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김밥

by 이강


김밥을 보면 소풍 가는 새벽 아침 김밥 싸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새벽잠을 깨우는 진한참기름 냄새가 온 집안 가득하다. 아침잠이 많은 우리 남매는 참기름 향에 누가 흔들어 깨우거나 소리치지 않아도 이른 아침 동시에 눈을 뜬다. 눈을 뜨자마자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엄마 곁에 조르르 모여 앉아 먹음직스러운 엄마의 손놀림을 구경한다.


우선 양푼으로 하얀 쌀밥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위에 맛소금과 깨소금이 술술 뿌려지고 마무리로 참기름을 두 바퀴 반을 돌린다. 김이 모락 거리는 흰쌀밥을 살살 섞어가며 김을 뺄 때 몰래 먹는 맨밥도 꿀밥이 따로 없다. 쟁반 위에 김밥 속에 들어갈 반찬들이 색색 별로 수북수북 담아져 있다.


하얗고 통통한 손끝에서 참기름 향이 똑똑 떨어지고 김밥은 반들반들 윤이 나게 말려 나온다. 깨소금이 총총히 박힌 쫀득거리는 흰쌀밥 위로 단무지. 계란, 당근, 시금치, 소시지가 가지런히 놓이고 두툼한 엄마의 손이 강아지 쓰다듬 듯 여러 번 쓰다듬다가 돌돌 말아 꾹꾹 눌러댄다. 김 빨 양 옆꾸리로 튀어나 온 밥알 한 톨도 놓치지 않고 중간중간 눌러 넣고 몇 번을 꼭꼭 말아 돌리는지 김 빨이 찢어질 듯 벌어지다 오므라들기를 반복한다. 걱정도 잠시 김 빨을 스르르 풀어 놓으면 까실거리던 마른 김에서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김밥이 두르르 굴어 나오는데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것이 세상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유달리 깨소금과 참기름 향이 진한 엄마의 김밥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중에도 당당 이 일등이다. 손이 컸던 엄마는 먹성 좋은 우리 5남매를 위해 팔뚝처럼 두툼한 김밥을 싼다.


김밥 쌓는 구경을 하다가 세수하는 시간도 까먹어 엄마의 호통으로 잠깐 고양이 새수라도 하고 달려오면 둥근 쟁반 가득 김밥이 쌓여있다. 한입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큰 김밥. 소풍 가는 날만 유일하게 먹을 수 있던 김밥이 휘청거리는 일회용 나무 도시락에 꽉 꽉 채워지고 손수건으로 묶어 크기 별로 나란히 놓인다.

소풍 가방 속에 김밥을 생각하면 소풍이고 나발이고 아무 곳에 쭈그려 앉아 김밥만 먹어도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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