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삶의 무게
모두가 눈앞의 모든 것을 카메라로 담는 것에 익숙하다.
일회용 카메라와 다르게 스마트폰은 쉽게 찍고, 쉽게 올리고, 쉽게 지운다.
카페에 들려서 주문한 라떼 한 잔에 그려진 하트 모양 거품을 보며 '이건 올려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커피를 음미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그것을 찍고 인증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친구와의 저녁 식사에서 음식이 나오면 포크를 드는 대신 폰을 든다. "잠깐만, 사진부터." 우리는 식기 전에 찍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순간, 따뜻한 음식의 김이 친구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는 그 찰나는 영영 사라진다.
언제부터 삶이 이렇게 기록으로 전도되었을까.
경험이 콘텐츠의 원재료가 되고, 현실이 업로드를 위한 예행연습이 된 건.
문제는 단순히 SNS를 많이 한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내 뇌가 이미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떤 순간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가 아니라 "이게 피드에서 어떻게 보일까"가 되어버렸다. 나는 내 삶의 감독이자 관객이 되었지만, 정작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더 무서운 건,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이 점점 덜 실재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나마 남긴 증거가 없으면 그 경험이 정말 일어난 걸까?
좋아요가 없으면 그게 정말 좋은 순간이었을까?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라이크와 댓글을 기다리며, 내 삶의 가치를 그들의 엄지손가락에 아웃소싱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깊었던 순간들은 그다지 깊게 기록되지 않았다.
새벽 3시, 친구와 미래를 그리며 차 안에서 나눈 대화.
우리는 비록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모든 걸 나누고 가슴속에 우정을 남겼다. 중국 운남 호도협의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숨을 쉬던 순간.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덕분에 땀과 흙 냄새와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들이 귀한 이유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보는 관객이 없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가 아니라 순수한 경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루함을 잃어버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5분, 줄을 서는 3분, 심지어 신호등 앞의 30초조차 못 참고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다.
하지만 예전에는 바로 이 틈새에서 생각이 자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다. 지금은? 지금은 알고리즘이 내가 원하는 걸 알려준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기록하지 않아도 된고 굳이 공유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내 삶이 의미 있다는 허락을 말이다.
생산성은 우리 시대의 종교가 되었다.
모든 순간은 최적화되어야 하고, 모든 시간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용한 시간에서 자란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시간. 그냥 누워서 천장을 보는 시간. 이것들은 낭비가 아니다. 이것들이 바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작은 실험을 한다. 지루함을 되찾기 위해.
폰을 일부러 침대가 아닌 주방에 둔다. 처음엔 불안하다.뭔가 놓치는 것 같다. 하지만 30분쯤 지나면, 이상하게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게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진 찍고 싶은 순간이 오면 잠깐 멈춘다.
"난 정말 이걸 기록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습관일까?" 라고 묻는다. 역시나 90%는 습관성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진 찍을 수 없는 것들을 한다.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 폰 없이 땀 흘릴 때까지 달린다.
누군가와 핸드폰 없이 이야기 나눈다. 이런 것들은 인스타그램 정사각형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게 좋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불특정 관객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좋아요는 일시적인 도파민을 준다.
하지만 삶의 깊이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이젠 1,000명의 팔로워보다 진짜로 아는 3명의 친구가 소중하다. 나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 당신의 침묵도 읽을 수 있는 사람, 내가 무너질 때 실제로 곁에 있을 사람 말이다.
깊은 삶은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과 온전히 연결되는 것에서 온다.
그리고 그 연결은 댓글이 아니라 눈맞춤에서 일어난다. DM이 아니라 만남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삶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좋은 의미로. 더 밀도 있고, 더 내 것 같고, 더 진짜 같다. 마치 HD에서 4K로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모든 게 선명하다.
어쩌면 역설은 이런 거다.
나는 삶을 기록함으로써 보존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삶을 놓치고 있었다.
진짜 기억은 픽셀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들, 증명할 수 없는 경험들, 좋아요 없는 기쁨들—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만든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은 업로드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녹화가 아닌 살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진짜 내 이야기는 누가 봐주든 말든, 내 삶에 온전히 잠길 때 비로소 시작된다.
결국 깊은 삶이란 내 삶의 편집권을 다시 내게 가져오는 과정이다.
내 삶은 지금으로 충분하다.
This is enough to live w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