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VS 완성주의
완벽주의와 완성주의,
우리는 인생을 살 때 어떤 것을 추구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릴 때 <플랜맨>이라는 영화를 봤다.
거기에는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가진 남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은 시간을 철저하게 계획하며 살아간다.
조금이라도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렇게 매일 자신이 설계한 대로 살아가다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게 되는데,
그 여자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이 싫다’며 고백을 거절한다.
주인공은 그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병원을 다니며 자신의 성향을 고쳐 나가기 시작하고,
서서히 변화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의 삶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인생이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살면서 필연적으로 계획한 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험을 마주하고 만다.
나도 그런 경험을 겪기 전까진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래서 계획 짜는 것을 좋아했었다.
‘이 나이엔 이런 일을 할 거고, 이때까지 이룰 거야’ 하며 인생을 설계하려 들었다.
지금껏 내가 생각한 대로 잘 살다가 처음으로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사회 초년생 때 유럽 여행을 위해 퇴사를 참아가며 돈을 모았다.
500만 원, 나에겐 그 금액 이상의 가치였다.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퇴사하고 싶을 때 그 돈은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 돈을 모아 유럽 여행을 가는 것이 20대의 나에겐 전부였을 정도로 절실한 꿈이었다.
매일 잠들기 전 그곳에 있는 나를 상상하며 잠에 들 정도였다.
그렇게 계획한 대로 나는 정해진 날에 퇴사를 했고, 모든 예약을 마쳤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잘 되고 있던 아버지 사업이 한 순간에 상황이 안 좋아졌고,
급작스럽게 정말 큰 액수의 돈이 필요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때 나는 떠나기 2주 전에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코 묻은 돈 500만 원까지 빼앗겨야 했다.
그때 나는 인생에서 큰 상처를 입었고, 처음으로 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속상하고 아팠고,
앞으로의 모든 일에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구나.’
하지만 지금은 그때를 추억했을 때 서툴고 어린아이 같은 내 순수한 모습에 웃음을 짓는다.
모순적으로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이를테면 해외 여행을 갈 때, 비행기가 정해진 시간에 무사히 이륙하는 것.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좋아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기분 좋게 갈 수 있는 것 등.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게 한 번 더 감사함을 표현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마음가짐이 인생을 살아갈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책에서는 ‘인생은 수정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삶을 살아갈 때 정답주의가 아니라 일단 시작하고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계속 좋은 방향으로 수정해 나가는 수정주의에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체로 어떤 일의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실패’ 또는 ‘성공’이라고 정의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길을 가는 것’,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버는 것’ 등을 성공으로 칭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판단들은 완벽함, 정답이라는 압박감을 만들어내어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고, 실패자라고 낙인될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걸작의 작품들은
깊고 어두운 악취 나는 지하방에서 미완성인 채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애초에 ‘완벽함이란 없다’는 쓰라린 현실을 마주하고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할 때, 그때 비로소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다.
어쩌면 완성주의란 완벽주의보다 더 집요하고, 더 외롭고, 더 처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끝이란 게 정해져 있지 않고 집요하게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일, 완벽한 인간, 완벽한 인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 기준도 모호하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의 인생은 더욱 아름답다.
자신의 결핍, 단점들을 바꾸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모든 과정들,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고통, 번뇌, 기쁨과 행복들.
그것들이 모여 그 한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 사람만의 분위기, 빛을 자아내어 본인을 반짝이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을 장기적인 마라톤이라고 생각할 때,
여유롭게 주변 풍경도 보면서 자신의 몸을 살피고,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린다면 지치지 않고, 다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유연함을 배우고 더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