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 시즈쿠 프로젝트
2011년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3·11 동일본대지진은 많은 일본인의 삶을 바꿨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은 자연재해를 넘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재로 돌변시켰다. 일본 언론이나 한국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당시 수도권을 빠져나간 사람이 꽤 많았다.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이주지를 찾아 간 사람도 있었다. 오사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히로세 기요하루 씨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디자인 컨설팅을 하면서 풍족하고 화려한 삶을 이어가던 그는 원전 폭발로 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다. 마을과 인간의 삶이 붕괴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영위한 돈을 벌기 위한 디자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며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오사카 생활을 정리하고 사회를 위한 더욱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히로세 씨가 선택한 곳은 시코쿠 지역 도쿠시마현 가미야마 마을. 가미야마 마을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체 마을 면적의 80% 이상이 삼림이다. 마을 산업도 전통적으로 임업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가미야마로 찾아가는 길은 수풀로 무성한 산길이다. 얼핏 보면 나무와 숲으로 뒤덮인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보인다. 그러나 히로세 씨는 말한다.
가미야마의 숲은 철저히 목재 생산을 위해 사람이 조성한 인공림입니다
일본의 대표적 건축자재인 나무, 그중에서 특히 삼나무는 가공하기가 편해 목조주택을 짓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시작한 버블붕괴 후 일본 경제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으로 갈아탄다. 다시 말해 일본산 삼나무보다 가격이 싼 수입산 목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그러자 인공림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입산 목재 사용이 늘면서 가미야마의 삼나무 목재는 수요가 급감했고, 선대로부터 이어진 임업을 계승하지 않는 후손이 늘면서 숲은 방치됐다. 결국 산은 삼나무로 뒤덮이면서 산이 죽어갔다. 가미야마(神山), 이름 그대로 ‘신이 사는 산’이 분노한 걸까.
산은 나무와 숲을 기반으로 물을 생성하는 곳이다. 적절히 물을 품고 있다가 물을 내보는 천연 물 저장고이자 공급처다. 그런 산이 죽어가니 마을에 물이 메말라 갔다. 가미야마를 끼고 흐르는 아쿠이가와강의 수량이 줄어든 것. 히로세 씨는 물이 감소한 지역은 인구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연! 물이 없는데 사람이 살 수 있을 리가.
히로세 씨는 ‘시즈쿠(물방울)’라는 로컬 브랜드를 내세워 가미야마의 삼나무 생태계를 살려 수자원을 보호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고 삼나무로 컵이나 식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을의 목공 장인들에게 “누가 삼나무로 컵을 만들어! 게다가 나이테 방향을 거스르는 그런 방식으로 만든다고? 너 바보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히로세 씨가 아니었다. 대기업을 상대로 경쟁 피티를 하면서 다져진 멘탈갑 아니던가. 결국 기존의 틀(상식)을 깨는 방식으로 전혀 새로운 일본 전통 디자인을 가미한 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시즈쿠의 물건은 전부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다. “컵 하나 만든다고 삼나무로 엉망이 된 산이 살아납니까?”
히로세 씨에게 수없이 던져졌던 질문이다.
전 1000년을 봅니다
당장 이뤄내야 하는 과업이 아니라 누군가 계속 이어 나가다 보면 분명 변화가 생긴다는 것. 시즈쿠의 제품은 일본 굿디자인상을 수상하고 이탈리아 디자인 마켓에서 호평받는다. 해외에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모노즈쿠리’ 방식의 제품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성비를 따지는 신자유주의 소비 시장 안에서는 판매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단 하나가 팔리더라도 자신의 작업에 담긴 가치를 누군가 알아준 것을 감사하며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여긴다.
지역 혁신가나 로컬크리에이터라면 자신의 지역에 어떤 자원이 있나에 관심이 많다. 지역 자원을 발굴하거나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히로세 씨도 마찬가지로 지역 자원과 생태 순환 가치에 초점을 맞춰 시즈쿠라는 멋진 로컬 브랜딩을 완성한 것이다.