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걱정을 잘라내자.
여기는 제주. 엊그제 수요일 도착해서, 오늘은 금요일 새벽.
바람이 창문을 뒤흔드는 소리에 새벽 3시에 깼다.
바닷가에 위치한 호텔의 11층 꼭대기 객실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고, 그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3시가 안 되었다. 점점더 창문이 덜컹덜컹 많이 흔들리자 오늘 오후 2시경에 가기로 되어 있는 서울행 비행기가 결항이 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기 예보를 보니 바람이 점점 심해져서 오후 12시 - 2시경에 최대 풍속이 15m/s 이상으로 가장 바람이 심한 피크 시간이었다.
비행기가 결항이 될까 걱정이 되어서 그나마 바람이 좀 잠잠한 아침 시간에는 괜찮을까 싶어서 첫 비행기 표를 검색해 보니 자리가 있었다. 원래 있었던 오후 2시 표를 아침 첫 비행기 7시 표로 땡길까 고민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7시 표도 샀다.
새벽 3시에 깨서 5시 넘도록 비행기 항공사 사이트, 공항 사이트, 항공기상청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면서 결항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결항 정보를 찾고자 하였으나 어디에도 뜨지 않았고, 5시 반경쯤 되자 수속 중이라고 하는 사인을 제주 공항 사이트에서 발견을 해서 아 이제 수속 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왔다. 바로 택시를 불러서 10분 만에 올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수속이 열리지도 않았다. 7시 비행기였고 5시 55분쯤 도착했는데 조금 있다가 6시 경에 수속이 열렸다.
그런데 택시를 타러 밖으로 나와 보고 많이 놀랐다.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다.
11층 호텔 객실에서 덜컹덜컹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결항이 될까 너무너무 걱정이 되고 불안하여서 결국은 새벽 첫 비행기로 이렇게 오게 되면서 막상 밖을 나와 보니 그렇게 바람이 많이 불지 않고 세상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나의 걱정병, 불안병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사실 오늘 서울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 스케줄은 없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결항이 되면 공항에서 기다릴까, 시간 죽이면서 기다릴까 이러한 것들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게 너무 싫었고, 그래서 차라리 일찍 가는 게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게 되면서 결국 나를 새벽 첫 비행기를 타도록 공항으로 오게 한 것이다.
첫 비행기를 결국 타게 되면서도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게 아니라 이렇게 출장 스케줄을 바꾼 거에 대한, 뒤에 귀찮은 서류 수속이 불편하게 생각이 되었지만 그 역시 조금 불편할 뿐이지 충분히 할 수 있는 범위인데도 그게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고 불안하게 느껴지고 걱정이 되는 거다.
원래 내가 이렇게 많이 걱정을 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최근 들어서 더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번만이라도 밖에 나와서 실제 거리를 한번 봤더라면 바람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그렇다면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았을 텐데..
11층 호텔 객실에 갇혀서 덜컹덜컹 거리는 창문 소리에만 의존해서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고, 불안이 폭발해 결국은 비행기표를 바꿔서 첫 비행기를 타게 한 거다.
인생이 비슷한 것 같아서, 아주 작은 것에 꽂혀서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와 같은 것에 꽂혀서 불안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러나 막상 부딪혀 보면 거리로 나와 보면 생각보다 바람이 그닥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그리고 설사 혹여 그렇게 불안하여서 어떠한 결정을 내렸다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그걸 믿고 그냥 가면은 된다.
한 번 결정한 것에 대해서 믿으면 되는데 그거에 대해서 계속 불안해하고 또 다른 선택지가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계속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습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막상 부딪혀 보면 별게 아닐 수도 있고, 일단 한번 해보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 결정한 것에 대해서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사소한 문제들이라면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해결해 가면 된다.
불안해한다고 달라지지 않고 걱정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이 되더라도 막상 부딪혀 보면 별거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살짝 부딪혀 보는 것이 더 낫다. 그러고 나서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왜 밖에 나와 볼 생각을 못했을까? 11층 객실에 갇혀서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에만 불안해 했을까? 왜 떠날 생각만 했을까? 내가 지금도 하루하루의 삶을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든다. (여기서 또 걱정을 한다. 진짜 웃긴다. )
오늘 하루 예상치 못한 하루이지만, 이왕 서울에 일찍 가기로 한 거 걱정하지 말고 그냥 담담히 할 일을 하자.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크게 문제가 생길 것도 없다.
그냥 담담히 오늘 할 일을 하자. 그게 나의 하루를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