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란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고대 그리스·로마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의미한다. 요즘에는 나의 여러 모습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여러 페르소나를 거쳐왔다. 그때는 페르소나라는 개념조차 몰랐고, 내 안의 다양한 자아들로 인해 종종 혼란스러웠다.
10대 때 나의 페르소나는 개그맨이었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웃게 만드는 게 나의 행복이었다. 나는 개그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자주 쇼를 열었고,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의 흉내를 내며 웃기곤 했다. 또한, <나는 가수다>에서 나오는 가수들을 따라 하며 춤과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을 웃겼다. 그런 행동 덕분에 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친구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다 보니 자신감이 넘쳤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또 다른 페르소나가 만들어졌다. 20대 초반, 나의 페르소나는 지드래곤이었다. 나는 패션에 깊은 관심을 갖고 꾸미는 데 진심이었다. 특이한 옷들을 좋아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자 지드래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는 내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학교에서 내가 가장 스타일리시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내를 활보할 때도 모델처럼 당당하게 걷곤 했다. (덕분에 지금은 많은 흑역사가 생겼지만)
20대 중반, 나는 보수적인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수직적인 조직 구조와 세밀한 절차를 요구하는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동안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왔던 나에게 이 환경은 큰 난관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배우고, 동료들과 소통하는 법, 상사들을 대하는 법, 조직 내 예의를 지키는 법 등을 배워갔다. 그러면서 내게는 새로운 페르소나가 생겼다. 바로 ‘혼놀족’이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해졌고,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점점 지쳐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작은 대화도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그때는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점점 더 내향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예전의 밝고 활발했던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럴수록 내가 친구들을 만날 때 그들은 자주 “너 왜 이렇게 변했어?”라고 묻곤 했다. 그 말은 나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밝고 활기찬 10대의 모습에서 점점 더 어두워지고 과묵해진 내가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왜 예전의 모습이 아닌 지금처럼 변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억지로 텐션을 높였고, 학생 시절처럼 가벼운 말투로 대화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점점 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변한 건 아닐까?” 그 괴리감은 점점 더 커져 갔고, 나는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자주 혼란스러워했다.
이제는 그때의 내가 느꼈던 혼란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 모든 변화는 ‘페르소나’의 일부였다. 알고 보니 페르소나는 단순히 내가 꾸며낸 가면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여러 모습들이었다.
나는 매년 조금씩 다른 자아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다양한 자아들이 드러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들을 웃기고 즐겁게 만드는 개그맨 같은 모습도,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지드래곤 같은 모습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내향적으로 변한 모습도, 사람들을 좋아하다가도 갑자기 싫어지기도 하는 모습도, 차갑다가도 다정해지는 모습까지.
모든 페르소나들이 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습들 모두 나 자신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 덕분에, 이제 나는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매년 새로운 페르소나가 더해지고 있고, 30대, 40대, 6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드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이 공존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모두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부족한 모습도,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결국 나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페르소나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페르소나는 여러 개의 가면이 아니라, 색칠공부처럼 다양한 색들로 채워지는 나만의 그림이다.
밝고 활기찬 노란색, 차가운 검은색, 냉정한 파란색, 차분한 초록색, 열정적인 빨간색 등등. 나는 그 색들로 내 색칠공부를 채워가며, 나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간다.
나의 색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가 없다. 무수히 많은 색들로 채워져 있고, 채워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떤 색들로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