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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별을 소화하는 법

by 세은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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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의견 차이로 다툰 다음 날,
나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하루 종일 연락이 오지 않아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밀려왔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졌다.
그 순간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급히 공중화장실을 찾아 뛰어들어갔다.

사람들이 있을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좁은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울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다섯 문장의 카톡으로 끝나는 현실이 너무 분하고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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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이별들은 비교적 순탄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졌거나,
내가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
그때마다 나는 상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래서 슬픔보다는 오히려 후련함을 느꼈고,
남들이 이별 후유증에 대해 말할 때 공감할 수 없어서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번 이별은 달랐다.


내가 처음 겪어보는 이별의 형태였다.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고, 그를 싫어해서 떠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연애 초반처럼 여전히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선을 다해도 떠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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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부터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분노와 증오가 내 안에 가득했고
꿈속에서도 그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매일 설잠을 자며 깨어났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단 하루도 혼자 있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래서 피곤한 날에도 억지로 밖으로 나가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석하고, 소개팅을 하고, 이성들과의 약속을 잡았다.

나는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너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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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남의 기회가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더 불행해졌다.
매번 만남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음 한 구석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그 안으로 매섭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었다는 것’,
‘그만큼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헛헛하고 공허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너 지금 너무 조급해 보여. 왜 그렇게 급하게 구는 거야?”

그 말을 듣자 나는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매를 맞은 것처럼 마음이 쓰라리고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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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나는 마치 폭식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게 허용된 양을 초과해서 음식을 먹고,
또 그 모습이 싫어서 억지로 구토하지만 다시 먹는 걸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가 너무 더럽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단식이 절실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모임과 약속을 끊어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식했다.
그렇게 비어버린 시간들을 혼자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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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며,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비워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나에게 집중했다.

도중에 울고 싶으면 참지 않고 그 감정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울었다.
슬픔, 원망, 분노, 그리운 감정들이 들 때면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들을 달래주며, 그 감정들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렸다.
한 주, 한 달, 어느덧 두 달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이별을 빨리 소화하는 법’은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다.

그 시간들은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여
나를 더 많이 울리기도 하고,
달라질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해서
더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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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고통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법’,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는 법’,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소화제처럼 내 마음을 치유해 주어 이별을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통은 그 상황이 슬퍼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몰라서 더 아픈 것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막연하게 느껴졌던 고통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별을 소화하는 법을 알려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믿는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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