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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Sep 21. 2017

뭐든지 보고,書

《영속패전론》_시라이 사토시_이숲

이 책의 저자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의 젊은 정치학자다. 전문 분야는 레닌. 진보 좌파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최근 아베 신조 제2차 내각 출범 후 일본 사회에 부는 우경화 바람을 우려하며 일본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속패전론》은 그런 활동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각종 언론 인터뷰나 칼럼을 통해 《영속패전론》의 집필 동기를 두 가지로 밝힌 바 있다. 하나는 2010년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퇴진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의 대미 종속 구조, 나머지 하나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명확해진 무책임의 체계다. 시라이 사토시는 전후 지금까지 일본을 작동시켜온 운영체제를 ‘영속패전 체제’라 명명하고 일본의 혼네(속마음)를 끝까지 파고든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두 사건의 커다란 각주인 셈이다.      


한국과 오키나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예전에는 10년이었다)의 시절을 견디면서 21세기를 맞았다. 전범 세력에 뿌리를 둔 자민당의 오랜 집권과 저성장의 피로감에 지친 일본도 새로운 국면 전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마침 당시 한국은 거의 처음으로 민주당이 집권하게 돼 시민들의 정치적 자부심이 대단했었고, 그 힘으로 IMF 외환위기를 넘겨오던 참이었다. 결국 일본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염원에 부응해 2009년에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돼 하토야마 내각이 들어섰다. 그러나 하토야마 내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발단이었다. 대미 종속 구조의 상징이자 최전선인 미군기지 문제를 건드렸다가 실각한 것이었다. 전범 세력의 집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었으나 어이없이 무너지는 하토야마 내각을 지켜본 시라이 사토시의 심정은 본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키나와는 일본 국토의 1%도 안 되지만 미군기지 70% 이상이 몰려있는 곳이다. 본문에서도 언급됐지만 본래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었으나 청일전쟁 무렵 일본에 편입돼 태평양 전쟁에 휘말린 곳이다. 일본이 시작한 전쟁인데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현민의 25%가 희생을 당했다니 그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나 있을까. 전쟁이 끝나고 미군의 점령으로 분단까지 됐던 오키나와는 1972년 일본에 반환되지만 무늬만 점령지에서 일본 영토로 바뀌었을 뿐, 그 식민 착취 구조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예가 바로 미군기지다. 그렇기 때문에 오키나와는 대미 종속 구조가 지리적으로 구현된 장소이기도 하다.


대개 한국인들은 이런 오키나와의 가슴 아픈 역사를 보면서 제주도와 종종 비교를 하곤 한다. 평범한 주민을 좌익 세력으로 몰아붙여 학살한 4·3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까지 오키나와 현대사와 중첩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이 책에서 언급한 일본 본토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냉전의 최전선 기능을 했던 장소 세 곳을 상기해보자. 오키나와, 한국, 그리고 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키나와가 한국이고 한국이 오키나와란 사실이다. 한국 수도 서울 한복판 용산에는 지금도 미군기지가 있다. 대미 종속을 얘기하자면 한국이 한 수 위였던 것이다. 책 속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우리는 모욕 속에 살고 있다.”는 나카노 시게하루의 말은 이렇게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욕의 체계’는 한국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3·11과 4·16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내게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이미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자연재해의 무참함을 익히 알던 터라 후쿠시마를 덮쳐오는 쓰나미는 공포를 넘어선 묵시록적인 무언가를 폐부 깊숙이 찔러 넣었다. 무엇보다 진정할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원자력 사고란 점이었다.


