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맞는다는 것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점점 더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분명히 나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같은 공통사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공통점이 아예 없더라도 함께 대화하면 왠지 모르게 시간이 금방 흘러가고,
함께 있으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최근에 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모임은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어 시작했던 글쓰기에
재미가 붙어 어느새 모임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처음 모임에 참석한 날은 12월의 연말 모임이었다.
그곳으로 가던 열차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주말 낮에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일까?’
내향적인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매번 쉽지 않다.
긴장과 불편한 마음, 그리고 기분 좋은 설렘이 뒤섞여 공존하는 탓이다.
성수동의 한 공간에 도착해 입구로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가볍게 눈을 맞추며 들어서는데,
그 공간에서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분명히 히터에서 나오는 온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그들의 목소리,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에서 다정함과 따뜻함이 묻어났다.
개개인에서 나오는 온기가 서로를 감싸주었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긴장감이 풀리면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날은 연말이라 각자 올해의 기억에 남는 사진들을 공유하고,
그 사연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사람들에게 큰 호기심을 갖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불과 1시간도 채 안 된 이 사람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의 올해 일상은 나와 비슷한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출퇴근을 하고, 좋아하는 동네를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와 선물을 나누는 소소한 일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을까.
이런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이렇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꼈다.
그 후, 우리는 서로에게 익명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이 편지를 이쁘게 꾸미고 있는 순수한 모습을 보며 문득 그들이 더욱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평온함과 안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약 힘든 일이 생긴다면 내가 만나서 위로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이 상처를 덜 받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우리는 익명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상 깊은 문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덧 내 편지를 받은 분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분은 내가 쓴 맨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었다며 말을 꺼냈다.
“세은 님은 처음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만나서 위로를 해주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따뜻한 분이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심지어 가족 앞에서도 절대 울지 않던 내가
주책맞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 부드러운 음성이,
내가 깊숙이 숨겨 놓았던 힘든 감정을 알아차리고 괜찮다며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나를 알아봐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그날 이후, 나는 이 모임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일요일 오전 10시, 매주 우리는 한 공간에 모여 글을 쓰기 위해 만난다.
글을 쓰기 전에는 질문 카드를 뽑아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질문 카드는 가벼운 질문부터 인생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까지 섞여 있다.
랜덤으로 카드를 뽑고, 질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한다.
그들의 경험을 듣고 있으면,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신기하면서도 유쾌하다.
그들의 생각을 듣고 있자면,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가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주어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느낌이 든다.
더불어 그들은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주고, 내 생각을 궁금해하며 질문을 던져준다.
그들은 내 이야기에 오감으로 공감해준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나의 세계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진심 어린 공감은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어릴 땐 몰랐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가까운 친구들, 가족들마저 대화의 감도가 달라짐을 느낀다.
내가 꺼내는 이야기에 완전한 공감을 못하고
이해를 못하는 순간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속마음을 꺼내는 진솔한 대화가 줄어들었고,
얕고 가벼운 대화들이 주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이 맞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확연히 다르다.
주제가 없어도 끊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대화가 이어진다.
서로의 일상, 고민, 가치관 등을 꾸미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주고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 대화의 과정에서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지만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기에
진정한 소통을 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요즘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큰 위로와 안정감을 준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에 삶이 외롭지 않다.
‘세상은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감정을 나누며 서로의 세계를 공유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할 미래는 매우 기대된다.
"오늘도 당신의 세상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