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SARM Vol. 1ㅣIntro

해외에 살고 일하는 청년들의 에세이, OUR SARM

by 클롸드

삶(SARM)
목숨 또는 생명.
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라온 대한민국을 떠나, 생경한 타지에서 펼쳐진 우리의 삶.
그곳만의 독특한 문화, 경제, 정치, 사회, 예술을 접하며 살아온
우리들의 ‘희.로.애.락’을 이야기 하고자 매거진 OUR SARM을 기획하고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by 발행인 김영빈



Editor 김영빈 (클롸드)

올해 스물아홉의 대한민국 서울 태생.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외노자로 2년째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만 주야장천 관심을 가졌다. 프로 마술사, 프로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터가 꿈이였다.

캐나다에서 온타리오주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캐나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띵가띵가 취준하다 보기 좋게 실패하여 우연한 기회로 생각치도 못한 중국 시골로 도피 취업 왔다가 상하이에서 일하게 되었다.

남성 패션, 스페셜티 커피, 피트니스,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해외취업준비생 시절의 불편했던 점들을 떠올리며 외노자 매거진, OUR SARM을 창간해봤다.

나의 양심이 말하는 대로 솔직하게 내가 겪은 해외에서의 삶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고대해본다.



어떻게 중국 상하이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어릴 적부터 막연히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일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먼저 캐나다로 유학 간 형을 보러 방문했던 토론토에서, 고등학생과 고등학교 선생님이 맞담배를 피는 것을 보며 “진짜 자유”를 보았다. 그렇게 2년간 어머니를 설득하여 캐나다의 고등학교를 입학하여 캐나다 대학생활까지 마무리했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캐나다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살만큼 살아본 곳에서 이방인으로써 살아간다는 것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캐나다보다 한국이 취업이 더 가능성 있지 않겠냐는 말에 한국에서 1년간 취업준비생으로서 띵가띵가 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보니, 내가 나름 유학생이라며 가져왔던 유학부심도 현실에선 그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었다.

아버님의 생활잡화 무역 비즈니스가 일본에서 슬슬 중국으로 바뀌어 가던 2015년 10월, 아버지의 권유로 난 그렇게 중국 절강성의 가흥(Jiaxing)이란 도시로 도피취업을 갔고 그렇게 내 중국 생활이 시작 되었다.

가흥에서 월급 40만원을 받고. 주 6회, 책상을 열면 쥐 똥이 한 가득한 공장 겸 회사에서 해외영업으로 일했다. 6개월 일하며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중국 시골에서 일하던 당시 28.5살이던 나는 나에게 되물었다.
“너가 30살에 죽는다면, 그때까지 뭐할래?”

이런저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본 끝에 답을 작성했다.
“ 커피, 피트니스, 스타트업 “

그것에 대한 3가지 대답 중 첫번째 대답이었던 스페셜티 커피 업을 도전해보기 위한 도시로 상하이를 선택했다.
상하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달했고, 지금도 꾸준히 발달하고 있는 최첨단 도시.
모든 대륙의 젊은이들이 꿈을 품고 모이는 도시.
세계의 다양한 강자들이 모여서 경합하고 지지고 볶는 도시.
중국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영어가 퍽이나 잘 통하는 도시.

상하이라면,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서른 살이 되는 그날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상하이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핑크빛 일줄 알았던 상하이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애초에 커피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곤 전무한, 중국어도 못하는 놈이 여러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카페들 문을 두드리며 “내가 너희 브랜딩 매니저”가 되어 줄게 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하고 다녔다.운 좋게도 나의 배포와 가능성을 인정해준 몇 군데에서 프리랜서 브랜딩 매니저를 하게 되었지만, 자리를 제대로 잡지는 못했고, 빙빙 맴돌기만 했다.