원전에서 나오는 폐연료봉 하나의 반감기는 무려 10만 년에 이른다고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가 대략 10만 년인 걸 감안한다면 우리네 삶의 스케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영겁의 시간이다. 이처럼 원전은 애초부터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기술의 일본 아니었던가. 하지만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그렇다면 기술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의 복구, 이를테면 후쿠시마 주민을 비롯한 인근 도시 이재민들을 대하는 섬세한 행정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받았던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공무원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 책에서 언급한 그대로다. 지구에 민폐를 끼쳤다고도 할 수 있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도쿄전력의 책임을 미루는 모습은 한국인인 나조차도 분노가 일 정도였다. 일본 정부는 또 어떤가. 방사능 오염 정보를 미군에게만 몰래 제공하고 언론 보도를 통제하면서 방사능 오염은 제어가 가능하다며 거짓을 일삼았다.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의 기술력과 변영의 상징이었던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되는 모습을 목도하며 전후 70년을 구가했던 ‘평화’와 ‘번영’의 파국을 감지했다. 동시에 거짓으로 일관된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태평양 전쟁으로 치닫게 했던 전범 세력의 ‘무책임의 체계’와 무참한 패배를 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패배의 부인’을 봤던 것이다.


문제는 다시 한국이다. 한국에서도 원자력발전은 그동안 미래 에너지를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일본 원전 사고는 한국 원전 마피아 세력들에겐 진실을 감추어야 할 사건이었다. 역시나 한국도 언젠가부터 일본 언론처럼 원전 반대 여론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그 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히려 노후 원전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결국 노후 원전이 밀집된 경주에서 초유의 지진이 발생하고 말았다. 다행히 원전은 무사했지만 시민들의 원전에 대한 공포감은 치솟았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신규 원전을 추진하려고 한다. 《영속패전론》 첫 장부터 등장했던 ‘모욕’과 ‘무책임의 체계’를 엿볼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이처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일본만의 재앙은 아니다. 일본과 바로 이웃한, 후쿠시마에서 규슈 후쿠오카 거리만큼 떨어진 서울에 사는 동아시아인으로서, 전 세계 원전 집중도가 1위인 나라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3·11은 당장 내게 닥친 일이기도 했다. 원자력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에 이른 일본이 전후에 원자력을 바탕으로 부흥한 역사도 아이러니지만 결국 원자력으로 일본 열도가 혼란에 빠지는 모습은 한마디로 원자력 카르마처럼 느껴졌다. 물론 한국도 이 업보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더구나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또 어떤가. 자주 동일본 대지진과 비견되는 세월호 참사는 모욕과 무책임의 결정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이 온 국민이 티브이로 지켜보는 가운데 바라 밑으로 가라앉았다.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펼치지 않았던 장면이 동일본 대지진과 오버랩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청와대를 비롯하여 구조의 책임을 서로 미루는 관련 부처들의 행태까지 모든 것이 《영속패전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무책임의 체계와 동일하다. 무책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이 구조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의 태도를 향해 진상 규명을 외치고, 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을 했지만, 언론까지 가세하여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시민들을 종북 좌익 세력으로 호도하기까지 했다. 모욕의 체계는 이렇게 우리 안에도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은 책을 펼치는 순간 빠져들게 만든다. 《영속패전론》은 우리의 또 다른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영속패전 체제가 낳은 영속분단 체제     


《영속패전론》의 키워드는 ‘패전의 부인’과 ‘대미 종속’이다. 특히 대일본제국의 패전으로 잃었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던 한국은 일본이 패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일본은 그동안 ‘패전’대신 ‘종전’이란 말을 써오며 패전을 부인해 온 것이다. 시라이 사토시는 바로 이런 단어의 치환에서 ‘영속패전 체제’의 교묘한 트릭을 발견한다. 또한 전후 일본에서 이런 기만이 가능했던 이유를 미국과 소련의 대치 즉 냉전 구도에서 찾는다.


