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감정 표현을 참 잘했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기면 몇 번 만나지도,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 너 좋아해”라고 문자로 고백하곤 했다.
당연히 대부분 씹히거나,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자주 차이면서도 매번 고백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고, 내 마음을 꼭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금사빠’였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열 번 고백하면 아홉 번은 차이고, 한 번쯤은 성공하곤 했다.
그렇게 프로 고백러였던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한 복학생 오빠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때마침 나도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터라,
정말 기뻤다.
그리고 그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먼저 고백하지 않아야 연애가 성공하는구나.’
좋아하는 마음을 감춰야 오히려 연애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나는 감정을 숨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표현하고 싶어도 꾹꾹 눌러 참았다.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백을 자주 받게 되었다.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었고,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연애가 시작되고 나서, 내가 상대를 너무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은 결국 나를 떠났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지극해져서일까.
마음이 커질수록 내 위치도 자꾸 변해갔다.
나는 상대가 ‘나’처럼 느껴졌고, 뭐든 다 해주고 싶었다.
시간을 쏟아도 아깝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도와주고 싶었다.
때로는 엄마처럼 빨래도 해주고, 어설프지만 요리도 자주 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지극한 마음은 어느 순간, 상대에겐 지긋한 감정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엄마의 무한하고 지극한 사랑이 당연하게 느껴지다가도, 가끔은 지겨워질 때가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상대를 너무 사랑할수록, 그 사람은 나를 떠났다.
한 번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진심을 자주 표현했겠지만, 그때는 감정을 조절해보기로 했다.
애정 표현을 줄이고, 연락이 닿지 않아도 괜찮은 척했다.
마음을 들킬까 봐 무심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괴롭고 불편했다.
감정을 조절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매 순간 상대를 더 신경 쓰고 있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좋아하는데 덜 좋아하는 척.
이런 연애도 잘될 리 없다는 걸, 그때 또 한번 느꼈다.
솔직한 감정을 숨기는 일은 결국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삶은 늘 모순적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연애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이뤄내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일수록
매번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너무 간절할수록 더 멀어졌다.
오히려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렸다.
30대가 된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너무 좋아하면, 상대가 떠날 수도 있고
너무 간절하면, 오히려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때론 힘을 빼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부턴 힘을 축 빼고 살아보려 한다.
힘을 빼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한 채.
간절함은 내려두고, 원하는 마음만 품은 채.
느슨하지만 유연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려 한다.
어차피 내 것이면 내게 오고,
내 것이 아니라면 애써도 오지 않을 테니까.
그게 사랑이든, 인생이든, 무엇이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