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딸기잼

by 이강


동네 입구 첫 번째 집인 백 교장 사모님 댁 담벼락을 돌자마자 달지근한 냄새가 난다. 혹시나 우리 집에서 나는 냄새일까? 어디선가 맡아 본 낮 익은 냄새가 바람 방향 때문인지 진하게 흐리게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열 발자국쯤 지났을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지났을까 파란색 대문의 두 번째 집 육선생님 댁을 지나자 냄새가 점점 강해진다. 가까이 갈수록 이 냄새가 뭔지 확실해지자 우리 집에서 나길 간절히 바라며 냄새를 따라 살금살금 걷고 있다. 아직은 우리 집이라고 단정 할 수 없다. 동네 아줌마들의 특징이 몰려다니며 한 집에서 보리쌀을 구매하면 단체로 사들이고 포도주를 만들면 우르르 따라 하는 습성이 있어 집집마다 냄새가 비슷하다.


어느 날은 우리 집 불고기 냄새라고 백 퍼센트 확신하고 룰루랄라 춤추며 들어갔다가 아침에 나온 반찬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냄새가 찰떡같이 똑같았는데 뒤늦게 옆집이라는 것을 알고 입에 침만 고이다가 말았다.


대문 앞에 서서 깊이 냄새를 맡아본다. 아는 냄새다. 좋아하는 달달한 냄새. 마당에 들어서니 정원 가득 냄새가 빡빡하다. 엄마가 딸기잼을 만드는 날이다. 커다란 냄비 속에서 푹 푹 방울방울 튀기며 딸기잼이 끓고 있다. 단내와 딸기향이 뒤범벅 공기 중에 두둥두둥 뭉쳐 다니고 머리를 산발한 엄마는 커다란 냄비에 얼굴을 처박고 마당 끝에 쪼그려 앉아 국자를 젖고 있다. 머리 모양을 보니 아침부터 자잘한 못난이 딸기를 씻고 꼭지를 따고 곤로에 석유를 넣고 한참을 씨름한듯하다.'우아우아'책가방을 집어 던지고 박수를 치며 엄마를 위해 한바탕 개다리 춤을 춘다. 빨리 냄비 속을 확인하고 싶어 긴 국자를 빼앗아 들고 엄마가 하던 대로 빙글빙글 젖는다. 동글동글 예쁜 딸기는 온데간데 없고 검붉은 딸기가 끓고 있다. 크다 싶은 덩어리 딸기가 보이면 국자로 건져 입천장이 데지 않게 딸기맛을 봐야 한다. 달고 따스한 딸기맛. 딸기인지 쨈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맛에 빠져 몇 개를 더 건져 먹고 손잡이가 긴 국자를 조심조심 저으며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팔목에 튀지 않게 냄비 밖으로 흐르지 않게 이 쪽 저 쪽을 살펴 가며 젖다 보면 어느새 되직하게 변해간다. 그럴수록 붉은색의 딸기는 검은빛으로 변해가고 내손도 점점 끈적인다. 손가락 장난에 재미가 붙어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붙었다 땠다 국자에 손을 붙었다 땠다를 반복하며 손가락이 얼마나 끈적이는지 실험한다. 덩어리 딸기라도 발견하면 냄비 벽에 으깨어 넣고 틈틈이 국자에서 떨어지는 딸기 잼의 농도를 살핀다. 딸기잼이 바닥에 눌어 붙었는지 탄 냄새가 난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바닥까지 긁어가며 휘휘 젓는다. 손가락이고 팔이고 얼굴이고 온몸이 끈적인다.


엄마는 딸기잼을 다양한 크기의 유리병에 가득가득 넣어 맞은편 옥상 계단에 나란히 놓아 식힌다. 방금 만든 여러 병의 딸기잼을 보면이 삼일 안에 먹어 치울 것만 같이 적어 보이는데 꼭 한두 병은 남아돌아 뚜껑 부분에 하얀 곰팡이가 생기는 걸 여러 번 봤다.


커다란 식빵에 따스한 딸기잼을 무겁도록발라쁘득쁘득 딸기 씨를 씹어가며 먹는다. 따스한 딸기 잼이 들어간 묵직한 식빵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단내 가득한 옥상을 지나 앞마당, 수돗가, 대문 앞, 큰 옥상을 돌며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