다시 아버님의 무역업을 배우러 한국에 가야하나 싶었을 때, 우연히 한 명의 헤드헌터에게서 구미가 당기는 이메일이 왔고, 그것이 지금은 글로벌 그룹 피트니스 회사에서 일해보겠냐는 권유였다.

30살 죽기 전에 도전해봐야 할 것들로 커피를 해본 나는, 두번째 도전과제인 피트니스를 도전해보기 위해 해당 회사와의 인터뷰에 온갖 힘을 다 쏟았고, 모자른 나의 경력을 그저 패기 하나로 도전한 나를 인정해준 대표 덕분에 상하이에서 일하며 산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현재 일하는 회사는 글로벌 그룹 피트니스 프로그램 개발사이다.

흔히 헬스장에서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에어로빅 운동을 더 즐겁고 모던한 그룹 운동으로 탈바꿈시킨 회사다.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리복(REEBOK)과 파트너쉽을 가지고, 108개국의 18,500개 헬스장에 21가지 그룹 피트니스 프로그램들을 라이선스하여 주로 B2B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피트니스 시장은 중국에 비해 과도기를 넘어, 퍼스널 트레이닝 과포화에 들어섰다. 오직 몸짱 되어서 프로필 찍기,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에 혈안 된 한국 피트니스 시장에 아줌마들의 전유물이라 생각 되던 그룹 피트니스 (GX)를, 젊은이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려 마케팅, 세일즈, 브랜딩, 고객관리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다.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은?

한국을 떠나 캐나다를 시작으로, 상하이까지.. 10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해왔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그 나름의 장단이 있었다.

장점으론 기존에 세상과 사람에 대해 가졌던 편협했던 시선이 과감하게 깨지는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다. 전혀 다른 문화 속에 아우르며 내가 모르던 나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비로소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며,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단점으론 이방인으로서 가지는 외로움. 로컬들에게 은근하게 받는 차별과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은 해외에 사는 한이고 가야 할 짐이다. 내 집은 어디에도 없으며, 단지 월세를 내며 버티는 나의 집이 진짜 집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고향에서 벌어지는 친구의 결혼식에도 갈 수 없으며,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을 수 없다. 내 지인들의 일상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설움이 있다.

장점과 단점을 나눈 이유는 그만큼 냉정하게 해외 생활을 판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해외에서의 삶이 무작정 장밋빛으로 보이지 않길 바란다.
10년 간의 해외 생활로 배운 것은 결국 세상사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
결국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나는 삶이었다.

나에겐 고국에서의 안정감 보다 해외에서 부딪치는 설렘과 새로움이 더 컸기 때문에 이곳에 계속 남아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내 SARM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곳이던 설레임이 가득한 곳임은 틀림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꿈?

세번째 도전으로 스타트업 대신 장사를 해보고 싶다.
단순 “돈”을 많이 번다는 행위 보단, “의미”를 가진 장사를 해보고 싶다.
장사의 아이템은 내 첫번째와 두번째 도전이었던 커피와 피트니스, 그리고 패션이다.
정보의 홍수와 수많은 자극만이 가득한 이 세상에 “건강함”과 “장인정신”을 전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 있는 기업들의 스토리를 알리고, 그들의 제품을 알리는 숍을 열고 싶다.
그리고 그 외에 예술, 음식, 운동에 관련된 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건강한 지구를, 건강한 나를 생각한 소비를 위한 아이템/문화를 전파하고 싶다. 또한 남들의 유행에 쫓기지 않고, 오랫동안 간직 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Editor / 고건호 (Gano)



- 1989년 7월 서울 출생
- 기독교 대안학교 중, 고등학교 졸업 (과정 내 캐나다 및 중국 어학연수 6개월)
- 리츠메이칸 아시아 태평양 대학교 (일본), 국제 경영학부 졸업
- 일본계 종합상사 싱가포르 지점, 합성수지부, 인도/파키스탄 및 중동 시장 담당. (현재)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2017년 현재,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은 평등하고 진실되게 타인과 소통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나이와 관계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 이루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살아가고 살아갈 세상에 웃음이 더욱 많아지고, 따뜻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쓰기 와 프레젠테이션.
2. 직장 업무 간 그리고 사업을 통해서 내가 속한 조직의 사람들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며, 간접적인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3.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따뜻한 말투로 소통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는 것.



