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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Mar 05. 2021

숲이 가져다준 일과 사랑, 영화 <우드잡>

뭐든지 보고,書

2011년 3월 11일 들이닥친 동일본대지진이 흔들어 놓은 건 원자력발전소와 마을뿐이 아니었다. 동일본대지진이 과거 고베·한신대지진과 달랐던 점은 일본 경제부흥의 상징과도 같았던 원자력발전소 폭발이다. 치솟는 방사선으로 동북 지역 일부가 통제 불능에 빠지자 사람들의 재건 의지도 원자력발전소 원자로처럼 멜트다운되었다. 버블 붕괴 후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경제침체기를 겨우 벗어나려던 차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사회는 커다란 전환의 순간을 맞이한다.


일본주식회사의 경제 전사로서 앞만 보고 달렸던 많은 일본인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원자력발전소를 보고 일본이 이룩한 경제성장의 성과가 결국 모래성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자신보다는 회사나 조직을 우선시했던 사회 풍조가 바뀌고 탈물질주의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 당시 도쿄를 떠나 자신의 고향이나 로컬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컬에서 삶의 전환을 이룬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일본 로컬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도 지방창생이나 마을만들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멸해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많은 지원을 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대표적 일본 영화가 <리틀 포레스트>이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던 청년이 고향으로 내려와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 이른바 U턴족 이야기랄까. 한국에서는 힐링무비 또는 슬로우무비 등으로 알려졌기도 한데 이러한 로컬 무비 중 또 한편의 숨은 걸작이 있다. 바로 <우드잡>이란 영화다.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청년 히라노 유키는 대입에 실패하고 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발견한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 홍보 전단지의 여성 모델에 반해 무작정 산골 가무사리 마을로 향한다. 하지만 도시 청년을 맞이한 산골 마을은 온갖 불편함이 가득한 곳이다. 벌레가 들러붙고 살모사가 도사리거나 심지어 휴대폰조차 물에 빠져 무용지물이 된다. 역시 이곳은 내게 맞는 곳이 아니란 마음으로 연수원을 몰래 빠져나가다가 전단지 속의 여성과 조우하는 유키. 유키는 결국 더 남아보기로 하고 그럭저럭 한 달간의 기초 교육을 마친다. 그러고는 바로 나카무라 임업이 관리하는 산골마을로 투입된다. (사실은 전단지 모델 나오키가 사는 마을이라 지원한 거지만)


도시에서 온 철없는 청년이었던 유키가 어리바리 좌충우돌하면서 어느새 임업의 위대함에 빠져들게 된다. “농업은 내가 키운 채소의 맛을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임업은 아니야.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다음에 나와.” 이와 같은 대사처럼 100년 전 조상이 심은 나무를 베어내 쓸모 있는 목재로 출하하고 또 100년 후의 후대를 위해 묘목을 심는 일을 하는 게 임업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돌입하면서 세상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만큼 투입한 자원과 노력의 성과를 빨리 도출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되는 도시 자본주의 사회. 속도가 바로 돈이나 마찬가지다. 속도는 시간이니까. 이러한 도시의 속도에 길들여져있는 도시 청년 유키는 숲과 나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숲의 속도에 적응한다. 결국 유키는 마을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되지만 어느덧 1년의 연수 기간이 끝나 도쿄로 돌아갈 때가 된다. 과연 유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로 확인하시길!)


이 영화는 이른바 도시에서 로컬로 이주하는 I턴족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시인이 흔히 갖고 있는 로컬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영화이기도 하다. 도시인이라고 할지라도 흔히 로컬을 막연히 동경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로컬로 이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처한 현실이 나의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무엇일까? 돈? 일? <우드잡>은 다 필요 없고 그저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유키(勇氣, 용기)인 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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