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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Feb 26. 2021

속초 '칠성조선소' 미래를 연결하는 연락선을 만든다

로컬탐방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


칠성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눈길을 끌었던 문구다. 처음에는 목수란 말과 배가 바로 연결되지 않았는데 칠성조선소가 과거 목선을 제작했던 곳이란 걸 알고는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어진 상념. “그래, 배는 물 위의 집이지. 특히 어부들에게는.” 


속초는 강원도 안에서도 매우 특이한 곳이다. 도시 안에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까지 공존하는 자연환경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북녘 땅이 코앞이라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지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80년대 관광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속초는 지금까지 무분별한 개발로 얼룩도 많이 지었다. 그 결과 속초의 스카이라인은 여느 대도시처럼 바뀌었지만 속초의 역사를 품고 있던 오래된 장소는 그만큼 사라졌다. 다시 말해 속초는 서울을 닮아가고 있다.


청초호를 품은 칠성조선소도 그렇게 역사에 묻힐 뻔한 곳이었다. 칠성조선소는 1952년에 현 대표 최윤성 씨의 할아버지 최칠봉 씨가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가 속초에 ‘원산조선소’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곳으로 2017년 마지막 배를 만들고는 목선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칠성조선소의 현 대표 최윤성 씨의 아버지 최승호 씨가 배 목수로서 마지막 세대였다.


최윤성 씨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룬 터전을 카페와 서점, 갤러리 등의 공간으로 재구성 하면서 속초의 지역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개인사의 유산이자 지역 자원을 발굴하여 공공의 역사 공간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지역 컨텐츠로 발전시킨 것이다.


눈에 띄는 활동으로는 최윤성 대표가 폰트회사 ‘산돌’과 함께 ‘칠성조선소체’를 만든 일이다. 배 목수였던 최윤성 대표의 아버지가 완성한 배에 마지막 공정으로 배 이름을 직접 썼던 글씨체를 원안으로 한다. 당시 속초의 목선을 제작하는 조선소의 배들은 생김새가 대동소이했지만 유일하게 배 이름을 쓴 서체만이 확실한 차별점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브랜딩 작업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최윤성 대표는 아버지의 글씨가 박힌 배들을 보면서 확실하게 아! 저 배는 우리 칠성에서 만든 배구나, 하면서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단의 '칠성조선소'라는 글씨가 바로 최윤성 대표의 아버지 글씨체이다.


이와 같이 개인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기억이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최윤성 대표는 자신이 살았던 조선소 마당 귀퉁이에 있었던 집도 재생했다. 70년대 주택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공간은 현재 속초의 지역서점인 ‘완벽한 날들’에서 큐레이션한 책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로컬 문화 공간이 서로 교류하면서 연결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소의 특성 상 건조한 배를 바로 바다로 띄우기 위해 바다를 면하고 있는데 칠성조선소도 마찬가지로 청초호를 면하고 있다. 때문에 칠성조선소 카페 2층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속초 전망은 근대와 현대와 어우러지는 시각 충동의 장소이기도 하다.


가족이 살던 집은 현재 책방 '북살롱'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북살롱 내부의 책은 속초 지역서점 ‘완벽한 날들’이 큐레이션을 맡았다. 


칠성조선소 입구에 위치한 칠성조선소 역사 자료실 모습


칠성조선소 마당에서 청초호 쪽을 바라본 풍경. 조선소 쪽과 달리 현대적이다.


칠성조선소를 나오면서 칠성조선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빙 전시관에 다시 한번 들어갔는데 처음에 봤을 때와는 다가오는 감동이 전혀 달랐다. 최윤성 대표의 할아버지가 목선 제작에 쓰이는 일본어 용어를 하나하나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귀한 역사 자료가 아닐까 싶다. 이처럼 칠성조선소는 개인과 지역의 미시사(微視史)가 서사를 품은 거대한 역사로 전환하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는 ‘장소’이다. 앞으로 칠성조선소가 다시 배를 만들 수 도 있지만, 어쩌면 칠성조선소는 이미 배를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연락선을.



* 위 글은  로컬그라운드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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