어떻게 싱가폴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지에 대한 고민’
일본 유학 후, 싱가포르에 오게 된 계기는, 당시 한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아직도 한국인의 대한 인식이 크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Super Korean이 되기 위해 나를 포장하고 노력해야 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나를 표현하는데 보다 자유롭고,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은 어디일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싱가포르가 그곳이 될 거란 ‘믿음’으로 이주하여, 생활 중.

짧게 요약해서, 싱가포르는 아래와 같은 환경을 갖춘 곳.
1)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 다양한 인종, 종교 그리고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곳.
2) 세계 각국 일류 기업들의 아시아 Regional 헤드쿼터가 소재한 곳. 사람 및 기업들과의 만남의 기회가 꾸준히 발생한다.
3) 보다 여유로운 Work & Life Balance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
4) 매력적인 동남아 여행지로의 접근성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필자는 취활 당시 여러가지 고민이 많이 있었다. ‘어떤 회사가 나에게 가장 좋은 회사인가?’ 단순히 돈이나 네임벨류가 있는 곳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심이 나오지 않았고, 항상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꼈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나에게 끊인 없이 주고 받은 결과 아래 두 가지로 종합 할 수 있었다.

1) 주체적으로, 주도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 (본인이 의사 결정을 해야할 일이 많은 직업)
2) 장래에 개인 사업을 준비함에 있어 나를 가장 성장시켜줄 수 있는 환경.

그 결과 종합상사와 컨설팅 업계가 가장 상기 조건과 부합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종합상사 취업을 목표로 준비하게 되었다.
일본계 종합상사(싱가포르 법인)에서 중동 및 서 아시아를 대상으로 합성 수지(Plastic) 및 기초 화학품(Basic Chemical)을 수입 및 수출하는 무역일을 하고 있다.

드라마 미생의 배경도 종합상사이며, 가장 쉬운 예로는PET(POLYETHYLENE TEREPHTALATE) 수지를 구매하여, PET병을 제조하는 회사에 납품하는 것이다. 필자는 자동차 재료부에 소속 되어 있으므로, 도요타 자동차 공장이 소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태국, 남 아프리카, 터키 , 인도,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에 고성능 합성수지 및 고무를 판매하는 일을 담당해 왔다.

필자는 특히 서 아시아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및 중동을 담당하다 보니, 월 2-3회 장기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은 데, 경쟁사로부터 우위의 위치에 있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격협상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판매 조건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및 정치 그리고 지리적 환경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가격 협상 및 관계 형성 시 자칫 잘 못 하면 상대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미리 공부해야 한다.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은?


‘매 순간이 새롭다. 모든 것은 기회비용’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즐거운 자극이 반복되지만, 동시에 외로움과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것 같다. 해외에서의 삶은 항상 새롭고 신선하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왔는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고 일을 하는 것은 상당히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해 얻은 영감들이 나를 계속 꿈틀거리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 자극적인 맛이 계속해서 나를 해외로 이끌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잦은 작별을 반복하며 쉽게 고독을 느끼고, 때로는 정을 주는 것이 두려워 차가운 사람으로 지냈던 적도 있었다.

즉, 해외에 사는 것은, 가치관의 의한 기회비용이다. 그리고 때론 그 가치들이 시기와 필요에 의하여

정해질 때도 있겠지. 각자의 상태와 그 당시 필요한 것, 마음의 소리를 좇아 결정한다면 매력적인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믿어본다.



앞으로의 꿈?

1.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함으로 편견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
2. 긍정적인 태도와 웃음으로 내가 속해있는 장소를 밝게 만드는데 노력.
3.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