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커피를 위한 나만의 실험

by 커피해커 LOE

완벽한 커피를 처음부터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몇 달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산미가 너무 강하거나, 너무 쓰거나. 어떤 날은 어제보다 확실히 맛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실패를 그냥 버리는 대신 적어놓기 시작했을 때부터 달라졌다.


실패한 커피도 단서다.

산미가 과했다면 과소추출이다. 바디감이 부족했다면 추출이 짧거나 비율이 맞지 않은 것이다. 쓴맛이 강했다면 과다추출이거나 온도가 너무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결과는 내 취향을 알려주는 지도다. 완벽한 커피를 향한 여정은 실패를 해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에만 의존해야 한다. 추출은 기억하기엔 너무 미세한 변수들이 많다. 간단한 노트를 만들

어두자.


기록할 항목은 이것이면 충분하다.

원두 정보: 산지, 가공 방식, 로스팅 포인트

사용한 도구와 추출 방식

도징량, 커피-물 비율, 추출량

분쇄도, 물 온도, 추출 시간

맛의 인상: 산미, 단맛, 쓴맛, 바디감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은가"를 적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록이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변수를 조정할 때는 한 번에 하나씩, 많아도 두 가지까지만 바꾼다.


동시에 여러 변수를 바꾸면 어떤 것이 맛을 바꿨는지 알 수 없다.

실험 예시:

물 온도를 2℃ 높여본다.

추출 시간을 5초 늘려본다.

도징량을 1g 추가해본다.

분쇄도를 한 단계 가늘게 조정한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비율이나 분쇄도를 건드리는 게 효과적이다. 온도와 시간은 미세 조정에 가깝다.


예를 들어 바디감이 높고 단맛이 풍부한 커피를 원하는데 산미가 지나치게 강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시도해볼 수 있다.

물 온도를 약간 높인다.

추출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간다.

분쇄도를 가늘게 조정해 추출 속도를 늦춘다.

도징량을 늘려 농도와 바디감을 강화한다.


단, 추출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한다. 에스프레소에서는 머신의 압력 안정성이 영향을 준다. 브루잉에서는 물줄기의 일관성과 채널링(Channelling) 현상을 주의해야 한다.


채널링이란 커피 베드 안에 고르지 않은 경로가 생겨 물이 일부 구간만 빠르게 통과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일부 성분만 추출되고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무너진다. 맛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 도구나 변수보다 먼저 채널링을 의심해볼 필요도 있다.


챕터4_8_1.png


브루잉과 에스프레소는 사용하는 도구가 다를 뿐, 변수를 다루는 원리는 같다.


에스프레소 추출을 오래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때는 첫 추출 전에 과열된 물을 충분히 빼주어야 한다. 보일러에 남아 있던 물이 과도하게 가열되어 추출 온도를 흔들 수 있다. 장비의 상태를 이해하고 추출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좋은 커피의 시작이다.


추출을 반복하다 보면 기술 이상의 것이 생긴다. 내가 어떤 맛을 원하는가에 대한 감각이 점점 선명해진다.


로스터가 단순히 볶는 기술자가 아니듯, 추출도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생두, 로스팅, 추출 — 이 세 과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더 좋은 커피를 만든다.


내 커피는 내 하루를 닮는다. 내가 좋아하는 향, 원하는 질감, 맞는 온도와 비율. 이 모든 것이 쌓여 결국 나만의 한 잔이 된다. 그 한 잔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 내 하루의 리듬이 된다.


오늘도 실험하자. 실패해도 괜찮다. 그 기록이 결국 나만의 커피 철학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온도, 시간, 압력의 숨겨진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