 이걸, 딱새우 짬뽕이라고 이름만 바꿔도 여행객들이 두배는 올 텐데. 


 물론 그럼 가게를 오래 찾은 단골들은 무척 싫어하겠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짜장과 짬뽕을 나눠먹고는 손수 그릇도 치우고 카드도 찍고 가는. 그 와중에 계란국도 한꺼번에 안만들고 그때 그때 조금만 내시는지, 아이의 공깃밥을 받은 뒤 계란국을 청하니 작은 냄비그릇에서 조금 덜어 내주신다. 


 즉, 정말로 그 시절 그 짬뽕. 면도, 요즘 많이 쓰는 면강화제를 넣어 탱글 쫄깃하게 만들지 않고, 국물도, 짬뽕의 원형인 백짬뽕을 유지하고 계시고, 요리도, 배달음식이 되면서 하향평준화된 짬뽕이 아니라 고명과 재료만 열가지가 넘는, 진짜 진짜 옛날 그 짬뽕. 근데 그게, 50년 경력 달인의 요리인데, 딱 만원.


 간짬뽕을 빼앗아먹어보니 생각했던 신간짬뽕과는 역시 확 다르다. 매운 울면이랄까, 소스에 자작하게 버부려서 먹는데 면에 물기가 살아있어, 볶음짬뽕으로 먹기보단 말 그대로 '마른' 짬뽕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맵지도 않다. 고추기름의 알싸함만 느껴지는 부드러운 맛에, 역시 호화로운 고명이다. 냉동으로 생각되지만 굳이 굴까지 넣어서 맛을 꽉 채워주시는 이 달인의 고집.


 하루에 딱 네시간만 장사를 하시지만, 그래도 내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곳이라 그 와중에도 두분은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이신다. 이미 70대에 접어든 사장님의 건강이 계속 잘 유지되기만을 바라게 된다. 사장님꼐서 두번째로 은퇴를 하시게 되면 이 짬뽕의 맛을 다시는 보기 어려울 텐데, 누가 배워서 가게를 잇는다 한들, 만원에 이 맛을 어찌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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