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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Mar 10. 2023

#23 마담 카렌에게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마담 카렌에게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안 해본 일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시작하면서도 잠시 고개를 들고 멍해졌습니다.

10대 무렵 당신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텔레비전으로 보고 난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과 텐트, 횃불, 데크, 음악, 원주민, 사자, 커피 이런 이미지만을 머릿속에 간직한 채 어른이 되었지요.


사실 당신을 대신한 메릴 스트립과 당신의 연인 데니스 핀치해턴을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에 반한 이유가 더  컸을 테지만 어른이 된 후 당신의 이야기가 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 이야기였음이 나를 무척 흥분시켰지요.


커피 농장의 안주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나는 당신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나의 일처럼 생생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때로 히죽거리며 당신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식민지로 찾아온 다수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과 나 같은 사람들이  미얀마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커피농장을 개간한 당신이 우위에 선 유럽인의 눈이 아닌 초원과 숲의 거주자들에 대한 기록한 것이고 나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미얀마에서 시작된 것일 뿐 커피농장이 갖추어야 할 여러 생태적 요소와 환경적인 특성에 공통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어 당신의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당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하게 된 셈이지요.


사실 영화는 당신과 데니스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당신이 기록한 원작소설은 100년 전 케냐의 커피에 대해 그리고 아프리카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애정과 비중을 두고 있어서 가끔 데크에 앉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덴마크에서 혹은 유럽에서 기회를 찾아온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죄다 성공을 준 것은 아니라는 것과 농부가 되는 일이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기다리는 일이라 호코농장,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황무지가 과연 커피가 자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도전 속에 절망적일 때,   당신이  갈색 머리를 흩날리며 나의 곁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막연히 위로받은 그런 시간도 있었지요.


마담 카렌!

당신이 살았던 케냐나 내가 있는 미얀마 호코마을도 고산지대이다 보니 당신이 책 속에서 묘사한 그 풍경이 너무도 일치해서 깜짝 놀라곤 했답니다.


카렌 블릭센  장편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 표지 

새벽공기 속에 있으면 그 차가움과 신선함이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하여 때때로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고 검은 물속에서 , 바다 밑바닥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는 당신의 표현대로 고산지대 농장의 일교차는 엄청 커서 건기의 아침에는 발이 시리고 목을 움츠리게 될 만큼  차가운 공기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더디게 합니다. 


난방을 하지 않는 아열대 가옥에서는 입김이 나오는 아침을 맞이해야 하므로 뜨거운 커피로 몸을 녹여야 합니다. 


하지만  한낮의 태양은 살을 익힐 정도로 맹렬해서 햇빛에 서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땀은 금방 셔츠를 적시지만 해가 지면 다시 겸손하게 옷깃을 여미게 되는 얼굴을 가진 묘한 날씨. 


또한 당신의 아프리카처럼 내가 일하는 미얀마에도 다양한 민족이 존재합니다. 


버마족, 샨족, 카친족, 카렌족, 몬족,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종족들 사이에서 존재한 역사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 음울한 분위기가 존재하며 적대감으로 표현되기도 했다고 말한 것처럼 미얀마도 그런 측면이 존재합니다. 


유럽인이지만  아프리카의 다양한 종족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온 당신에게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처음 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사무실 겸 숙소를 임대하기 위해 여러 집을 구경했는데 인도인에게는 세를 주지 않겠다고 하는 집주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일행 중에는 인도계 미얀마인 직원이 있었는데 그 집주인의 흥분된 목소리에 슬금슬금 뒤로 몸을 숨기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불교도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는 것,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시대 때 영국인들과 함께 온 인도인과 방글라데시인들에 대한 갈등의 골도 아주 깊은 편입니다.


나의 모국인   한국은 분단 이데올로기와 정치권이 주도한 아주 못된 영호남 대립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갈등이 존재합니다. 전쟁을 겪은 지 70여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남과 북은 종북, 빨갱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좁은 국토를 갈라 으르렁거리는 미개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도 있습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폭력이 언제쯤 잦아들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농장을 조성한 미얀마 샨주 호코마을은 지리적으로도 유사하지만 당신이 살던 아프리카의 여러 종족들처럼 이곳은 여러 민족들이 존재합니다.


키쿠유족, 소말리아족, 와캄바족, 카비론도족 등 아프리카 여러 종족이 살던 케냐에서처럼 버마족, 샨족, 인도인, 중국인, 몬족, 카렌족, 카야족 등 다양한 민족이 사는 미얀마도  크고 작은 분쟁들이 존재해 왔고 농장이 있는 샨주에서 숫적으로 가장 많은 샨족은 평화협정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반군이 있어 가끔씩 정부군과 충돌을 하기도 합니다.


농장을 조성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샨반군이 마을 곳곳에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중국인이 운영하는 대추농장에 샨반군이 들어와 매니저를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어떤 농장에는 불을 질렀다는 소문도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샨반군의 방문을 받았고 농장에 사는 어린 직원들은 무서움에 덜덜 떨며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너희가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니 돈을 내라는 요구였지요.


그리고 그들은 영수증을 적어주며 호의를 베풀어주었는데 그 영수증에는 shan state army라는 직인이 찍혀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면제라는 호의를 베풀어 주었지요.


어느 때는 마을 절에 정부군이 주둔하고 어느 때에는 샨 반군이 주둔했습니다.

우리가 미얀마의 민감한 정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않아서 나는 만나는 미얀마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물어보기 전에는 절대 자신의 의견을 꺼내놓지 않는다는 것에 처음에는 매우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차차 알게 되었죠. 우리 한국처럼 미얀마가 겪은 군부의 탄압과 국민들의 희생과 투쟁에 대해. 

그리고 그 선두에 섰던 미얀마 스님들의 희생과 헌신을.


그래서  마을 절 스님의 결정과 충고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스님의 결정에 그들 모두 순종한다는  점은 분쟁이 아니라  평화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절 마당 가운데에는 보리수나무가 있습니다. 보리수나무 아래 반군도 정부군도 총을 내려놓고 면도를 하고 지나가는 낯선 이방인을 제재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남과 북이 대치상태에 있는 우리 한국의 병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부족 간의 전쟁을 바라본 당신과 나의 시간은 100년이나 흘렀지만 우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며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커피재배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며 길고 지루한 것이어서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일하는 농부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니 비를 기다리고 바람을 잠잠케 하며 태양의 시계를 맞추는 것만큼 농부들의 굵어진 손마디에 경의를 표해야 할 거 같습니다.


당신도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그들의 노고를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살려합니다.

호코 농장의 아침에는 안개가 많습니다. 당신의 농장도 그러했다지요.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 직원들은 일어나 조용히 쌀을 안치고 페야 신이라는 불단에 자신들이 밥을 먹기 전 부처님께 먼저 밥과 깨끗한 물을 올리고 시장에서 사 온 꽃을 꽂습니다. 

아침은 고요하며 소란하지 않습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지 않고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립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어린 자식을 위해, 아픈 스님을 위해 아침마다 기도하는 그들을 볼 때면 나도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때로 외면하고 싶었던 화해하지 못한 나의 과거가 떠오릅니다. 

당신도 고향 덴마크를 생각했겠지요, 마담 카렌.


식은 밥을 볶아 찬 없는 아침을 먹고 농장으로 출근하는 론지 입은 미얀마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따나카꽃을 머리에 꽂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일하러 가는 그들을 봅니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 봅니다. 

해가 지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나의 집을 그리워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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