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반들거리는 앞뜰은 보일러를 켠 것처럼 뜨끈 거린다. 동생과 반들반들 길이든 앞뜰에 물을 뿌리고 미끄럼 놀이를 한다. 엉덩이로 배로 등으로 빙글빙글 돌고 밀고 물이 뿌려진 미끈미끈한 바닥은 살이 쓸려도 따갑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워 여름이면 방바닥에서 노는 시간보다 앞뜰 바닥에서 해질 때까지 붙어산다. 엄마가 안 계시는 날이면 눈치 안 보고 앞뜰이건 대문 앞 보도블록 이건 상관 없이 방바닥처럼 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눕지 말라는 곳에 누워보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 가령 하늘이 보인다거나 돌아누울 때 풀이나 야생화가 귀를 건드린다거나 팔꿈치에 이끼가 스친다. 흙바닥에 누워 풀잎 사이를 올려다보는 시간은 벌레와 하나가 된다. 물놀이를 하다가 마당에 누워 낮잠을 잔다. 한낮에 볕으로 따스하게 달구어진 매끈거리는 앞뜰은 차라리 방바닥보다 촉감이 좋다.
앞뜰과 오른쪽 모퉁이에 이어진 수돗가에는 각각 크기가 다른 세 개의 빨간 다라가 있다. 하나는 허리까지 오는 땅콩모양의 다라로 그 속에 가득 찬 물은 한낮 동안 달구어져 미지근해질 저녁나절 4남매의 목욕물을 위한 다라고 그보다 중간 크기의 다라는 깔끔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수박이나 참외가 둥둥 담겨있거나 야채만 전용으로 씻던 다라다.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다라는 빨래나 걸레를 빠는 막 다라로 호수가 담겨 있다.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든 한낮 다라 옆에 쪼그려 앉아 인형머리를 감기던 동생의 정수리는 동그란 모양의 왕관을 쓴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엄마는 수돗가에 있는 빨간 다라 속에 둥둥 떠있는 수박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한참 후에 양은 쟁반 위에 숟가락과 스탠 밥공기 몇 개, 커다란 양푼을 무겁게 들고 나온다. 한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수박 미숫가루다. ‘와아와 아'신이 나서 동생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개다리 춤과 원숭이 흉내를 내며 오두방정을 떨며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앞마당을 가로지른다. 빨간 수박이 걸쭉한 미숫가루에 누릿 누릿 색이 물들어 있고 사이사이 얼음덩어리도 보인다. 수박만큼 얼음도 귀했기에 귀가 쨍하도록 차가운 얼음부터 입에 넣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다. 스탠 밥공기의 표면에 생기는 자잘한 물방울의 찬기운에 등골부터 시원해진다. 설탕이 달달하게 들어간 미숫가루는 한여름 땡볕 앞뜰에서 먹어야 제 맛이다.
각자 미숫가루를 들고 어름 개수부터 세고 어떻게 하면 천천히 먹을까 궁리하며 얼음은 입에 넣었다 뺐다 작아지는 크기를 재가며 아쉬워한다. 잘 익은 빨간 수박은 입천장으로 으깨가며 먹고 수박씨는 파리 꼬이지 않게 흙 부분까지 있는 힘껏 뱉어낸다. 달달하고 걸쭉한 미숫가루의 덜 풀어진 덩어리라도 입안에서 터지면 재채기가 쏟아져 나오니 천천히 살펴가며 요령껏 먹어야 한다.
한 손에 수박 미숫가루를 들고 맛을 음미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는다. 수박 미숫가루는 한입 한입 들어 갈 때마다 맛이 다르다. 처음 맛은 달달한 맛이고 그다음은 시원함이며 그다음에는 빨간 과즙의 맛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이 여러 가지 맛을 느끼게 했던 것일까? 모든 것이 귀해서일까? 지나간 것은 좋아 보이는 것일까? 지금은 그 맛이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