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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Mar 12. 2021

《골목길 자본론》태초에 골목이 있었다!

뭐든지 보고,書

애초에 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도를 펼쳐보면 대충 감이 온다. 길은 물길의 방향과 유사하게 펼쳐져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물길을 따라 이동했고, 자연스럽게 길이 형성됐다. 물길은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특히 산이 있고 강이 흐르는 평야지가 있는 곳은 마을이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골목은 무엇일까? 마을의 구석구석을 실핏줄처럼 연결하는 골목은 집과 집이 만나 만든 여백이자 사람의 동선이다. 그렇다보니 골목 안에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골목은 마을의 나이테이기도 하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주인공 고로는 오늘도 숨은 맛집을 찾기 위해 골목길을 누빈다. 고로의 선택에는 실패가 없다. 이 집이다! 하고 들어가면 틀림없다. 그런데 왜 고로의 선택은 항상 성공할까? 해답은 고로가 백화점 식당가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항상 오래된 골목을 탐색하는 데 있다. 민가로 이어지는 한적한 골목길 어딘가에 숨어있는, 간판도 잘 안 보이는 밥집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고로의 표정은 한없는 맑아진다.


이런 측면에서 고로는 골목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골목을 재조명하는 트렌드가 부상한 지 오래다. 서울이 아파트 단지로 재편성되면서 골목이 사라지자 이제 거꾸로 사람들은 골목의 정취를 찾아 나선다. 아파트 단지가 있는 동네는 어디를 가나 대동소이한 모습 아닌가. 대형 마트가 있고 식당가가 있고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빵집, 아이스크림 가게가 늘어선 구조. 이제는 지겨울 때가 됐다.


하지만 골목이 살아있는 동네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노포는 물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밥집과 빵집 또는 커피집이 공존하는 데다 거리가 주는 온화한 스케일감은 사람들을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뭔가 안도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북촌이나 서촌, 익선동이 각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이자 로컬크리에이터들의 멘토로 활약하는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교수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떠한 광경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즐거움이 있다면서 골목길 여행을 예찬한다. 아울러 책 속에서 골목 경제 생태계를 조망하면서 골목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골목이야말로 문화발전소라는 것이다. 한편, 골목 생태계를 위협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책에서 모종린 교수는 우선, 골목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화자원(Culture)이 풍부하고 임대료(Rent)가 싼 지역에 첫 가게(Entrepreneur)가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첫 가게가 잘 되면 다른 가게도 따라 들어가 상권이 형성되는데, 이때 상권을 유지하기 위한 접근성(Access)과 정체성(Identity) 그리고 공간디자인(Design)을 보완하면 경쟁력을 가진 골목 경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모종린 교수는 이러한 6가지 성공 요소를 ‘C-READI’라고 정리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골목 생태계 안에 많은 ‘장인 공동체’, 즉 자신만의 개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소상공인 또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이 모이면 골목 상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건물주는 이들 그룹을 골목 경제 공동체 파트너로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도시를 벗어나 로컬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도 《골목길 자본론》은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골목도 로컬이라고 본다면 이 책을 ‘로컬 자본론’으로 읽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장소성이 깃든 오래된 지역이 쇠락했다고 무조건 밀어버리고 개발할 게 아니란 점이다. 지역의 특성과 문화자원을 활용하고 로컬크리에이터를 비롯한 소상공인 공동체를 형성한 후, 로컬 디자인과 브랜딩으로 완성하면 훌륭한 로컬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치를 올리는 도시재생의 길이 아니겠는가.


* 이 글은 로컬그라운드에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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