일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전후 일본에 강력한 반공 정부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던 미국은 천황제를 인정하고 전범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속속들이 전범 세력들은 다시 나라의 권력을 되찾게 됐다. 그렇기에 이들은 미국의 말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런 대미 종속은 패전의 부인과 함께 영속패전 체제를 만들었다. 패배하지 않았기에 반성하지 않았고, 전쟁 피해를 준 나라들에게 사과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 한국전쟁으로 전쟁 특수를 챙기면서 일본의 경제는 살아났고 베트남전쟁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다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일본 국민들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고 대미 종속 구조하의 전범 기득권 세력들은 그들의 전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끝까지 패전을 부인해도 되는 구조가 정착된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영속패전 체제’다. 실로 명쾌하고 통찰이 담긴 진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리 익숙한 걸까. 책을 읽어 나갈수록 기시감이 뚜렷해진다. 일본 제국주의에 기생했던 조선인 권력자들이 한국의 권력을 차지한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렇게 ‘영속패전 체제’가 일본 전후의 국체로서 작용한 것처럼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의 현대사까지도 옥죄고 있었다. 해방 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또는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바로 이 ‘영속패전 체제’란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도 한국전쟁 후 대미 종속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는데 대미 종속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 바로 남북 분단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그야말로 냉전 구도를 유지하는 장치로 냉전의 최전선의 최전선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처럼 민주화 시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분단을 계속 유예 또는 유지하면서 전쟁 공포와 긴장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구조. 영속패전의 다른 판본 영속분단 체제 탄생의 순간이다.      


쉴즈와 촛불의 연대를 꿈꾸며    

 

그러나 시라이 사토시가 《영속패전론》에서 이야기하듯이 영속패전 체제는 유효 기간이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노후 원전을 억지로 수명 연장해 왔듯이 영속패전 체제는 버팀목 없이 버텨온 것이다. 버팀목이었던 냉전 구도가 독일 통일과 소련의 붕괴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의 사상가인 우치다 타치루는 시라이 사토시와의 대담집 《사쿠라 진다》에서 일본의 우경화 경향은 바로 강력한 국가 구조(국체)의 붕괴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진단하는데 그 산증인이 바로 아베 신조다. 시라이 사토시 또한 아베 신조의 높은 지지율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아베 신조는 전범 세력의 후예로 외조부가 A급 전범이자 자민당의 초석을 다진 기시 노부스케다. ‘쇼와의 요괴’란 별명을 가진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을 좌지우지했던 인물로 박정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시 말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의 수법은 기시 노부스케에게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가 총리로 임명된 제2차 내각 성립 시 한국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렇게 전범 세력과 군부 독재 세력의 귀환이 한일 양국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 한일 양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 결과는 잘 알 것이다. ‘전후 체제의 탈각’을 외치며 전후를 결산하려는 듯이 행동하는 아베는 기어코 평화헌법 제9조를 건드려 해석개헌을 강행했고 신안보법제화로 집단적자위권을 각의결정했다. 이제 일본은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제는 냉전의 흔적이 돼버린 한반도 분단을 이용해 북한 리스크를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 그래야 일본의 전범 세력과 한국의 적폐 세력은 그들의 권력과 이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또 어떠했나. 이른바 1987년 6월 시민 항쟁 이후 민주주의 모습을 갖춘 듯했지만 그것이 모래 위의 성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박근혜 정부는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일본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혁명의 경험이 없었던(사실은 봉쇄됐던) 일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카이 세대가 실패했던 혁명이 일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태동하고 있는데 이른바 쉴즈(SEALDs)라고 불리는 민주주의 수호 대학생 단체다. 쉴즈는 아베 정권의 신보안법제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는데 12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앞을 메우기도 했다. 시라이 사토시가 《영속패전론》에서 말했던 ‘3.11 이후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을 찾아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MB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 10년을 경험한 한국 시민 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을 가만두지 않았고 결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으며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이렇게 광화문 촛불 집회는 한국의 87년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성공 경험을 국민의 가슴에 새겨놓았다. 이와 같은 에너지가 일본에 전달돼 일본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마 시라이 사토시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한마디로 식민지배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파국을 맞은 역사라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요는 일본은 온전한 독립국이 아니란 의미다. 물론 영속패전 체제의 자장권에서 대미 종속을 해왔던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시라이는 역사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첫걸음이다. 한국과 일본을 대치 구도로 보게 만드는 역사 틀 안에서는 일본도 한국도 절대로 ‘독립’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영속패전론》은 그동안 한국과 일본을 지배했던 기만의 역사 인식 틀을 바꾸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일본과 한국의 문제는 함께 풀어 나가야 해결할 수 있다. 《영속패전론》은 이렇게 매트릭스에 갇혀 살고 있는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빨간약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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