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추출이 나와 잘 맞을까

by 커피해커 LOE

처음 핸드드립을 해봤던 날이 생각난다. 드리퍼 위에 종이 필터를 얹고, 뜨거운 물을 가느다랗게 부었다. 물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가 좋았다. 그런데 맛을 보고 당황했다. 산미가 너무 강하고, 어딘지 얇고 허전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추출 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맛도 고칠 수 없다는 걸.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다.


브루잉은 사람이 직접 물을 붓거나 침지해 우려내는 방식이다. 핸드드립, 프렌치프레스, 사이폰, 에어로프레스가 여기 속한다. 시간이 걸리는 만큼 향미를 섬세하게 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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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 추출은 압력으로 빠르게 커피를 뽑아낸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대표적이다. 짧은 시간에 농축된 풍미를 만들어낸다.


같은 원두라도 방식이 달라지면 맛이 전혀 달라진다. 그 맛을 결정하는 변수들이 있다.

분쇄도 — 입자 크기가 추출 속도를 결정한다. 곱게 갈수록 물이 천천히 통과한다.

물의 온도 — 90~96℃ 사이가 기본이다. 너무 뜨거우면 쓴맛, 너무 차가우면 맛이 밋밋해진다.

커피와 물의 비율 — 브루잉은 1:15~1:20, 에스프레소는 1:2~1:3이 기준이다.

추출 시간 — 브루잉은 2~4분, 에스프레소는 25~30초다.


이 변수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하나를 바꾸면 나머지도 흔들린다.


추출에서 자주 듣는 두 개념이 있다. 과소추출과 과다추출이다.


과소추출은 성분이 충분히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다. 산미가 강하고 얇게 느껴진다. 내가 처음 핸드드립에서 경험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과다추출은 반대다. 성분이 너무 많이 우러났다. 쓴맛과 텁텁함이 강해지고 산미와 단맛은 줄어든다.


맛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 먼저 이 두 극단 중 어느 쪽인지 판단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어떤 방식이 나에게 맞을까. 기술의 차이보다 내가 원하는 맛이 먼저다.

복잡한 향과 깔끔한 여운을 좋아한다면 — 핸드드립

묵직하고 풍부한 질감을 원한다면 — 프렌치프레스

짧고 진한 맛을 찾는다면 — 에스프레소

다양하게 실험하고 싶다면 — 에어로프레스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니다. 한 방식에 익숙해지면 다른 방식도 시도해보자.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추출은 기록에서 완성된다. 이런 식으로 메모해보자.

원두: 에티오피아 내추럴 / 18g

물 온도: 92℃

비율: 1:16

분쇄도: 중간

추출 시간: 2분 30초

맛 메모: 산미 중심, 뒷맛 깔끔


조건을 조금씩 바꾸고 비교하다 보면 "이 조합에서 이 맛이 좋았다"는 기준이 생긴다. 그게 바로 나만의 추출 기준이다.


커피를 이해하는 데 정답은 없다. 나에게 어울리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그걸 찾아가는 여정이 추출의 진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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